"집필자 : 신용하"
검색결과 총 81건
대한제국기 때, 십삼도유생연명소의 소수로 상소를 올린 민족운동가.
강원형 (姜遠馨)
대한제국기 때, 십삼도유생연명소의 소수로 상소를 올린 민족운동가.
조선 후기 형성된 자주 근대화·변혁·진보를 지향하는 정치사상.
개화사상 (開化思想)
조선 후기 형성된 자주 근대화·변혁·진보를 지향하는 정치사상.
개화를 실행하기 위하여 1880년대에 정부 주도로 추진한 정책.
개화정책 (開化政策)
개화를 실행하기 위하여 1880년대에 정부 주도로 추진한 정책.
일제강점기 때, 신민회 회원으로 활동하였으며, 독립사상을 고취하는 문서를 배포하다가 체포되어 옥사한 독립운동가.
구찬회 (具璨會)
일제강점기 때, 신민회 회원으로 활동하였으며, 독립사상을 고취하는 문서를 배포하다가 체포되어 옥사한 독립운동가.
일제강점기 때, 파리강화회의에 전달할 독립청원서의 서명 운동과 발송에 가담하였으며, 군자금을 제공하여 독립군기지 건설을 지원하다가 체포된 독립운동가.
권상익 (權相翊)
일제강점기 때, 파리강화회의에 전달할 독립청원서의 서명 운동과 발송에 가담하였으며, 군자금을 제공하여 독립군기지 건설을 지원하다가 체포된 독립운동가.
조선 후기에, 성균관박사 등을 역임한 문신.
김근배 (金根培)
조선 후기에, 성균관박사 등을 역임한 문신.
대한제국기 때, 일제의 침략을 규탄하는 상소운동 및 을사조약 반대투쟁 등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김동필 (金東弼)
대한제국기 때, 일제의 침략을 규탄하는 상소운동 및 을사조약 반대투쟁 등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대한제국기 때, 이토 히로부미 암살 계획이 실패한 후 자결한 의병·독립운동가.
김봉학 (金奉學)
대한제국기 때, 이토 히로부미 암살 계획이 실패한 후 자결한 의병·독립운동가.
일제강점기 때, 동우회에 가입하여 기관지 『동광』을 발간하고 항일투쟁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김선량 (金善亮)
일제강점기 때, 동우회에 가입하여 기관지 『동광』을 발간하고 항일투쟁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일제강점기 때, 제자들을 모아 배일사상을 고취하고 항일투쟁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김제환 (金濟煥)
일제강점기 때, 제자들을 모아 배일사상을 고취하고 항일투쟁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대한제국기 양산중학교를 설립하여 교육구국운동을 지도한 교육자. 사회운동가.
김홍량 (金鴻亮)
대한제국기 양산중학교를 설립하여 교육구국운동을 지도한 교육자. 사회운동가.
남궁억은 일제강점기 황성신문 사장, 대한협회 회장, 배화학당 교사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이다. 1863년(철종 14)에 태어나 1939년에 사망했다. 1884년 영어학교인 동문학을 수료하였고, 칠곡 군수 등을 역임했다. 1896년 서재필 등과 독립협회를 창립하였다. 1898년 『황성신문』을 창간하고, 국민 계몽과 독립협회 활동을 지원하였다. 이후 현산학교 설립, 대한협회와 관동학회 창립 등 애국계몽운동을 전개하였다. 전국에 무궁화를 보급하였으며, 애국적 찬송가를 만들어 기독교계 학교들에 보급하였다. 1977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남궁억 (南宮檍)
남궁억은 일제강점기 황성신문 사장, 대한협회 회장, 배화학당 교사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이다. 1863년(철종 14)에 태어나 1939년에 사망했다. 1884년 영어학교인 동문학을 수료하였고, 칠곡 군수 등을 역임했다. 1896년 서재필 등과 독립협회를 창립하였다. 1898년 『황성신문』을 창간하고, 국민 계몽과 독립협회 활동을 지원하였다. 이후 현산학교 설립, 대한협회와 관동학회 창립 등 애국계몽운동을 전개하였다. 전국에 무궁화를 보급하였으며, 애국적 찬송가를 만들어 기독교계 학교들에 보급하였다. 1977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조선후기 농민들이 농민적 토지소유를 성립시켜 나가면서 획득한 소작지에서의 부분소유권.
도지권 (賭地權)
조선후기 농민들이 농민적 토지소유를 성립시켜 나가면서 획득한 소작지에서의 부분소유권.
조선시대의 소작제도.
도지법 (睹地法)
조선시대의 소작제도.
『독립신문』은 1896년 창간된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 신문이다. 국문판과 영문판으로 구성되었다. 계몽적 신문의 필요성을 인식한 서재필과 유길준, 개화파 내각의 합작으로 탄생했다. 거액의 정부 예산이 지원되어 1896년 4월 7일 창간호를 발행하였다. 근대민족주의·민주주의·자주화 근대화 사상을 강조하며 국민을 교육·계몽하는 일에 많은 성과를 거두었으나 독립협회가 수구파정부에 의해 강제로 해산당하면서 위기에 봉착했다. 결국 정부의 매각 강요에 굴복해 1899년 12월 4일자 신문을 끝으로 종간했다. 정부는 신문사 매수 후 속간을 약속했다가 영구 폐간시켰다.
독립신문 (獨立新聞)
『독립신문』은 1896년 창간된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 신문이다. 국문판과 영문판으로 구성되었다. 계몽적 신문의 필요성을 인식한 서재필과 유길준, 개화파 내각의 합작으로 탄생했다. 거액의 정부 예산이 지원되어 1896년 4월 7일 창간호를 발행하였다. 근대민족주의·민주주의·자주화 근대화 사상을 강조하며 국민을 교육·계몽하는 일에 많은 성과를 거두었으나 독립협회가 수구파정부에 의해 강제로 해산당하면서 위기에 봉착했다. 결국 정부의 매각 강요에 굴복해 1899년 12월 4일자 신문을 끝으로 종간했다. 정부는 신문사 매수 후 속간을 약속했다가 영구 폐간시켰다.
안중근이 1910년 3월 옥중에서 쓴 동양평화 실현을 위한 미완성의 논책.
동양평화론 (東洋平和論)
안중근이 1910년 3월 옥중에서 쓴 동양평화 실현을 위한 미완성의 논책.
만민공동회는 1898년 열강의 이권 침탈에 대항하여 자주 독립의 수호와 자유 민권의 신장을 위해 조직, 개최되었던 민중 대회이다. 첫 대회는 독립협회가 러시아의 국권침탈 시도를 막기 위해 조직했지만 점차 민중들의 자발적인 운동으로 발전해갔다. 고종이 독립협회를 불법화하고 약속한 개혁안을 무산시키자 11월 5일부터는 42일간의 철야시위가 이어졌다. 고종은 지방 보부상들을 동원하여 테러를 가하고 군대를 동원하여 해산시켰으며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를 불법화하는 해체령을 포고했다. 민주주의 사상을 보급하고 민중에 의한 애국운동을 정립한 점에서 의의가 있다.
만민공동회 (萬民共同會)
만민공동회는 1898년 열강의 이권 침탈에 대항하여 자주 독립의 수호와 자유 민권의 신장을 위해 조직, 개최되었던 민중 대회이다. 첫 대회는 독립협회가 러시아의 국권침탈 시도를 막기 위해 조직했지만 점차 민중들의 자발적인 운동으로 발전해갔다. 고종이 독립협회를 불법화하고 약속한 개혁안을 무산시키자 11월 5일부터는 42일간의 철야시위가 이어졌다. 고종은 지방 보부상들을 동원하여 테러를 가하고 군대를 동원하여 해산시켰으며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를 불법화하는 해체령을 포고했다. 민주주의 사상을 보급하고 민중에 의한 애국운동을 정립한 점에서 의의가 있다.
대한제국기 육군 참령, 시위대 제1연대 제1대대장 등을 역임한 군인. 지사.
박승환 (朴昇煥)
대한제국기 육군 참령, 시위대 제1연대 제1대대장 등을 역임한 군인. 지사.
박은식은 일제강점기 『안중근전』, 『한국통사』, 『대동민족사』 등을 저술한 학자이자 언론인, 독립운동가이다. 1859년(철종 10)에 태어나 1925년에 사망했다. 젊어서 성리학 연구에 몰두해 성리학자로서 명성이 높았으나 독립협회의 영향을 받고 개화사상가로 변신했다. 국권회복의 실력을 양성하기 위해 개화사상과 신학문에 힘쓸 것을 주장했고, 황성신문 등 언론을 통해 애국계몽운동을 펼치는 데 주력했다. 한국인의 혼을 되살리기 위해 『한국통사』를 저술했고, 임시정부가 혼란에 빠지자 수습했으며, 대한민국임시정부 제2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박은식 (朴殷植)
박은식은 일제강점기 『안중근전』, 『한국통사』, 『대동민족사』 등을 저술한 학자이자 언론인, 독립운동가이다. 1859년(철종 10)에 태어나 1925년에 사망했다. 젊어서 성리학 연구에 몰두해 성리학자로서 명성이 높았으나 독립협회의 영향을 받고 개화사상가로 변신했다. 국권회복의 실력을 양성하기 위해 개화사상과 신학문에 힘쓸 것을 주장했고, 황성신문 등 언론을 통해 애국계몽운동을 펼치는 데 주력했다. 한국인의 혼을 되살리기 위해 『한국통사』를 저술했고, 임시정부가 혼란에 빠지자 수습했으며, 대한민국임시정부 제2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일제강점기 때, 신민회에서 활동하며 청년학우회와 대동청년당을 조직하였고, 조선노동공제회 중앙집행위원회 위원장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박중화 (朴重華)
일제강점기 때, 신민회에서 활동하며 청년학우회와 대동청년당을 조직하였고, 조선노동공제회 중앙집행위원회 위원장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