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윤선자"
검색결과 총 27건
군종은 군인들의 신앙생활을 돕고 군의 정신 전력을 강화하기 위하여 설치된 병과이다. 1948년 9월 15일, 이화여자고등학교(梨花女子高等學校) 교목(校牧) 정달빈(鄭達彬)이 해군 중위로 임관(任官)하여 해군에서 군종 업무를 시작하였다. 1950년 12월 4일, 해군본부에 군목실(軍牧室)이 설치되었고, 1951년 2월 7일에 육군본부 인사국에 군승과(軍僧課)가 설치되었으며, 1952년 3월 30일에 공군 군종 제도가 시작되었다. 1968년 9월 불교, 2007년 7월 원불교(圓佛敎)에서 군종제도에 참여하였다.
군종 (軍宗)
군종은 군인들의 신앙생활을 돕고 군의 정신 전력을 강화하기 위하여 설치된 병과이다. 1948년 9월 15일, 이화여자고등학교(梨花女子高等學校) 교목(校牧) 정달빈(鄭達彬)이 해군 중위로 임관(任官)하여 해군에서 군종 업무를 시작하였다. 1950년 12월 4일, 해군본부에 군목실(軍牧室)이 설치되었고, 1951년 2월 7일에 육군본부 인사국에 군승과(軍僧課)가 설치되었으며, 1952년 3월 30일에 공군 군종 제도가 시작되었다. 1968년 9월 불교, 2007년 7월 원불교(圓佛敎)에서 군종제도에 참여하였다.
『사사성경』은 1910년 천주교 조선대목구장 뮈텔 주교의 4복음서 한글번역계획에 따라 황해도 황주본당 한기근 신부 등이 번역하여 간행한 한국 천주교회의 첫 한글 4복음서이다. 번역 대본은 라틴어판 불가타(Vulgata) 역본으로 추정되며, 역주 작업은 원문의 자구 번역에 충실하였다. 1922년 4월에 재판, 1931년 1월에 3판, 1939년 7월에 4판, 1945년에 5판이 간행되었고, 4판에서 처음으로 띄어쓰기와 한글 맞춤법이 적용되었다. 1971년 『공동번역 신약성서』가 간행되기까지 한국 천주교회의 유일한 신약성서 완역본이다.
사사성경 (四史聖經)
『사사성경』은 1910년 천주교 조선대목구장 뮈텔 주교의 4복음서 한글번역계획에 따라 황해도 황주본당 한기근 신부 등이 번역하여 간행한 한국 천주교회의 첫 한글 4복음서이다. 번역 대본은 라틴어판 불가타(Vulgata) 역본으로 추정되며, 역주 작업은 원문의 자구 번역에 충실하였다. 1922년 4월에 재판, 1931년 1월에 3판, 1939년 7월에 4판, 1945년에 5판이 간행되었고, 4판에서 처음으로 띄어쓰기와 한글 맞춤법이 적용되었다. 1971년 『공동번역 신약성서』가 간행되기까지 한국 천주교회의 유일한 신약성서 완역본이다.
김관택(金觀澤)은 일제강점기 성모학원 교사, 해성학교 교장 등을 역임한 교육자, 천주교 전교사 및 총회장, 민족운동가이다. 1929년 평양 광성고등보통학교를 수료하고, 1932년 강서군 마산본당의 성모학원 교사로 임용되었으며, 1937년 가톨릭조선사에 입사하였고, 평양교구의 전교사(傳敎師)로 평안도 각지를 순회 전교하였다. 해방 이후 조선건국준비위원회 정주군 부위원장, 조선민주당 정주군 위원장을 역임하였고, 1947년에 월남하였다. 가톨릭 구제회의 한국지부 지배인, ‘성 라자로원’ 창설자, 평양교구 신우회 회장으로 활동하였다.
김관택 (金觀澤)
김관택(金觀澤)은 일제강점기 성모학원 교사, 해성학교 교장 등을 역임한 교육자, 천주교 전교사 및 총회장, 민족운동가이다. 1929년 평양 광성고등보통학교를 수료하고, 1932년 강서군 마산본당의 성모학원 교사로 임용되었으며, 1937년 가톨릭조선사에 입사하였고, 평양교구의 전교사(傳敎師)로 평안도 각지를 순회 전교하였다. 해방 이후 조선건국준비위원회 정주군 부위원장, 조선민주당 정주군 위원장을 역임하였고, 1947년에 월남하였다. 가톨릭 구제회의 한국지부 지배인, ‘성 라자로원’ 창설자, 평양교구 신우회 회장으로 활동하였다.
정남규는 일제강점기 종현성당(현, 명동성당) 총회장이자 사회 사업가이다. 1899년에 경성학당 한문과에 입학하였고, 1900년 4월부터 경성학당 보통과에 진학하여 1901년 3월 6일까지 수학하였다. 1910~1920년, 조선총독부 임시토지조사국에 재임하였고, 1920~1923년에는 경성부 서기, 속(屬)으로 근무하였다. 이어 1923년에는 경성대목구의 재단법인 설립에 참여하였다. 1924년에 애긍회를 조직하여 1950년 9월 17일에 정치보위부에 납치되어 행방불명될 때까지 노인들을 돌보았다.
정남규 (鄭南奎)
정남규는 일제강점기 종현성당(현, 명동성당) 총회장이자 사회 사업가이다. 1899년에 경성학당 한문과에 입학하였고, 1900년 4월부터 경성학당 보통과에 진학하여 1901년 3월 6일까지 수학하였다. 1910~1920년, 조선총독부 임시토지조사국에 재임하였고, 1920~1923년에는 경성부 서기, 속(屬)으로 근무하였다. 이어 1923년에는 경성대목구의 재단법인 설립에 참여하였다. 1924년에 애긍회를 조직하여 1950년 9월 17일에 정치보위부에 납치되어 행방불명될 때까지 노인들을 돌보았다.
김승곤은 중국 난징의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를 거쳐 1935년 중국중앙육군군관학교 뤄양분교 한인특별반을 졸업하고, 1938년 10월 조선의용대 창설에 참여하였다. 대한민국임시정부 국회 비서처 비서, 선전부 선편과 과원으로 선임되었다. 1942년 4월 조선의용대가 한국광복군 제1지대로 개편되면서 제1지대 본부 부관주임 겸 본부 구대장으로 활동하였다.
김승곤 (金勝坤)
김승곤은 중국 난징의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를 거쳐 1935년 중국중앙육군군관학교 뤄양분교 한인특별반을 졸업하고, 1938년 10월 조선의용대 창설에 참여하였다. 대한민국임시정부 국회 비서처 비서, 선전부 선편과 과원으로 선임되었다. 1942년 4월 조선의용대가 한국광복군 제1지대로 개편되면서 제1지대 본부 부관주임 겸 본부 구대장으로 활동하였다.
나태섭은 일제강점기 1936년 중국 중앙육군군관학교를 졸업하고, 1936년 7월 11일 중국 난징에서 결성된 한국국민당청년단 단장, 1939년 10월 임시정부 군사특파원, 한국광복군 제2지대 창설 간부 등으로 활동하였다. 이후 임시정부 군무부 부원, 군무부 총무과 과장, 군무부 군사학편찬위원회 간사, 내무부 생활위원회 부위원장, 한국독립당 감찰위원 등을 지냈으며, 8·15광복 이후 화중한교선무단에서 활동하였다.
나태섭 (羅泰燮)
나태섭은 일제강점기 1936년 중국 중앙육군군관학교를 졸업하고, 1936년 7월 11일 중국 난징에서 결성된 한국국민당청년단 단장, 1939년 10월 임시정부 군사특파원, 한국광복군 제2지대 창설 간부 등으로 활동하였다. 이후 임시정부 군무부 부원, 군무부 총무과 과장, 군무부 군사학편찬위원회 간사, 내무부 생활위원회 부위원장, 한국독립당 감찰위원 등을 지냈으며, 8·15광복 이후 화중한교선무단에서 활동하였다.
박영준은 일제강점기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에 참여하였고, 1940년 9월 17일 한국광복군이 창설되자 한국광복군 제3지대에 배속되어 간부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1942년 4월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서무과에 배속되었으며, 1943년 1월 20일 한국독립당 한국청년회의 예술간사, 임시정부 재무부 이재과, 내무부 경무과,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제3지대 제1구대장 겸 제3지대 훈련총대장, 대한민국임시정부 주화대표단(駐華代表團) 등에서 활동하였다.
박영준 (朴英俊)
박영준은 일제강점기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에 참여하였고, 1940년 9월 17일 한국광복군이 창설되자 한국광복군 제3지대에 배속되어 간부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1942년 4월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서무과에 배속되었으며, 1943년 1월 20일 한국독립당 한국청년회의 예술간사, 임시정부 재무부 이재과, 내무부 경무과,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제3지대 제1구대장 겸 제3지대 훈련총대장, 대한민국임시정부 주화대표단(駐華代表團) 등에서 활동하였다.
안춘생은 일제강점기에 한국광복군으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1935년 1월 한국광복군 특무대 제2대장, 1936년 7월 11일 한국국민당청년당의 특무부장 등을 지낸 독립운동가이다. 1936년 중국중앙군관학교를 졸업하고 중국군 제2사단에 배속되어 대일전에 참전하였다. 1941년 한국광복군 제1지대 간부, 1942년 제2지대 제1구대장을 맡았다. 1945년 국내 정진군의 제1지구(평안도·황해도·경기도) 대장이 되었고, 광복군 잠편지대 난징 지대장으로 활동하였다.
안춘생 (安椿生)
안춘생은 일제강점기에 한국광복군으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1935년 1월 한국광복군 특무대 제2대장, 1936년 7월 11일 한국국민당청년당의 특무부장 등을 지낸 독립운동가이다. 1936년 중국중앙군관학교를 졸업하고 중국군 제2사단에 배속되어 대일전에 참전하였다. 1941년 한국광복군 제1지대 간부, 1942년 제2지대 제1구대장을 맡았다. 1945년 국내 정진군의 제1지구(평안도·황해도·경기도) 대장이 되었고, 광복군 잠편지대 난징 지대장으로 활동하였다.
김정숙은 한국광복군 총사령부에서 대적 심리공작을 수행하였던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37년 중국 중산대학 학생전시복무단을 조직하여 항일의식을 고취하였으며, 1940년 6월 한국혁명여성동맹 집행위원 겸 선전부 주임으로 활동하였다. 이후 임시의정원 비서, 임시정부 교통부 비서, 법무부 비서, 조선민족혁명당 감찰위원 등으로 활동하였다. 1945년에는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심리작전연구실에서 방송을 통한 선전 활동을 펼쳤다.
김정숙 (金貞淑)
김정숙은 한국광복군 총사령부에서 대적 심리공작을 수행하였던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37년 중국 중산대학 학생전시복무단을 조직하여 항일의식을 고취하였으며, 1940년 6월 한국혁명여성동맹 집행위원 겸 선전부 주임으로 활동하였다. 이후 임시의정원 비서, 임시정부 교통부 비서, 법무부 비서, 조선민족혁명당 감찰위원 등으로 활동하였다. 1945년에는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심리작전연구실에서 방송을 통한 선전 활동을 펼쳤다.
김효숙은 일제강점기 한국광복군 제2지대에 종군하여 대일 심리전을 펼쳤던 여성 독립운동가이다.1937년 중국 광둥성의 중산대학 학생전시복무단을 조직하였고, 1940년 한국혁명여성동맹 집행위원 겸 훈련부 주임, 1944년 3월 조선민족혁명당 감찰위원 등으로 활동하였다. 1944년 10월 한국광복군 제2지대에 종군하여 대일 심리전 전개하던 중 8·15광복을 맞았다.
김효숙 (金孝淑)
김효숙은 일제강점기 한국광복군 제2지대에 종군하여 대일 심리전을 펼쳤던 여성 독립운동가이다.1937년 중국 광둥성의 중산대학 학생전시복무단을 조직하였고, 1940년 한국혁명여성동맹 집행위원 겸 훈련부 주임, 1944년 3월 조선민족혁명당 감찰위원 등으로 활동하였다. 1944년 10월 한국광복군 제2지대에 종군하여 대일 심리전 전개하던 중 8·15광복을 맞았다.
민영숙은 일제강점기 중국 충칭의 대한민국임시정부 법무부 및 외무부 직원으로 활동하였던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에 참여하였고, 1942년 2월 9일 대한민국임시정부 법무부 부원으로 선임된 이후 임시정부 법무부 총무과 과원, 외무부 정보과 과원, 회계검사원 조리원, 주화대표단(駐華代表團)의 선전과원 등으로 활동하였다.
민영숙 (閔泳淑)
민영숙은 일제강점기 중국 충칭의 대한민국임시정부 법무부 및 외무부 직원으로 활동하였던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에 참여하였고, 1942년 2월 9일 대한민국임시정부 법무부 부원으로 선임된 이후 임시정부 법무부 총무과 과원, 외무부 정보과 과원, 회계검사원 조리원, 주화대표단(駐華代表團)의 선전과원 등으로 활동하였다.
민영주는 일제강점기 대한민국임시정부와 한국광복군 제2지대에서 활동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40년 9월 17일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성립 전례식에서 헌기(獻旗)하였고, 이후 대한민국임시정부 내무부 경무원 겸 재무원, 한국독립당 당원, 임시정부 비서처 서기, 임시정부 주석판공실 서기 등을 지냈다.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심리작전연구실에서 선전 활동을 하였고, 1945년 4월 한국광복군 제2지대에 편입되었다.
민영주 (閔泳珠)
민영주는 일제강점기 대한민국임시정부와 한국광복군 제2지대에서 활동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40년 9월 17일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성립 전례식에서 헌기(獻旗)하였고, 이후 대한민국임시정부 내무부 경무원 겸 재무원, 한국독립당 당원, 임시정부 비서처 서기, 임시정부 주석판공실 서기 등을 지냈다.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심리작전연구실에서 선전 활동을 하였고, 1945년 4월 한국광복군 제2지대에 편입되었다.
신순호는 일제강점기 일제강점기 1939년 2월 조직된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에 입대하여 한중 합동으로 항일운동을 전개하였으며, 1940년 9월 17일 한국광복군이 창립되자 참가하여 활동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40년 9월 17일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성립 전례식에 참석하였으며, 임시정부 생계위원회 회계부를 거쳐 1945년 초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심리작전연구실에서 방송을 통한 선전 활동을 전개하였다.
신순호 (申順浩)
신순호는 일제강점기 일제강점기 1939년 2월 조직된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에 입대하여 한중 합동으로 항일운동을 전개하였으며, 1940년 9월 17일 한국광복군이 창립되자 참가하여 활동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40년 9월 17일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성립 전례식에 참석하였으며, 임시정부 생계위원회 회계부를 거쳐 1945년 초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심리작전연구실에서 방송을 통한 선전 활동을 전개하였다.
신정숙은 일제강점기 한국광복군으로 활동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41년 3월 1일 대한민국임시정부 청사에서 거행된 한국광복군 징모 제3분처 성립식에서 회계조장으로 임명되었고, 중국 장시성에 파견되어 초모 활동을 전개하였다. 1942년 10월 1일 징모 제3분처가 제2지대 제3구대 제3분대로 편성되자 제3분대원으로 초모 활동을 전개하였다.
신정숙 (申貞淑)
신정숙은 일제강점기 한국광복군으로 활동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41년 3월 1일 대한민국임시정부 청사에서 거행된 한국광복군 징모 제3분처 성립식에서 회계조장으로 임명되었고, 중국 장시성에 파견되어 초모 활동을 전개하였다. 1942년 10월 1일 징모 제3분처가 제2지대 제3구대 제3분대로 편성되자 제3분대원으로 초모 활동을 전개하였다.
안영희는 일제강점기 한국청년전지공작대, 한국광복군에서 활동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40년 한국청년전지공작대에 가입하여 한국청년훈련반을 졸업하고 항일운동을 전개하였으며, 1941년 1월 한국청년전지공작대가 한국광복군 제5지대로 편성된 후 제5지대 의무실에서, 1942년 4월 1일 제5지대가 기존의 제1, 2지대와 통합하여 제2지대로 편성되자 제2지대 의무실에서 한국광복군 부상병과 그 가족을 간호하였다.
안영희 (安英姬)
안영희는 일제강점기 한국청년전지공작대, 한국광복군에서 활동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40년 한국청년전지공작대에 가입하여 한국청년훈련반을 졸업하고 항일운동을 전개하였으며, 1941년 1월 한국청년전지공작대가 한국광복군 제5지대로 편성된 후 제5지대 의무실에서, 1942년 4월 1일 제5지대가 기존의 제1, 2지대와 통합하여 제2지대로 편성되자 제2지대 의무실에서 한국광복군 부상병과 그 가족을 간호하였다.
김문호는 일제강점기 한국광복군으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1937년 8월 중국 중앙군 제3전구 영파 방수사령부 정치부에 특채되어 1939년 제3전구 방송국에서 반전 방송을 하였으며, 1941년 3월 1일 한국광복군 징모 제3분처 주임위원 겸 선전조장으로 임명되었다. 1942년 10월 1일 징모 제3분처가 제2지대 제3구대 제3분대로 편성되면서 제3분대장이 되어 항일 선전 및 초모 공작을 전개하였다.
김문호 (金文鎬)
김문호는 일제강점기 한국광복군으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1937년 8월 중국 중앙군 제3전구 영파 방수사령부 정치부에 특채되어 1939년 제3전구 방송국에서 반전 방송을 하였으며, 1941년 3월 1일 한국광복군 징모 제3분처 주임위원 겸 선전조장으로 임명되었다. 1942년 10월 1일 징모 제3분처가 제2지대 제3구대 제3분대로 편성되면서 제3분대장이 되어 항일 선전 및 초모 공작을 전개하였다.
김상을은 1945년 한국광복군 제2지대와 미국 전략정보국(OSS)이 함께 추진한 독수리작전에 참여한 독립운동가이다. 1939년 중국 베이징으로 건너가 한국청년전지공작대 대원에게 초모되었다. 1945년 한국광복군 제2지대와 미국 전략정보국(OSS)이 함께 추진한 독수리작전(Eagle Project)에 참여하여 전라도반 제1조로 국내 진입을 시도하였다.
김상을 (金商乙)
김상을은 1945년 한국광복군 제2지대와 미국 전략정보국(OSS)이 함께 추진한 독수리작전에 참여한 독립운동가이다. 1939년 중국 베이징으로 건너가 한국청년전지공작대 대원에게 초모되었다. 1945년 한국광복군 제2지대와 미국 전략정보국(OSS)이 함께 추진한 독수리작전(Eagle Project)에 참여하여 전라도반 제1조로 국내 진입을 시도하였다.
김상준은 일제강점기 한국광복군 인면전구공작대 대원으로 인도와 버마(지금의 미얀마) 국경지대인 임팔 전선에 투입되어 대일 전쟁에서 활약한 독립운동가이다. 한국청년전지공작대 대원으로 중국 중앙전시간부훈련단 제4단 한국청년훈련반에서 훈련을 받았고, 1941년 1월 한국청년전지공작대가 한국광복군 제5지대로 편성되자 제5지대 대원이 되었다. 1943년 8월 영국군과 한영군사상호협정이 체결되어 인도·버마(지금의 미얀마) 지역에 한국광복군이 연합군의 일원으로 참여하게 되자 인면전구공작대 대원으로 임팔 지역에서 대일 전쟁에 참가하였다.
김상준 (金尙俊)
김상준은 일제강점기 한국광복군 인면전구공작대 대원으로 인도와 버마(지금의 미얀마) 국경지대인 임팔 전선에 투입되어 대일 전쟁에서 활약한 독립운동가이다. 한국청년전지공작대 대원으로 중국 중앙전시간부훈련단 제4단 한국청년훈련반에서 훈련을 받았고, 1941년 1월 한국청년전지공작대가 한국광복군 제5지대로 편성되자 제5지대 대원이 되었다. 1943년 8월 영국군과 한영군사상호협정이 체결되어 인도·버마(지금의 미얀마) 지역에 한국광복군이 연합군의 일원으로 참여하게 되자 인면전구공작대 대원으로 임팔 지역에서 대일 전쟁에 참가하였다.
김석동은 일제강점기 1940년 9월 한국광복군에 입대하여 제2지대 본부요원으로 활동하였고, 1943년 6월 『독립신문』 중경판 발행을 위해 힘썼던 독립운동가이다.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에 참여하였고, 1943년 3월 한국독립당에 입당하였다. 1945년 5월 한국광복군 제2지대와 미국 전략정보국(OSS) 중국지부가 추진한 독수리작전에 참여하여 정보파괴반을 수료하였다.
김석동 (金奭東)
김석동은 일제강점기 1940년 9월 한국광복군에 입대하여 제2지대 본부요원으로 활동하였고, 1943년 6월 『독립신문』 중경판 발행을 위해 힘썼던 독립운동가이다.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에 참여하였고, 1943년 3월 한국독립당에 입당하였다. 1945년 5월 한국광복군 제2지대와 미국 전략정보국(OSS) 중국지부가 추진한 독수리작전에 참여하여 정보파괴반을 수료하였다.
김용주는 일제강점기 한국광복군에 입대하여 제2지대 총무조원 겸 공작조원으로 활동하였으며, 1945년 독수리작전의 국내 정진군 함경도반 반장으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한국청년전지공작대 대원으로 초모 활동을 활발히 전개하였다. 1941년 1월 1일 한국청년전지공작대가 한국광복군 제5지대로 편성되어 제5지대원이 되었으며, 1945년 제2지대와 미국 전략정보국(OSS)이 함께 추진한 독수리작전(Eagle Project)에 참여하였다.
김용주 (金容珠)
김용주는 일제강점기 한국광복군에 입대하여 제2지대 총무조원 겸 공작조원으로 활동하였으며, 1945년 독수리작전의 국내 정진군 함경도반 반장으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한국청년전지공작대 대원으로 초모 활동을 활발히 전개하였다. 1941년 1월 1일 한국청년전지공작대가 한국광복군 제5지대로 편성되어 제5지대원이 되었으며, 1945년 제2지대와 미국 전략정보국(OSS)이 함께 추진한 독수리작전(Eagle Project)에 참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