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이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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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는 같은 신앙을 가진 신자들로 구성된 개신교 조직이나 종교 건축물이다. 교의적으로는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 즉 신비체를 상징하지만, 구체적 현실에서는 기독교인들이 모여 이루어진 다양한 형태의 종교 집단으로 존재한다.
교회 (敎會)
교회는 같은 신앙을 가진 신자들로 구성된 개신교 조직이나 종교 건축물이다. 교의적으로는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 즉 신비체를 상징하지만, 구체적 현실에서는 기독교인들이 모여 이루어진 다양한 형태의 종교 집단으로 존재한다.
개신교는 로마가톨릭교회의 개혁을 목표로 성립한 기독교의 다양한 교파이다. 로마가톨릭교회 및 동방정교회와 함께 기독교의 3대 전통을 이루고 있는 개신교는 교회 전통보다 성서의 권위를 강조한다는 점에서 두 교회 전통과 구별된다. 19세기 후반 시작된 한국 개신교는 초기부터 복음 전파만이 아니라 교육사업과 의료사업, 사회복지사업을 병행하면서 한국 사회의 발전에 상당한 기여를 했다. 그렇지만 한국의 전통문화나 이웃 종교와의 관계에서 갈등을 빚는가 하면 냉전 이데올로기에 매몰되어 시민 사회와 갈등을 빚기도 하였다.
개신교 (改新敎)
개신교는 로마가톨릭교회의 개혁을 목표로 성립한 기독교의 다양한 교파이다. 로마가톨릭교회 및 동방정교회와 함께 기독교의 3대 전통을 이루고 있는 개신교는 교회 전통보다 성서의 권위를 강조한다는 점에서 두 교회 전통과 구별된다. 19세기 후반 시작된 한국 개신교는 초기부터 복음 전파만이 아니라 교육사업과 의료사업, 사회복지사업을 병행하면서 한국 사회의 발전에 상당한 기여를 했다. 그렇지만 한국의 전통문화나 이웃 종교와의 관계에서 갈등을 빚는가 하면 냉전 이데올로기에 매몰되어 시민 사회와 갈등을 빚기도 하였다.
대한예수교장로회는 일제강점기에 신사참배를 거부하다 투옥된 지도자들을 중심으로 세워진 한국 장로교의 한 교단이다. 1952년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가 고려신학교를 인정하지 않자 한상동 등 고려신학교 설립자들이 중심이 되어 독자적인 교단을 세웠다.
대한예수교장로회 (大韓←Jesus敎長老會)
대한예수교장로회는 일제강점기에 신사참배를 거부하다 투옥된 지도자들을 중심으로 세워진 한국 장로교의 한 교단이다. 1952년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가 고려신학교를 인정하지 않자 한상동 등 고려신학교 설립자들이 중심이 되어 독자적인 교단을 세웠다.
대한예수교장로회는 조선예수교장로회 공의회를 모체로 출범한 한국 장로교의 한 교단이다. 1912년 조선예수교장로회라는 이름으로 창설되었지만 1959년 에큐메니칼 신학 수용 문제를 둘러싸고 예장통합측과 분립하면서 독자적인 교단으로 출범하였다. 여성 목사 안수를 인정하지 않는 등 신학적으로 보수 노선을 견지하고 있다. 한국 장로교를 넘어 개신교 교단 중 가장 큰 교세를 지니고 있지만 교단의 정체성과 한국의 전통문화를 적절히 조화시키는 과제를 지니고 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大韓←Jesus敎長老會)
대한예수교장로회는 조선예수교장로회 공의회를 모체로 출범한 한국 장로교의 한 교단이다. 1912년 조선예수교장로회라는 이름으로 창설되었지만 1959년 에큐메니칼 신학 수용 문제를 둘러싸고 예장통합측과 분립하면서 독자적인 교단으로 출범하였다. 여성 목사 안수를 인정하지 않는 등 신학적으로 보수 노선을 견지하고 있다. 한국 장로교를 넘어 개신교 교단 중 가장 큰 교세를 지니고 있지만 교단의 정체성과 한국의 전통문화를 적절히 조화시키는 과제를 지니고 있다.
대한예수교장로회는 독노회의 전통을 이어받아 1967년 출범한 한국 장로교의 한 교단이다. '혁신복구파'로도 알려져 있다. 이 교단은 일제강점기 조선장로교의 신사참배 가결과 일본기독교단으로의 편입을 한국 교회의 타락으로 규정하고 교회의 혁신과 복구의 방편으로 독자적인 교단을 조직하였다.
대한예수교장로회 (大韓←Jesus敎長老會)
대한예수교장로회는 독노회의 전통을 이어받아 1967년 출범한 한국 장로교의 한 교단이다. '혁신복구파'로도 알려져 있다. 이 교단은 일제강점기 조선장로교의 신사참배 가결과 일본기독교단으로의 편입을 한국 교회의 타락으로 규정하고 교회의 혁신과 복구의 방편으로 독자적인 교단을 조직하였다.
대한예수교장로회는 1961년 김치선 목사에 의해 대한예수교성경장로회라는 이름으로 창설된 한국장로교회의 한 교단이다. 설립 당시 칼 매킨타이어가 이끄는 국제기독교협의회와 성경장로회의 재정적 지원을 받았고 성경장로회 한국 지부를 겸했다. 1972년 교단 명칭을 '대신'으로 바꾸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大韓←Jesus敎長老會)
대한예수교장로회는 1961년 김치선 목사에 의해 대한예수교성경장로회라는 이름으로 창설된 한국장로교회의 한 교단이다. 설립 당시 칼 매킨타이어가 이끄는 국제기독교협의회와 성경장로회의 재정적 지원을 받았고 성경장로회 한국 지부를 겸했다. 1972년 교단 명칭을 '대신'으로 바꾸었다.
대한예수교장로회는 1962년 박병훈(朴炳勳) 목사 등에 의해 설립된 한국장로교회의 한 교단이다. 1959년 예장 통합과 분리된 예장 합동이 국제기독교협의회(ICCC)와의 관계를 단절하자 이에 반발한 인사들이 주도하여 세웠다. 이들은 세계교회 협의회로 대변되는 에큐메니칼운동을 용공 세력으로 비판하는 한편 국제 기독교 협의회의 지원을 받으면서 근본주의 신학을 개진하였다. 그 후 세대 갈등을 비롯한 여러 요인으로 분열을 거듭하여 현재 여러 교단으로 나뉘어 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大韓←Jesus敎長老會)
대한예수교장로회는 1962년 박병훈(朴炳勳) 목사 등에 의해 설립된 한국장로교회의 한 교단이다. 1959년 예장 통합과 분리된 예장 합동이 국제기독교협의회(ICCC)와의 관계를 단절하자 이에 반발한 인사들이 주도하여 세웠다. 이들은 세계교회 협의회로 대변되는 에큐메니칼운동을 용공 세력으로 비판하는 한편 국제 기독교 협의회의 지원을 받으면서 근본주의 신학을 개진하였다. 그 후 세대 갈등을 비롯한 여러 요인으로 분열을 거듭하여 현재 여러 교단으로 나뉘어 있다.
목사는 개신교 교회에서 교인을 지도하고 교회를 이끌어 가며 종교적 임무를 책임지는 전문직이다. 교단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으나 대체로 교단 산하의 신학 대학원을 졸업하고 소정의 목회 경험을 이수한 후 목사고시에 합격해야 목사 안수를 받을 수 있다. 목사의 칭호는 위임목사 등 다양하며, 여성에게 목사 안수를 허용하지 않는 교단도 있다.
목사 (牧師)
목사는 개신교 교회에서 교인을 지도하고 교회를 이끌어 가며 종교적 임무를 책임지는 전문직이다. 교단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으나 대체로 교단 산하의 신학 대학원을 졸업하고 소정의 목회 경험을 이수한 후 목사고시에 합격해야 목사 안수를 받을 수 있다. 목사의 칭호는 위임목사 등 다양하며, 여성에게 목사 안수를 허용하지 않는 교단도 있다.
채필근은 일제강점기 숭실전문학교 교수, 조선신학교 교수 등을 역임한 교육자이자 신학자, 철학자, 목회자이자 친일반민족행위자이다. 숭실전문학교와 조선신학교 등에서 기독교 신학과 철학을 가르치는 동시에 다양한 언론 매체를 통해 종교학과 과학을 한국 사회에 널리 소개하였지만 일제강점기 말기에 친일활동에 연루되었다.
채필근 (蔡弼近)
채필근은 일제강점기 숭실전문학교 교수, 조선신학교 교수 등을 역임한 교육자이자 신학자, 철학자, 목회자이자 친일반민족행위자이다. 숭실전문학교와 조선신학교 등에서 기독교 신학과 철학을 가르치는 동시에 다양한 언론 매체를 통해 종교학과 과학을 한국 사회에 널리 소개하였지만 일제강점기 말기에 친일활동에 연루되었다.
함석헌은 해방 이후 『성서적 입장에서 본 조선역사』, 『인간혁명』, 『역사와 민족』 등을 저술한 작가이자 사상가, 민중운동가이다. 일제강점기에는 무교회주의와 긴밀한 관련을 맺으면서 학생들에게 민족의식을 심어주었다. 광복 이후에는 동서양의 종교전통을 자유롭게 넘나들면서 포용적이고 개방적인 종교론을 전개하는 한편, 사회정치적으로는 민주화 및 인권운동에 적극 참여하였다.
함석헌 (咸錫憲)
함석헌은 해방 이후 『성서적 입장에서 본 조선역사』, 『인간혁명』, 『역사와 민족』 등을 저술한 작가이자 사상가, 민중운동가이다. 일제강점기에는 무교회주의와 긴밀한 관련을 맺으면서 학생들에게 민족의식을 심어주었다. 광복 이후에는 동서양의 종교전통을 자유롭게 넘나들면서 포용적이고 개방적인 종교론을 전개하는 한편, 사회정치적으로는 민주화 및 인권운동에 적극 참여하였다.
황국주는 1930년대 초반에 출현하여 자신을 예수와 동일시한 메시아 운동가이다. 그는 종교 체험 이후 추종자들과 함께 한반도 각지를 도보로 여행하는 '새예루살렘'으로의 순례를 실천함으로써 세상의 이목을 끌었지만 주류 교계에 의해 이단으로 정죄되었다.
황국주 (黃國柱)
황국주는 1930년대 초반에 출현하여 자신을 예수와 동일시한 메시아 운동가이다. 그는 종교 체험 이후 추종자들과 함께 한반도 각지를 도보로 여행하는 '새예루살렘'으로의 순례를 실천함으로써 세상의 이목을 끌었지만 주류 교계에 의해 이단으로 정죄되었다.
『성서적 입장에서 본 조선역사』는 1950년 사상가 함석헌이 성서적 입장에서 한국의 역사를 해석하여 출판한 역사서다. 이 책은 일제강점기에 『성서조선』에 연재하였던 글을 해방 이후 단행본으로 펴낸 것으로서 우리 민족의 역사를 기독교적 섭리사관에 의해 고난의 역사로 서술했다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성서적 입장에서 본 조선역사 (聖書的 入場에서 본 朝鮮歷史)
『성서적 입장에서 본 조선역사』는 1950년 사상가 함석헌이 성서적 입장에서 한국의 역사를 해석하여 출판한 역사서다. 이 책은 일제강점기에 『성서조선』에 연재하였던 글을 해방 이후 단행본으로 펴낸 것으로서 우리 민족의 역사를 기독교적 섭리사관에 의해 고난의 역사로 서술했다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1948년 진보적인 개신교계 인사들이 조직한 초교파적 성격의 신앙운동 단체.
복음동지회 (福音同志會)
1948년 진보적인 개신교계 인사들이 조직한 초교파적 성격의 신앙운동 단체.
서울특별시 중구 명동에 위치한 한국기독교 장로회 소속의 교회.
향린교회 (香隣敎會)
서울특별시 중구 명동에 위치한 한국기독교 장로회 소속의 교회.
일제강점기 평양신학교 교수,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장 등을 역임한 목사. 교육가.
남궁혁 (南宮爀)
일제강점기 평양신학교 교수,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장 등을 역임한 목사. 교육가.
일제강점기 때, 평양 대한애국부인회 총재로 활동하며 상해 임시정부를 지원한 개신교인·독립운동가.
오신도 (吳信道)
일제강점기 때, 평양 대한애국부인회 총재로 활동하며 상해 임시정부를 지원한 개신교인·독립운동가.
일제강점기 『세계소화집』, 『세계동화집』, 『기독교동화집』 등을 저술한 아동문학가.
최인화 (崔仁化)
일제강점기 『세계소화집』, 『세계동화집』, 『기독교동화집』 등을 저술한 아동문학가.
서울특별시 종로구 송월동에 본사를 두고 있는 기독교계 출판사.
생명의말씀사 (生命의말씀社)
서울특별시 종로구 송월동에 본사를 두고 있는 기독교계 출판사.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에 소속되어 있는 여성 교인들의 조직.
장로회 여전도회 (長老會 女傳道會)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에 소속되어 있는 여성 교인들의 조직.
일제강점기 대한애국부인회 재무부 부부장으로 활동한 개신교인. 전도부인.
김세지 (金世智)
일제강점기 대한애국부인회 재무부 부부장으로 활동한 개신교인. 전도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