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유영익"
검색결과 총 21건
대한제국기 때, 법부협판, 학부협판 등을 역임한 문신.
민형식 (閔衡植)
대한제국기 때, 법부협판, 학부협판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 후기에, 형조판서, 예조판서, 전라도관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
김문현 (金文鉉)
조선 후기에, 형조판서, 예조판서, 전라도관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
군국기무처는 조선 말기 갑오개혁을 추진하였던 최고 정책결정 기관이다. 1894년 6월 21일 일본군이 경복궁을 점령하면서 친일파 정권이 수립되자 제도개혁과 신정권 탄생에 따른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설치되었다. 합의체 형식으로 구성된 초정부적 입법·정책결정기구로서 최고집권자의 회의체 기능을 수행했다. 7월 28일부터 10월 29일까지 약 3개월 동안 실질적인 활동을 하며 210건의 의안을 심의·통과시켰다. 내부 갈등이 있었던 데다 일본의 대한정책이 적극개입 정책으로 바뀌고 고종도 전제왕권을 제약하는 기구로 인식하면서 12월 17일 칙령으로 폐지되었다.
군국기무처 (軍國機務處)
군국기무처는 조선 말기 갑오개혁을 추진하였던 최고 정책결정 기관이다. 1894년 6월 21일 일본군이 경복궁을 점령하면서 친일파 정권이 수립되자 제도개혁과 신정권 탄생에 따른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설치되었다. 합의체 형식으로 구성된 초정부적 입법·정책결정기구로서 최고집권자의 회의체 기능을 수행했다. 7월 28일부터 10월 29일까지 약 3개월 동안 실질적인 활동을 하며 210건의 의안을 심의·통과시켰다. 내부 갈등이 있었던 데다 일본의 대한정책이 적극개입 정책으로 바뀌고 고종도 전제왕권을 제약하는 기구로 인식하면서 12월 17일 칙령으로 폐지되었다.
1894년 7월 27일부터 12월 17일까지 144일간 군국기무처에서 의결, 채택된사항을 수록한 정책서. 관문서·의안.
군국기무처의안 (軍國機務處議案)
1894년 7월 27일부터 12월 17일까지 144일간 군국기무처에서 의결, 채택된사항을 수록한 정책서. 관문서·의안.
1894년(고종 31) 7월부터 1896년 2월까지 추진되었던 일련의 개혁운동.
갑오개혁 (甲午改革)
1894년(고종 31) 7월부터 1896년 2월까지 추진되었던 일련의 개혁운동.
1894년 3월 28일 김옥균이 상해(上海)에서 홍종우(洪鍾宇)에 의해 저격, 피살된 사건.
김옥균 암살사건 (金玉均 暗殺事件)
1894년 3월 28일 김옥균이 상해(上海)에서 홍종우(洪鍾宇)에 의해 저격, 피살된 사건.
동학농민군이 제1차 봉기 때 전라도 무장에서 발포한 격문.
무장격문 (茂長檄文)
동학농민군이 제1차 봉기 때 전라도 무장에서 발포한 격문.
1894년(고종 31) 대군을 출병시킨 일본이 조선측의 철병 요구를 거부하면서 조선의 내정 개혁을 요구한 회담.
노인정회담 (老人亭會談)
1894년(고종 31) 대군을 출병시킨 일본이 조선측의 철병 요구를 거부하면서 조선의 내정 개혁을 요구한 회담.
개항기 때, 개화를 반대하는 척사 상소를 올려 체포되었다가 임오군란 때 군졸들에 의해 구출되었으나 다시 붙잡혀 처형된 유생.
백낙관 (白樂寬)
개항기 때, 개화를 반대하는 척사 상소를 올려 체포되었다가 임오군란 때 군졸들에 의해 구출되었으나 다시 붙잡혀 처형된 유생.
개항기 전운서낭청, 내무부참의직, 법무아문대신서리 등을 역임한 관료.
김학우 (金鶴羽)
개항기 전운서낭청, 내무부참의직, 법무아문대신서리 등을 역임한 관료.
김홍집은 개항기 당상경리사, 독판교섭통상사무, 좌의정 등을 역임한 관리이자 정치인이다. 1842년(헌종 8)에 태어나 1896년(고종 33)에 사망했다. 1867년 벼슬을 시작해 좌의정에까지 올랐다. 인천 개항 등의 현안문제를 타결하기 위해 수신사로 일본에 다녀왔고, 이때 가져온 『조선책략』은 개항기 개화정책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개항기에 각국과 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주요 역할을 맡았고, 온건개화파로서 갑오개혁 등 개화정책을 적극 펼쳤다. 아관파천으로 친러정권이 수립된 후 친일 대신으로 지목되어 광화문에서 군중들에게 타살되었다.
김홍집 (金弘集)
김홍집은 개항기 당상경리사, 독판교섭통상사무, 좌의정 등을 역임한 관리이자 정치인이다. 1842년(헌종 8)에 태어나 1896년(고종 33)에 사망했다. 1867년 벼슬을 시작해 좌의정에까지 올랐다. 인천 개항 등의 현안문제를 타결하기 위해 수신사로 일본에 다녀왔고, 이때 가져온 『조선책략』은 개항기 개화정책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개항기에 각국과 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주요 역할을 맡았고, 온건개화파로서 갑오개혁 등 개화정책을 적극 펼쳤다. 아관파천으로 친러정권이 수립된 후 친일 대신으로 지목되어 광화문에서 군중들에게 타살되었다.
대한제국기 제4차 김홍집내각의 학부대신, 주미특명전권공사 등을 역임한 관료. 정치인.
서광범 (徐光範)
대한제국기 제4차 김홍집내각의 학부대신, 주미특명전권공사 등을 역임한 관료. 정치인.
개항기 때, 좌찬성, 우의정, 좌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
송근수 (宋近洙)
개항기 때, 좌찬성, 우의정, 좌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
대한제국기 경무사, 군부대신, 독립협회 초대회장 등을 역임한 관료. 정치인.
안경수 (安駉壽)
대한제국기 경무사, 군부대신, 독립협회 초대회장 등을 역임한 관료. 정치인.
개항기 『대한문전』, 『서유견문』, 『구당시초』 등을 저술한 개화사상가. 정치인.
유길준 (兪吉濬)
개항기 『대한문전』, 『서유견문』, 『구당시초』 등을 저술한 개화사상가. 정치인.
을미의병은 조선 말기 최초의 대규모 항일의병이다. 1895년 명성황후 시해사건 후 왕후폐위조칙이 발표되자 유생들은 폐위조처에 반대하고 일본군을 토벌·구축하여 국모의 원수를 갚을 것을 주장했다. 여기에 단발령 시행이 더해지자 일반 백성들까지 반일·반정부 항쟁에 나서서 친일파를 처단하고 관군과 일본군에 맞서 싸웠다. 지방의 유력 유생 중심으로 구성된 의병대의 규모는 지역별로 수천에서 수만 명에 달했고 서울·경기 지역에서 시작된 의병운동은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내각이 친러파로 교체되고 단발령 철폐와 미납 공세 탕감 조처가 내려지면서 점차 쇠퇴하였다.
을미의병 (乙未義兵)
을미의병은 조선 말기 최초의 대규모 항일의병이다. 1895년 명성황후 시해사건 후 왕후폐위조칙이 발표되자 유생들은 폐위조처에 반대하고 일본군을 토벌·구축하여 국모의 원수를 갚을 것을 주장했다. 여기에 단발령 시행이 더해지자 일반 백성들까지 반일·반정부 항쟁에 나서서 친일파를 처단하고 관군과 일본군에 맞서 싸웠다. 지방의 유력 유생 중심으로 구성된 의병대의 규모는 지역별로 수천에서 수만 명에 달했고 서울·경기 지역에서 시작된 의병운동은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내각이 친러파로 교체되고 단발령 철폐와 미납 공세 탕감 조처가 내려지면서 점차 쇠퇴하였다.
흥선대원군의 적손(嫡孫) 이준용을 국왕으로 옹립하려다 실패한 사건.
이준용 옹립사건 (李埈鎔 擁立事件)
흥선대원군의 적손(嫡孫) 이준용을 국왕으로 옹립하려다 실패한 사건.
1894년(고종 31) 조선과 일본 사이에 체결된 조약.
조일잠정합동조관 (朝日暫定合同條款)
1894년(고종 31) 조선과 일본 사이에 체결된 조약.
개항기 개화운동에 가담했던 백담사 소속의 승려.
탁정식 (卓挺埴)
개항기 개화운동에 가담했던 백담사 소속의 승려.
1895년(고종 32) 10월 을미사변에 대한 반동으로 11월 28일에 명성황후계(閔妃系) 친미·친러파의 관리와 군인에 의해 기도되었던 사건.
춘생문사건 (春生門事件)
1895년(고종 32) 10월 을미사변에 대한 반동으로 11월 28일에 명성황후계(閔妃系) 친미·친러파의 관리와 군인에 의해 기도되었던 사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