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이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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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오부는 고구려 초기, 국가 운영의 주축이 된 5개의 단위 정치체이다. 『삼국지』에는 소노부(消奴部), 절노부(絶奴部), 순노부(順奴部), 관노부(灌奴部), 계루부(桂婁部) 등 5개 ‘부(部)’의 이름이 등장하며, 『삼국사기』에는 비류나부(沸流那部), 연나부(椽那部), 환나부(桓那部), 관나부(貫那部) 등으로 표기되어 있다. 고구려 초기의 정치 권력은 국가 전체를 통괄하는 왕권과 나부의 자치권이라는 2가지 축을 중심으로 유지되었다.
고구려 오부 (高句麗 五部)
고구려오부는 고구려 초기, 국가 운영의 주축이 된 5개의 단위 정치체이다. 『삼국지』에는 소노부(消奴部), 절노부(絶奴部), 순노부(順奴部), 관노부(灌奴部), 계루부(桂婁部) 등 5개 ‘부(部)’의 이름이 등장하며, 『삼국사기』에는 비류나부(沸流那部), 연나부(椽那部), 환나부(桓那部), 관나부(貫那部) 등으로 표기되어 있다. 고구려 초기의 정치 권력은 국가 전체를 통괄하는 왕권과 나부의 자치권이라는 2가지 축을 중심으로 유지되었다.
고국원왕은 삼국시대 고구려 제16대(재위: 331~371) 왕이다. 국원왕, 국강상왕이라고도 한다. 314년(미천왕 15) 태자로 책봉된 후, 331년 2월 미천왕이 죽자 즉위하였다. 영토 확장 과정에서 요동(遼東)과 부여(夫餘) 지역을 둘러싸고 전연(前燕)과 대립하였고, 남쪽으로는 백제 근초고왕(近肖古王)과 경쟁하였다. 371년 10월 평양성에서 화살에 맞아 전사하였다.
고국원왕 (故國原王)
고국원왕은 삼국시대 고구려 제16대(재위: 331~371) 왕이다. 국원왕, 국강상왕이라고도 한다. 314년(미천왕 15) 태자로 책봉된 후, 331년 2월 미천왕이 죽자 즉위하였다. 영토 확장 과정에서 요동(遼東)과 부여(夫餘) 지역을 둘러싸고 전연(前燕)과 대립하였고, 남쪽으로는 백제 근초고왕(近肖古王)과 경쟁하였다. 371년 10월 평양성에서 화살에 맞아 전사하였다.
고노자는 삼국시대 고구려 신성태수를 지낸 관리이다. 293년(봉상왕 2) 고대 북아시아의 유목 민족인 선비(鮮卑) 모용부(慕容部)의 모용외(慕容廆)가 고구려를 침범하자 신성재(新城宰) 북부(北部) 소형(小兄)의 자격으로 500명의 기병을 이끌고 이를 방어하였다. 이후 296년 모용외의 재침입 시 국상 창조리의 추천으로 신성태수가 되었다.
고노자 (高奴子)
고노자는 삼국시대 고구려 신성태수를 지낸 관리이다. 293년(봉상왕 2) 고대 북아시아의 유목 민족인 선비(鮮卑) 모용부(慕容部)의 모용외(慕容廆)가 고구려를 침범하자 신성재(新城宰) 북부(北部) 소형(小兄)의 자격으로 500명의 기병을 이끌고 이를 방어하였다. 이후 296년 모용외의 재침입 시 국상 창조리의 추천으로 신성태수가 되었다.
관나부인은 삼국시대 고구려 제12대 중천왕의 후궁이다. 얼굴이 아름답고 고우며 머리카락 길이가 9척이나 되었다. 이 때문에 왕의 총애를 받았고, 왕후 연씨와는 갈등을 빚게 되었다. 왕후 연씨를 모함하였으나, 거짓임이 밝혀지면서 오히려 자신이 가죽주머니에 넣어져 바다에 던져졌다. 연나부 출신 왕후 연씨와 관나부 출신 관나부인의 갈등을 나부체제 해체기의 과도기적 양상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관나부인 (貫那夫人)
관나부인은 삼국시대 고구려 제12대 중천왕의 후궁이다. 얼굴이 아름답고 고우며 머리카락 길이가 9척이나 되었다. 이 때문에 왕의 총애를 받았고, 왕후 연씨와는 갈등을 빚게 되었다. 왕후 연씨를 모함하였으나, 거짓임이 밝혀지면서 오히려 자신이 가죽주머니에 넣어져 바다에 던져졌다. 연나부 출신 왕후 연씨와 관나부 출신 관나부인의 갈등을 나부체제 해체기의 과도기적 양상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국상은 고구려 초기 국가 전체 실무를 총괄하던 최고 관직이다. 166년(신대왕 2) 좌우보제(左右輔制)를 개편하면서 설치되었다. 설치 목적은 국가 건국 초기를 지나면서 전쟁 · 외교 등의 국가 중대사 및 일상실무가 증대함에 따라 국가 전체의 실무를 총괄하는 관직이 요청되었기 때문으로 이해된다. 국상은 고국천왕대가 되어서야 제도적으로 정착한 것으로 보이며, 고구려 후기에는 대대로 · 막리지 등이 국상과 같은 역할을 담당하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국상 (國相)
국상은 고구려 초기 국가 전체 실무를 총괄하던 최고 관직이다. 166년(신대왕 2) 좌우보제(左右輔制)를 개편하면서 설치되었다. 설치 목적은 국가 건국 초기를 지나면서 전쟁 · 외교 등의 국가 중대사 및 일상실무가 증대함에 따라 국가 전체의 실무를 총괄하는 관직이 요청되었기 때문으로 이해된다. 국상은 고국천왕대가 되어서야 제도적으로 정착한 것으로 보이며, 고구려 후기에는 대대로 · 막리지 등이 국상과 같은 역할을 담당하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대무신왕은 삼국시대 고구려 제3대(재위: 18~44) 왕이다. 대해주류왕, 대주류왕이라고도 하며, 이름은 무휼이다. 아버지는 유리왕, 어머니는 다물국왕 송양의 딸이다. 부여를 공격하여 대소왕을 죽였으며, 주변 세력에 대한 정복 활동을 활발히 전개하여 개마국과 구다국, 낙랑국 등을 병합하였다. 또한, 우보와 좌보를 처음으로 임명하는 등 통치 체제를 확립하기 위해 힘썼다.
대무신왕 (大武神王)
대무신왕은 삼국시대 고구려 제3대(재위: 18~44) 왕이다. 대해주류왕, 대주류왕이라고도 하며, 이름은 무휼이다. 아버지는 유리왕, 어머니는 다물국왕 송양의 딸이다. 부여를 공격하여 대소왕을 죽였으며, 주변 세력에 대한 정복 활동을 활발히 전개하여 개마국과 구다국, 낙랑국 등을 병합하였다. 또한, 우보와 좌보를 처음으로 임명하는 등 통치 체제를 확립하기 위해 힘썼다.
대보(大輔)는 고구려 · 신라 초기에 재상 기능을 수행한 최고위 관직이다. 관직 분화 및 정치 · 행정 · 군사권의 분리가 완성되기 이전에 국정을 총괄하였던 것으로 본다. 고구려의 경우 유리왕 대 협보(陜父)의 사례가 유일하다. 신라의 경우 남해차차웅(南解次次雄) 때 나라 일을 대신(大臣)인 탈해(脫解)에게 위임하면서 설치하였고, 탈해이사금(脫解尼師今) 때의 호공(瓠公) 또한 대보의 관직에 있었다.
대보 (大輔)
대보(大輔)는 고구려 · 신라 초기에 재상 기능을 수행한 최고위 관직이다. 관직 분화 및 정치 · 행정 · 군사권의 분리가 완성되기 이전에 국정을 총괄하였던 것으로 본다. 고구려의 경우 유리왕 대 협보(陜父)의 사례가 유일하다. 신라의 경우 남해차차웅(南解次次雄) 때 나라 일을 대신(大臣)인 탈해(脫解)에게 위임하면서 설치하였고, 탈해이사금(脫解尼師今) 때의 호공(瓠公) 또한 대보의 관직에 있었다.
비류국은 삼국시대, 고구려 건국기에 비류수 상류에 위치하였던 국가이다. 비류국은 주몽이 졸본에 오기 전 오랫동안 이 일대에 지배력을 행사하였으나, 주몽과의 대결에서 패배한 끝에 투항하였다. 이후 비류국은 비류부(沸流部) 혹은 비류나부(沸流那部)로 지칭되는데, 이들은 중국측 사료에 소노부(消奴部) 내지 연노부(涓奴部)로 등장하는 세력과 동일한 집단이다.
비류국 (沸流國)
비류국은 삼국시대, 고구려 건국기에 비류수 상류에 위치하였던 국가이다. 비류국은 주몽이 졸본에 오기 전 오랫동안 이 일대에 지배력을 행사하였으나, 주몽과의 대결에서 패배한 끝에 투항하였다. 이후 비류국은 비류부(沸流部) 혹은 비류나부(沸流那部)로 지칭되는데, 이들은 중국측 사료에 소노부(消奴部) 내지 연노부(涓奴部)로 등장하는 세력과 동일한 집단이다.
비류수는 삼국시대에 고구려가 건국하고 도읍을 정하는 과정에서 중심에 위치한 강(江)이다. 오늘날 중국 랴오닝성과 길림성에 걸쳐 흐르는 훈장[渾江]에 비정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비류수 상류에 위치한 송양의 비류국, 고구려 5부 중 하나인 비류부 등과 관련하여 볼 때 고구려 초기 역사 전개 과정에서 지리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자리잡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비류수 (沸流水)
비류수는 삼국시대에 고구려가 건국하고 도읍을 정하는 과정에서 중심에 위치한 강(江)이다. 오늘날 중국 랴오닝성과 길림성에 걸쳐 흐르는 훈장[渾江]에 비정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비류수 상류에 위치한 송양의 비류국, 고구려 5부 중 하나인 비류부 등과 관련하여 볼 때 고구려 초기 역사 전개 과정에서 지리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자리잡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서천왕은 삼국시대 고구려 제13대(재위: 270~292) 왕이다. 일명 ‘서양왕(西壤王)’이라고도 하였으며, 이름은 고약로(高藥盧) 혹은 고약우(高若友)이다. 중천왕의 둘째 아들이며, 255년(중천왕 8년)에 태자로 책봉되었다. 왕으로 즉위한 이후 271년 서부대사자(西部大使者) 우수(于漱)의 딸을 왕후로 삼았고, 276년과 288년에는 신성(新城)에 행차하였다.
서천왕 (西川王)
서천왕은 삼국시대 고구려 제13대(재위: 270~292) 왕이다. 일명 ‘서양왕(西壤王)’이라고도 하였으며, 이름은 고약로(高藥盧) 혹은 고약우(高若友)이다. 중천왕의 둘째 아들이며, 255년(중천왕 8년)에 태자로 책봉되었다. 왕으로 즉위한 이후 271년 서부대사자(西部大使者) 우수(于漱)의 딸을 왕후로 삼았고, 276년과 288년에는 신성(新城)에 행차하였다.
우보(右輔)는 삼국시대 고구려 초기의 고위 관직이다. 25년(대무신왕 8) 을두지가 우보로 임명되는 기사에 최초로 등장한다. 이후 166년(신대왕 2) 좌보와 우보를 최고위 관직인 국상으로 개편할 때까지 유지되었다. 우보의 성격과 관련하여서는 왕권과 밀접한 측근 세력이 임명된 것으로 보기도 하고, 혹은 계루부와 나부 출신의 대표자가 좌보와 우보를 나눠 맡으면서 공동정치 운영방식을 구현한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우보 (右輔)
우보(右輔)는 삼국시대 고구려 초기의 고위 관직이다. 25년(대무신왕 8) 을두지가 우보로 임명되는 기사에 최초로 등장한다. 이후 166년(신대왕 2) 좌보와 우보를 최고위 관직인 국상으로 개편할 때까지 유지되었다. 우보의 성격과 관련하여서는 왕권과 밀접한 측근 세력이 임명된 것으로 보기도 하고, 혹은 계루부와 나부 출신의 대표자가 좌보와 우보를 나눠 맡으면서 공동정치 운영방식을 구현한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좌승(佐丞)은 삼국시대, 고구려, 백제 또는 태봉의 관직이다. 『삼국사기(三國史記)』 직관지(職官志) 외관조에 기재되어 있으며, 그 설치 시기와 관등의 고하(高下) 등은 미상(未詳)이다. 좌(佐)와 승(丞)을 나눠서 서로 다른 관직으로 보는 경우도 있지만, 고려시대 사료에 등장하는 용례를 참고해 볼 때 좌승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좌승 (佐丞)
좌승(佐丞)은 삼국시대, 고구려, 백제 또는 태봉의 관직이다. 『삼국사기(三國史記)』 직관지(職官志) 외관조에 기재되어 있으며, 그 설치 시기와 관등의 고하(高下) 등은 미상(未詳)이다. 좌(佐)와 승(丞)을 나눠서 서로 다른 관직으로 보는 경우도 있지만, 고려시대 사료에 등장하는 용례를 참고해 볼 때 좌승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