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이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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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팔괘는 근대기 가야금병창과 가야금산조 명인이다. 1900년 전후로 서울에 올라와 단성사를 중심으로 많은 공연을 펼쳤으며, 빅타 유성기음반에 가야금병창 등을 취입하기도 하였다. 경성구파배우조합에 참여하였고, 이후 자신의 이름으로 협률사를 조직하여 공연을 하기도 하였다. 청주를 중심으로 제자를 양성하였다. 독자적 충청제 산조를 형성하여 박상근 가야금산조에 영향을 미쳤다.
박팔괘 (朴八卦)
박팔괘는 근대기 가야금병창과 가야금산조 명인이다. 1900년 전후로 서울에 올라와 단성사를 중심으로 많은 공연을 펼쳤으며, 빅타 유성기음반에 가야금병창 등을 취입하기도 하였다. 경성구파배우조합에 참여하였고, 이후 자신의 이름으로 협률사를 조직하여 공연을 하기도 하였다. 청주를 중심으로 제자를 양성하였다. 독자적 충청제 산조를 형성하여 박상근 가야금산조에 영향을 미쳤다.
백제금은 삼국시대 백제에서 사용된 현악기의 총칭이다. 또한 일본에 전해진 백제의 현악기를 백제금이라 한다. 백제의 현악기로 쟁, 공후, 금 등이 문헌에 기록되어 있고, 고고학 자료에는 가로로 안고 타거나, 눕혀 타는 현악기들이 존재하는데, 이들은 우리나라의 궁중음악뿐만 아니라 종교음악에 사용되었고, 중국과 일본에 전파되어 연주되었다.
백제금 (百濟琴)
백제금은 삼국시대 백제에서 사용된 현악기의 총칭이다. 또한 일본에 전해진 백제의 현악기를 백제금이라 한다. 백제의 현악기로 쟁, 공후, 금 등이 문헌에 기록되어 있고, 고고학 자료에는 가로로 안고 타거나, 눕혀 타는 현악기들이 존재하는데, 이들은 우리나라의 궁중음악뿐만 아니라 종교음악에 사용되었고, 중국과 일본에 전파되어 연주되었다.
시나위는 육자배기토리권 무속음악에서 사용되는 허튼가락의 기악곡이다. 본래 신라 향가, 즉 사뇌가에서 이름이 유래했다는 설이 있으나, 조선 중기의 심방곡은 초기 가곡을 의미해 오늘날의 무속 시나위와는 성격이 다르다. 조선 후기 무당·광대가 지역 음악을 기반으로 굿의 기악합주 음악을 만들며 시나위가 정착했고, 일제강점기 음반과 무대 공연을 통해 독립 예술로 발전했다. 시나위는 육자배기토리를 바탕으로 즉흥성과 다성성이 특징이다. 지역에 따라 남도·경기·내포제 등 다양한 형태로 전승되고, 편성도 삼현육각 중심에서 다양한 악기로 확장되었다.
시나위
시나위는 육자배기토리권 무속음악에서 사용되는 허튼가락의 기악곡이다. 본래 신라 향가, 즉 사뇌가에서 이름이 유래했다는 설이 있으나, 조선 중기의 심방곡은 초기 가곡을 의미해 오늘날의 무속 시나위와는 성격이 다르다. 조선 후기 무당·광대가 지역 음악을 기반으로 굿의 기악합주 음악을 만들며 시나위가 정착했고, 일제강점기 음반과 무대 공연을 통해 독립 예술로 발전했다. 시나위는 육자배기토리를 바탕으로 즉흥성과 다성성이 특징이다. 지역에 따라 남도·경기·내포제 등 다양한 형태로 전승되고, 편성도 삼현육각 중심에서 다양한 악기로 확장되었다.
음반은 소리를 기록해 놓은 원반 형태의 매체이다. 음반은 소리를 저장하려는 인류의 욕망에서 출발해 축음기, SP·LP·EP, CD, 디지털 매체로 발전해 왔다. 한국에서는 1896년 최초의 육성 녹음을 시작으로 1900년대 초 SP 음반이 상업화되었고, 일제강점기에는 일본 자본 주도의 음반 제작이 확대되었다. 해방 이후에도 전쟁 속에서 음반 산업이 이어졌으며, LP·CD·스트리밍으로 매체가 변화하였다. 음반은 음악의 보존·전파와 문화 확장에 기여한 기록유산으로 평가된다.
음반 (音盤)
음반은 소리를 기록해 놓은 원반 형태의 매체이다. 음반은 소리를 저장하려는 인류의 욕망에서 출발해 축음기, SP·LP·EP, CD, 디지털 매체로 발전해 왔다. 한국에서는 1896년 최초의 육성 녹음을 시작으로 1900년대 초 SP 음반이 상업화되었고, 일제강점기에는 일본 자본 주도의 음반 제작이 확대되었다. 해방 이후에도 전쟁 속에서 음반 산업이 이어졌으며, LP·CD·스트리밍으로 매체가 변화하였다. 음반은 음악의 보존·전파와 문화 확장에 기여한 기록유산으로 평가된다.
초적은 풀이나 잎사귀, 나무껍질 등을 입으로 불어 연주하는 피리이다. 삼국시대 고구려의 악기로 사용되었고, 고려시대에는 민간에도 널리 퍼져 있었다. 조선시대에는 향악기로 궁중 연향에서 사용된 기록이 있는데, 특히 연산군이 그 음악을 사랑하였다. 일제강점기에는 강춘섭이라는 명인이 뛰어난 기량으로 유성기음반을 취입하기도 하였다. 겹서를 가진 관 형태로 연주하는 것과 나뭇잎과 같은 얇은 막을 입으로 진동시키는 것 등이 있다.
초적 (草笛)
초적은 풀이나 잎사귀, 나무껍질 등을 입으로 불어 연주하는 피리이다. 삼국시대 고구려의 악기로 사용되었고, 고려시대에는 민간에도 널리 퍼져 있었다. 조선시대에는 향악기로 궁중 연향에서 사용된 기록이 있는데, 특히 연산군이 그 음악을 사랑하였다. 일제강점기에는 강춘섭이라는 명인이 뛰어난 기량으로 유성기음반을 취입하기도 하였다. 겹서를 가진 관 형태로 연주하는 것과 나뭇잎과 같은 얇은 막을 입으로 진동시키는 것 등이 있다.
최옥산은 일제강점기 가야금, 대금, 단소 연주자 겸 작곡가로 활동한 전통예술인이다. 전라남도 장흥에서 태어나 목포, 원산, 함흥 등지에서 제자를 양성하였는데, 해방 후 최승희 무용연구소에서 무용 음악을 창작하고 연주하였다. 판소리나 단가 또는 민요 등을 토대로 다수의 가야금, 대금, 단소의 창작곡을 작곡하였는데, 특히 「반야월성」, 「조선의 어머니」, 「사도성의 이야기」, 「밝은 하늘 아래」 등 무용극 음악 창작이 주목된다.
최옥산 (崔玉山)
최옥산은 일제강점기 가야금, 대금, 단소 연주자 겸 작곡가로 활동한 전통예술인이다. 전라남도 장흥에서 태어나 목포, 원산, 함흥 등지에서 제자를 양성하였는데, 해방 후 최승희 무용연구소에서 무용 음악을 창작하고 연주하였다. 판소리나 단가 또는 민요 등을 토대로 다수의 가야금, 대금, 단소의 창작곡을 작곡하였는데, 특히 「반야월성」, 「조선의 어머니」, 「사도성의 이야기」, 「밝은 하늘 아래」 등 무용극 음악 창작이 주목된다.
피리산조는 피리로 연주하는 기악 독주곡이다. 산조는 조선 후기 기악 심방곡의 영향 아래 형성된 기악 독주곡이다. 1930년대 경성방송국에서 한성준, 양정운, 지영희 등이 연주한 피리 시나위가 방송되며 피리산조의 초기 형태가 나타났다. 해방 전에는 시나위 수준이었으나, 해방 후 이충선·정재국·박범훈·서용석 등이 기존 시나위와 다른 산조들을 바탕으로 체계적 산조로 완성했다. 피리 특유의 큰 음량과 주법이 특징이며, 진양조, 중모리, 중중모리, 자진모리장단으로 구성된다. 주로 평조·계면조를 사용한다.
피리산조 (피리散調)
피리산조는 피리로 연주하는 기악 독주곡이다. 산조는 조선 후기 기악 심방곡의 영향 아래 형성된 기악 독주곡이다. 1930년대 경성방송국에서 한성준, 양정운, 지영희 등이 연주한 피리 시나위가 방송되며 피리산조의 초기 형태가 나타났다. 해방 전에는 시나위 수준이었으나, 해방 후 이충선·정재국·박범훈·서용석 등이 기존 시나위와 다른 산조들을 바탕으로 체계적 산조로 완성했다. 피리 특유의 큰 음량과 주법이 특징이며, 진양조, 중모리, 중중모리, 자진모리장단으로 구성된다. 주로 평조·계면조를 사용한다.
퉁소는 세로로 부는 긴 죽부(竹部) 단관(單管) 악기(樂器)이다. 삼국시대에도 퉁소와 관련된 악기들이 존재하였다. 퉁소는 고려시대 당악기(唐樂器)로 유입되어, 조선 궁중에서도 활용되었다. 조선 후기에는 민간에서 보편적으로 사용되었다. 퉁소는 김을 불어 넣는 ‘U’자 형태의 취구(吹口)에 청공(淸孔) 하나와 지공(指孔) 다섯 개가 있다. 음역은 낮은 두 옥타브이고, 부드러우나 청공의 울림으로 장쾌한 음색을 가지고 있다. 오늘날에는 궁중 퉁소 음악은 전승되지 않고, 북청사자놀음의 반주 음악이나 신아우, 그리고 산조 등이 많이 연주된다.
퉁소 (洞簫)
퉁소는 세로로 부는 긴 죽부(竹部) 단관(單管) 악기(樂器)이다. 삼국시대에도 퉁소와 관련된 악기들이 존재하였다. 퉁소는 고려시대 당악기(唐樂器)로 유입되어, 조선 궁중에서도 활용되었다. 조선 후기에는 민간에서 보편적으로 사용되었다. 퉁소는 김을 불어 넣는 ‘U’자 형태의 취구(吹口)에 청공(淸孔) 하나와 지공(指孔) 다섯 개가 있다. 음역은 낮은 두 옥타브이고, 부드러우나 청공의 울림으로 장쾌한 음색을 가지고 있다. 오늘날에는 궁중 퉁소 음악은 전승되지 않고, 북청사자놀음의 반주 음악이나 신아우, 그리고 산조 등이 많이 연주된다.
상은 고구려에서 사용된 토고이며, 고려와 조선 전기 아악(雅樂)에서 사용된 북이다. 고구려의 성곽 유적 호로고루에서 ‘상’이라는 명문이 새겨진 토기 파편이 발견되었으며, 복원 과정을 통해 북의 지름이 55cm인 북임을 알게 되었다. 고려와 조선에서 사용된 상은 아악, 제례, 회례에서 사용되었다.
상 (相)
상은 고구려에서 사용된 토고이며, 고려와 조선 전기 아악(雅樂)에서 사용된 북이다. 고구려의 성곽 유적 호로고루에서 ‘상’이라는 명문이 새겨진 토기 파편이 발견되었으며, 복원 과정을 통해 북의 지름이 55cm인 북임을 알게 되었다. 고려와 조선에서 사용된 상은 아악, 제례, 회례에서 사용되었다.
관은 관악기의 총칭이거나 지(篪)와 유사한 6공의 관악기 및 조선 궁중에서 사용되던 관악기를 말한다. 조선 태종대에 아악에서 사용된 관은 두 개의 관을 엮은 쌍관으로 6개의 지공을 가지고 있으며, 관의 윗부분으로 김을 넣어 소리낸다. 황종(黃鐘)부터 청협종(淸夾鐘)까지 12율 4청성을 갖추고, 궁중의 아악과 속악에서 사용되었다.
관 (管)
관은 관악기의 총칭이거나 지(篪)와 유사한 6공의 관악기 및 조선 궁중에서 사용되던 관악기를 말한다. 조선 태종대에 아악에서 사용된 관은 두 개의 관을 엮은 쌍관으로 6개의 지공을 가지고 있으며, 관의 윗부분으로 김을 넣어 소리낸다. 황종(黃鐘)부터 청협종(淸夾鐘)까지 12율 4청성을 갖추고, 궁중의 아악과 속악에서 사용되었다.
단소는 세로로 부는 짧은 죽부 단관 관악기(管樂器)이다. 단소라는 명칭은 조선 후기 문인들의 시나 판소리, 무가 사설에 등장하였다. 조선 후기 단소는 풍류 음악과 민간 기악에 다양하게 활용되었는데, 일제강점기에 조선정악전습소의 교습 과목으로 채택되고, 이왕직아악부에서도 연주되었다. ‘U’자 형태의 취구로 김을 내어 소리를 내는데 다섯 개의 지공을 가지고 두 옥타브에 해당하는 맑고 청아한 음색을 낸다. 사용하는 지역에 따라 경제단소와 향제단소 두 가지가 있다. 오늘날에는 국악 입문용 악기로 사랑받고 있다.
단소 (短簫)
단소는 세로로 부는 짧은 죽부 단관 관악기(管樂器)이다. 단소라는 명칭은 조선 후기 문인들의 시나 판소리, 무가 사설에 등장하였다. 조선 후기 단소는 풍류 음악과 민간 기악에 다양하게 활용되었는데, 일제강점기에 조선정악전습소의 교습 과목으로 채택되고, 이왕직아악부에서도 연주되었다. ‘U’자 형태의 취구로 김을 내어 소리를 내는데 다섯 개의 지공을 가지고 두 옥타브에 해당하는 맑고 청아한 음색을 낸다. 사용하는 지역에 따라 경제단소와 향제단소 두 가지가 있다. 오늘날에는 국악 입문용 악기로 사랑받고 있다.
경성구파배우조합은 1915년 3월 26일 전통 예인들이 자신들의 이익 대변과 공연을 목적으로 조직·활동한 경성부 훈정동에 위치한 조합이다. 전통 공연 예술인들이 스스로 조직한 최초의 전문적인 근대 공연 예술 단체이다. 1900년대 초 김창환, 이동백 등에 의해 설립되어 1915년에 정식 사무 분장을 시작하였다. 이후 일제가 설립한 물산공진회에 참여하면서 신파극에 눈을 뜨게 되었다. 1925년 7월 수해이재민을 위한 공연을 마지막으로 뚜렷한 활동 기록이 없다. 조합 소속 예술인들은 이후 조선성악연구회 같은 유사한 형태의 단체 설립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경성구파배우조합 (京城舊派俳優組合)
경성구파배우조합은 1915년 3월 26일 전통 예인들이 자신들의 이익 대변과 공연을 목적으로 조직·활동한 경성부 훈정동에 위치한 조합이다. 전통 공연 예술인들이 스스로 조직한 최초의 전문적인 근대 공연 예술 단체이다. 1900년대 초 김창환, 이동백 등에 의해 설립되어 1915년에 정식 사무 분장을 시작하였다. 이후 일제가 설립한 물산공진회에 참여하면서 신파극에 눈을 뜨게 되었다. 1925년 7월 수해이재민을 위한 공연을 마지막으로 뚜렷한 활동 기록이 없다. 조합 소속 예술인들은 이후 조선성악연구회 같은 유사한 형태의 단체 설립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