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양지혜"
검색결과 총 11건
강평국은 일제강점기 3·1운동에 참여하고, 제주여자청년회, 근우회 도쿄지회 등에서 활동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 사범과에 재학 중 서울의 3·1운동에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말 졸업 후, 7년여간 제주 및 전라남도 일대에서 보통학교 교원으로 재직하였다. 또한 제주 지역에 여러 여성 단체를 설립하여 여성의 지위 향상에 힘썼다. 1926년 도쿄에서 유학하며, 근우회 도쿄지회, 동경조선노동조합 동부지부 부인부 등에서 활동하였다. 2019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강평국 (姜平國)
강평국은 일제강점기 3·1운동에 참여하고, 제주여자청년회, 근우회 도쿄지회 등에서 활동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 사범과에 재학 중 서울의 3·1운동에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말 졸업 후, 7년여간 제주 및 전라남도 일대에서 보통학교 교원으로 재직하였다. 또한 제주 지역에 여러 여성 단체를 설립하여 여성의 지위 향상에 힘썼다. 1926년 도쿄에서 유학하며, 근우회 도쿄지회, 동경조선노동조합 동부지부 부인부 등에서 활동하였다. 2019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최수향은 1919년 광주 3·1운동에 참여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03년 전라남도 광주군에서 태어났다. 1919년 광주 수피아여학교 재학 중 광주 읍내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가 체포되었다.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4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이후 수피아여학교에서 교사로 재직하다가 결혼 후 동아일보 광주지국 기자로 활동하였다. 1986년 대통령표창,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최수향 (崔秀香)
최수향은 1919년 광주 3·1운동에 참여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03년 전라남도 광주군에서 태어났다. 1919년 광주 수피아여학교 재학 중 광주 읍내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가 체포되었다.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4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이후 수피아여학교에서 교사로 재직하다가 결혼 후 동아일보 광주지국 기자로 활동하였다. 1986년 대통령표창,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최순덕은 일제강점기 대한애국부인회 교통부장을 역임하며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지원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897년경 평양에서 태어났으며, 이명은 최신덕이다. 1919년 3·1운동의 영향으로 평양 감리교파 애국부인회를 조직하였다. 이후 장로교파 애국부인회와 통합하여 대한애국부인회로 조직이 확대되자, 교통부장으로 임명되었다. 군자금을 모금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지원하는 활동 등을 하다가 조직이 발각되어 1920년 만주로 망명하였다. 이후 병환으로 귀향하였으며, 1926년 사망하였다.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최순덕 (崔順德)
최순덕은 일제강점기 대한애국부인회 교통부장을 역임하며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지원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897년경 평양에서 태어났으며, 이명은 최신덕이다. 1919년 3·1운동의 영향으로 평양 감리교파 애국부인회를 조직하였다. 이후 장로교파 애국부인회와 통합하여 대한애국부인회로 조직이 확대되자, 교통부장으로 임명되었다. 군자금을 모금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지원하는 활동 등을 하다가 조직이 발각되어 1920년 만주로 망명하였다. 이후 병환으로 귀향하였으며, 1926년 사망하였다.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최형록은 일제강점기 한국혁명여성동맹, 한국애국부인회, 대한민국임시정부 외무부 등에서 항일운동을 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895년 평양에서 태어나 1910년 중국으로 이주하였다. 1914년 박은식 등이 설립한 상하이 박달학원에서 수학하였다. 1918년 독립운동가 조소앙과 결혼하여 딸 조계림을 낳았다. 1940년 충칭의 한국혁명여성동맹에 감찰위원으로 참여하였고, 1944년에는 대한민국임시정부 외무부 총무과원으로 임명되어 딸 조계림과 함께 활약하였다. 1996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최형록 (崔亨祿)
최형록은 일제강점기 한국혁명여성동맹, 한국애국부인회, 대한민국임시정부 외무부 등에서 항일운동을 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895년 평양에서 태어나 1910년 중국으로 이주하였다. 1914년 박은식 등이 설립한 상하이 박달학원에서 수학하였다. 1918년 독립운동가 조소앙과 결혼하여 딸 조계림을 낳았다. 1940년 충칭의 한국혁명여성동맹에 감찰위원으로 참여하였고, 1944년에는 대한민국임시정부 외무부 총무과원으로 임명되어 딸 조계림과 함께 활약하였다. 1996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최혜순은 일제강점기 상해한인각단체연합회, 대한민국임시의정원 등에서 활동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00년 전라남도 광주군에서 태어났으며, 전남도립광주의원에서 일하다 중국으로 건너갔다. 남편은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무위원 김철이다. 1931년 상해한인각단체연합회 회계 책임자를 맡았으며, 같은 해 12월 대한민국임시의정원에서 전라도 의원으로 선출되어 1933년까지 활동하였다. 1934년 남편이 고문 후유증으로 사망한 뒤에도 상하이에서 조산병원을 운영하며 독립운동 지원을 계속하였다. 201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최혜순 (崔惠淳)
최혜순은 일제강점기 상해한인각단체연합회, 대한민국임시의정원 등에서 활동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00년 전라남도 광주군에서 태어났으며, 전남도립광주의원에서 일하다 중국으로 건너갔다. 남편은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무위원 김철이다. 1931년 상해한인각단체연합회 회계 책임자를 맡았으며, 같은 해 12월 대한민국임시의정원에서 전라도 의원으로 선출되어 1933년까지 활동하였다. 1934년 남편이 고문 후유증으로 사망한 뒤에도 상하이에서 조산병원을 운영하며 독립운동 지원을 계속하였다. 201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한성선은 일제강점기 미국 대한여자애국단에서 활동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864년 황해도 해주군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이주하였으며, 3·1운동에 영향받아 독립운동을 시작하였다. 1919년 3월 다뉴바에서 신한부인회를 결성하였고, 같은 해 8월 각 지역의 부인회를 통합하여 대한여자애국단이 출범하자, 총단위원을 맡아 활동하였다. 1922년에는 총단 단장으로 선임되었다. 해방 이전까지 광주학생운동, 국내 수재민 구제, 재만 한인 구제 등의 국내외 사회문제를 위한 지원금 모금 활동에 앞장섰다. 201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한성선 (韓成善)
한성선은 일제강점기 미국 대한여자애국단에서 활동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864년 황해도 해주군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이주하였으며, 3·1운동에 영향받아 독립운동을 시작하였다. 1919년 3월 다뉴바에서 신한부인회를 결성하였고, 같은 해 8월 각 지역의 부인회를 통합하여 대한여자애국단이 출범하자, 총단위원을 맡아 활동하였다. 1922년에는 총단 단장으로 선임되었다. 해방 이전까지 광주학생운동, 국내 수재민 구제, 재만 한인 구제 등의 국내외 사회문제를 위한 지원금 모금 활동에 앞장섰다. 201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한영신은 일제강점기 평양에서 대한애국부인회 부회장 등을 맡은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887년 경기도 인천부에서 태어났으며, 14세 때 평안북도 의주로 이주하였다. 30세 때 평양으로 이주하였으며, 1919년 6월 기독교계 장로교파 애국부인회를 결성하고 회장을 맡았다. 같은 해 11월 타 교파의 애국부인회와 통합해 대한애국부인회가 조직되자 부회장을 맡았으며, 군자금을 모금해 대한민국임시정부에 전달하였다. 그 외, 평양 조선물산장려회 이사, 조선예수교장로회 여전도회전국연합회 회장 등을 맡았다.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한영신 (韓永信)
한영신은 일제강점기 평양에서 대한애국부인회 부회장 등을 맡은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887년 경기도 인천부에서 태어났으며, 14세 때 평안북도 의주로 이주하였다. 30세 때 평양으로 이주하였으며, 1919년 6월 기독교계 장로교파 애국부인회를 결성하고 회장을 맡았다. 같은 해 11월 타 교파의 애국부인회와 통합해 대한애국부인회가 조직되자 부회장을 맡았으며, 군자금을 모금해 대한민국임시정부에 전달하였다. 그 외, 평양 조선물산장려회 이사, 조선예수교장로회 여전도회전국연합회 회장 등을 맡았다.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한이순은 1919년 천안에서 3·1운동에 참여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06년 충청남도 천안군에서 태어났다. 사립 여학교인 광명학교에 재학 중이던 1919년 13세의 나이로 3·1운동에 참여하였다. 학교 인근의 천안 양대리장터에서 광명학교 학생 80여 명을 이끌고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이어 다수의 일반 시민과 함께 이웃 마을 장터로 옮겨가 시위를 지속하다가 군경에 체포되었다. 1919년 4월 28일 공주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한이순 (韓二順)
한이순은 1919년 천안에서 3·1운동에 참여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06년 충청남도 천안군에서 태어났다. 사립 여학교인 광명학교에 재학 중이던 1919년 13세의 나이로 3·1운동에 참여하였다. 학교 인근의 천안 양대리장터에서 광명학교 학생 80여 명을 이끌고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이어 다수의 일반 시민과 함께 이웃 마을 장터로 옮겨가 시위를 지속하다가 군경에 체포되었다. 1919년 4월 28일 공주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함용환은 일제강점기 삼도교를 창립하고 만세시위를 계획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895년 황해도 연백군에서 태어났다. 1934년 강원도 회양군에서 조선 독립을 목표로 하는 신종교 삼도교를 창립하고 교주가 되었다. 1936년 천도교의 협력을 얻어 만세시위를 하려고 계획하였으나, 천도교 측에서 거절하였다. 1937년 삼도교 단독으로 조선총독부 앞에서 만세시위를 벌이기로 계획하여 참가자를 모으고 오방기를 제작하였다. 그러나 실행 직전 종로경찰서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2014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함용환 (咸用煥)
함용환은 일제강점기 삼도교를 창립하고 만세시위를 계획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895년 황해도 연백군에서 태어났다. 1934년 강원도 회양군에서 조선 독립을 목표로 하는 신종교 삼도교를 창립하고 교주가 되었다. 1936년 천도교의 협력을 얻어 만세시위를 하려고 계획하였으나, 천도교 측에서 거절하였다. 1937년 삼도교 단독으로 조선총독부 앞에서 만세시위를 벌이기로 계획하여 참가자를 모으고 오방기를 제작하였다. 그러나 실행 직전 종로경찰서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2014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황금순은 1919년 천안 양대리장터 3·1운동을 주도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02년 충청남도 천안군에서 태어났다. 1919년 사립 여학교인 광명학교 재학 중에 천안 양대리장터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1930년에는 홍성공립공업전문학교 학생들이 광주학생운동에 동조하여 일으킨 동맹휴학의 배후 인물로 지목되어 고초를 겪었다. 201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황금순 (黃金順)
황금순은 1919년 천안 양대리장터 3·1운동을 주도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02년 충청남도 천안군에서 태어났다. 1919년 사립 여학교인 광명학교 재학 중에 천안 양대리장터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1930년에는 홍성공립공업전문학교 학생들이 광주학생운동에 동조하여 일으킨 동맹휴학의 배후 인물로 지목되어 고초를 겪었다. 201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황마리아는 일제강점기 미국 하와이에서 대한인부인구제회 조직에 참여하고 독립운동 자금 모집 등의 활동을 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865년 평양에서 태어났으며, 1905년 5월경 하와이로 이민 갔다. 이민 후 사탕수수 농장 및 세탁업 등에 종사하다가, 1913년 대한인부인회 창설에 참여하였다. 1919년 하와이 각지의 부인회를 통합하여 출범한 대한인부인구제회에도 참여하였다.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지원하고 재해 피해민에게 후원금을 모집하여 보내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2017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황마리아 (黃Maria)
황마리아는 일제강점기 미국 하와이에서 대한인부인구제회 조직에 참여하고 독립운동 자금 모집 등의 활동을 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865년 평양에서 태어났으며, 1905년 5월경 하와이로 이민 갔다. 이민 후 사탕수수 농장 및 세탁업 등에 종사하다가, 1913년 대한인부인회 창설에 참여하였다. 1919년 하와이 각지의 부인회를 통합하여 출범한 대한인부인구제회에도 참여하였다.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지원하고 재해 피해민에게 후원금을 모집하여 보내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2017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