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이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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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수촌리고분군(公州水村里古墳群)은 충청남도 공주시에 있는 청동기시대 집터, 초기철기시대 무덤, 백제 덧널무덤과 굴식돌방무덤 등이 발견된 무덤군이다. 고분군은 Ⅰ, Ⅱ지역으로 구분된다. Ⅰ지역에서는 초기철기시대의 세형동검 등을 부장한 널무덤과 돌널무덤이 확인되었고, Ⅰ, Ⅱ지역에서 모두 덧널무덤 · 굴식돌방무덤 등 백제 무덤이 확인되었다. 특히 Ⅱ-1호 널무덤과 Ⅱ-4호 굴식돌방무덤에서 금동관 등의 위세품이 출토되어 백제 지방 지배층의 무덤임이 주목된다.
공주 수촌리 고분군 (公州 水村里 古墳群)
공주수촌리고분군(公州水村里古墳群)은 충청남도 공주시에 있는 청동기시대 집터, 초기철기시대 무덤, 백제 덧널무덤과 굴식돌방무덤 등이 발견된 무덤군이다. 고분군은 Ⅰ, Ⅱ지역으로 구분된다. Ⅰ지역에서는 초기철기시대의 세형동검 등을 부장한 널무덤과 돌널무덤이 확인되었고, Ⅰ, Ⅱ지역에서 모두 덧널무덤 · 굴식돌방무덤 등 백제 무덤이 확인되었다. 특히 Ⅱ-1호 널무덤과 Ⅱ-4호 굴식돌방무덤에서 금동관 등의 위세품이 출토되어 백제 지방 지배층의 무덤임이 주목된다.
공주옥룡동유적은 충청남도 공주시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 건물지와 목곽고 등의 생활 유적이 중심이 되는 유적이다. 옥룡동 414번지 농업시설물 설치 부지와 옥룡동 418번지 정비사업 부지에 대한 발굴 조사를 통해 확인되었다. 옥룡동 414번지에서는 굴립주 형태의 건물지와 석벽 건물지 등 백제 건물지 6기가 조사되었고, 옥룡동 418번지에서는 백제 목곽고, 말목 시설, 건물지, 주거지와 고려 및 조선시대 무덤이 확인되었다. 출토 유물인 삼족토기 등 백제 토기들은 당시 공산성 내외부의 생활상을 연구하는 데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공주 옥룡동 유적 (公州 玉龍洞 遺蹟)
공주옥룡동유적은 충청남도 공주시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 건물지와 목곽고 등의 생활 유적이 중심이 되는 유적이다. 옥룡동 414번지 농업시설물 설치 부지와 옥룡동 418번지 정비사업 부지에 대한 발굴 조사를 통해 확인되었다. 옥룡동 414번지에서는 굴립주 형태의 건물지와 석벽 건물지 등 백제 건물지 6기가 조사되었고, 옥룡동 418번지에서는 백제 목곽고, 말목 시설, 건물지, 주거지와 고려 및 조선시대 무덤이 확인되었다. 출토 유물인 삼족토기 등 백제 토기들은 당시 공산성 내외부의 생활상을 연구하는 데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부안군 줄포면에 있는 청동기시대 이후 집터와 주구무덤·기와가마터 관련 복합유적.
부안 대동리·하립석리 유적 (扶安 大東里·下立石里 遺蹟)
전북특별자치도 부안군 줄포면에 있는 청동기시대 이후 집터와 주구무덤·기와가마터 관련 복합유적.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성남면에 있는 삼국시대 집터와 널무덤·돌방무덤 관련 생활유적.
천안 용원리 고분군 (天安 龍院里 古墳群)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성남면에 있는 삼국시대 집터와 널무덤·돌방무덤 관련 생활유적.
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앞트기식돌덧널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
공주 단지리 유적 (公州 丹之里 遺蹟)
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앞트기식돌덧널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에 있는 삼국시대 이후 집터와 널무덤·굴식돌방무덤·건물터 관련 생활유적.
서산 여미리 유적 (瑞山 余美里 遺蹟)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에 있는 삼국시대 이후 집터와 널무덤·굴식돌방무덤·건물터 관련 생활유적.
충청남도 금산군 제원면에 있는 청동기시대 이후 집터와 돌널무덤·독무덤 관련 복합유적.
금산 수당리 유적 (錦山 壽堂里 遺蹟)
충청남도 금산군 제원면에 있는 청동기시대 이후 집터와 돌널무덤·독무덤 관련 복합유적.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에 있는 석기시대 이후 집터와 무덤·아궁이시설 관련 생활유적.
서산 기지리 유적 (瑞山 機池里 遺蹟)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에 있는 석기시대 이후 집터와 무덤·아궁이시설 관련 생활유적.
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에 있는 삼국시대 집터·무덤 관련 유물산포지. 생활유적.
연기 응암리 취락유적 (燕岐 鷹岩里 聚落遺蹟)
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에 있는 삼국시대 집터·무덤 관련 유물산포지. 생활유적.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목천읍에 있는 청동기시대 이후 집터와 돌널무덤·도랑움무덤 관련 생활유적.
천안 운전리 유적 (天安 雲田里 遺蹟)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목천읍에 있는 청동기시대 이후 집터와 돌널무덤·도랑움무덤 관련 생활유적.
충청남도 아산시 탕정면에 있는 청동기시대 이후 화덕자리·구덩유구·토기류 관련 집터.
아산 명암리 유적 (牙山 鳴巖里 遺蹟)
충청남도 아산시 탕정면에 있는 청동기시대 이후 화덕자리·구덩유구·토기류 관련 집터.
청주 봉명동 유적은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에 있는 석기시대 이후 집터와 돌덧널무덤·독무덤·회곽무덤 등이 발굴된 생활유적이다. 무덤군과 취락이 복합되어 있는 대규모 유적이다. 1998년에 청주 준공업단지 개발예정지역을 발굴조사하면서 확인되었다. 유적은 총 5개 지구로 나누어 조사되었으며 구석기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오랜 시기에 걸쳐 조성된 생활·매장유구가 발굴되었다. 청주 북쪽 지역의 원삼국시대부터 삼국시대에 걸친 고분군 조영집단의 변천 양상을 알려주는 중요한 유적이다. 청주지역의 전시대에 걸친 역사문화의 변화·발달과정을 시대별로 이해할 수 있는 자료로 평가된다.
청주 봉명동 유적 (淸州 鳳鳴洞 遺蹟)
청주 봉명동 유적은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에 있는 석기시대 이후 집터와 돌덧널무덤·독무덤·회곽무덤 등이 발굴된 생활유적이다. 무덤군과 취락이 복합되어 있는 대규모 유적이다. 1998년에 청주 준공업단지 개발예정지역을 발굴조사하면서 확인되었다. 유적은 총 5개 지구로 나누어 조사되었으며 구석기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오랜 시기에 걸쳐 조성된 생활·매장유구가 발굴되었다. 청주 북쪽 지역의 원삼국시대부터 삼국시대에 걸친 고분군 조영집단의 변천 양상을 알려주는 중요한 유적이다. 청주지역의 전시대에 걸친 역사문화의 변화·발달과정을 시대별로 이해할 수 있는 자료로 평가된다.
충청북도 청원군 강외면 만수리 일대에 있는 청동기시대 이후 집터와 널무덤·돌덧널무덤·건물터 관련 생활유적.
청원 만수리 유적 (淸原 萬水里 遺蹟)
충청북도 청원군 강외면 만수리 일대에 있는 청동기시대 이후 집터와 널무덤·돌덧널무덤·건물터 관련 생활유적.
충청북도 청원군 부용면에 있는 삼국시대 이후 집터와 돌덧널무덤·굴식돌방무덤 관련 생활유적.
청원 부강리 고분군 (淸原 芙江里 古墳群)
충청북도 청원군 부용면에 있는 삼국시대 이후 집터와 돌덧널무덤·굴식돌방무덤 관련 생활유적.
충청북도 청원군 강외면에 있는 삼국시대 이후 집터와 널무덤·제련로 관련 생활유적.
청원 연제리 유적 (淸原 蓮堤里 遺蹟)
충청북도 청원군 강외면에 있는 삼국시대 이후 집터와 널무덤·제련로 관련 생활유적.
충청북도 충주시 대소원면에 있는 삼국시대 이후 굴식돌방무덤과 가마터·건물터 관련 생활유적.
충주 두정리 유적 (忠州 豆井里 遺蹟)
충청북도 충주시 대소원면에 있는 삼국시대 이후 굴식돌방무덤과 가마터·건물터 관련 생활유적.
헝겊·종이 등에 글자·그림·부호 등을 잘 보이도록 그리거나 써서 특정한 표상으로 쓰는 물건.
기 (旗)
헝겊·종이 등에 글자·그림·부호 등을 잘 보이도록 그리거나 써서 특정한 표상으로 쓰는 물건.
의구는 왕의 행차 또는 신하가 조정에 나아가 임금을 뵙는 등의 의식에 쓰던 물건이다. 절, 월·작, 개·산, 부채, 기, 휘, 장·봉, 골타자, 편, 검 등이 있다. 절은 임금의 명을 받들어 나가는 사신이나 대장에게 내리는 표신이다. 월과 작은 날이 넓은 큰 도끼로 위의를 보이기 위하여 의장으로 사용했다. 개·산은 덮개나 우산의 별칭으로 높은 벼슬의 상징으로 쓰였다. 1789년에는 조정의 신하들이 입궐 시 말에서 내릴 때 딛는 하마석을 궐문 밖에 세웠다. 민간에서도 솟을대문 가문에서는 다투어 문전에 하마석을 세워 권위를 보였다.
의구 (儀具)
의구는 왕의 행차 또는 신하가 조정에 나아가 임금을 뵙는 등의 의식에 쓰던 물건이다. 절, 월·작, 개·산, 부채, 기, 휘, 장·봉, 골타자, 편, 검 등이 있다. 절은 임금의 명을 받들어 나가는 사신이나 대장에게 내리는 표신이다. 월과 작은 날이 넓은 큰 도끼로 위의를 보이기 위하여 의장으로 사용했다. 개·산은 덮개나 우산의 별칭으로 높은 벼슬의 상징으로 쓰였다. 1789년에는 조정의 신하들이 입궐 시 말에서 내릴 때 딛는 하마석을 궐문 밖에 세웠다. 민간에서도 솟을대문 가문에서는 다투어 문전에 하마석을 세워 권위를 보였다.
의장은 천자나 왕공, 그 밖의 높은 분을 모실 때 위엄을 보이기 위하여 격식을 갖추어 세우는 병장기이다. 의는 위의를 뜻하며 장은 창이나 칼 같은 병기를 가리킨다. 의장 중에는 병기의 구실을 잃고 단순한 표지로 쓰인 물품들도 있다. 고려 시대에는 조회·절일·하례 때 의장이 있었다. 조선 시대에는 제도가 정비되어 의장의 격식도 대가·법가·소가 세 등급으로 구분하였다. 대가의장은 종묘·사직에, 법가의장은 문묘에, 소가의장은 성 내외에 거둥할 때 썼다. 『오례의』나 『속오례의』에는 왕비·왕세자, 대리청정자의 의장 규모와 제도도 실려 있다.
의장 (儀仗)
의장은 천자나 왕공, 그 밖의 높은 분을 모실 때 위엄을 보이기 위하여 격식을 갖추어 세우는 병장기이다. 의는 위의를 뜻하며 장은 창이나 칼 같은 병기를 가리킨다. 의장 중에는 병기의 구실을 잃고 단순한 표지로 쓰인 물품들도 있다. 고려 시대에는 조회·절일·하례 때 의장이 있었다. 조선 시대에는 제도가 정비되어 의장의 격식도 대가·법가·소가 세 등급으로 구분하였다. 대가의장은 종묘·사직에, 법가의장은 문묘에, 소가의장은 성 내외에 거둥할 때 썼다. 『오례의』나 『속오례의』에는 왕비·왕세자, 대리청정자의 의장 규모와 제도도 실려 있다.
의장기는 각종 의전행사에서 위의를 갖추기 위하여 사용하는 깃발이다. 신분이나 지위가 높은 사람들의 의전이나 행차 시에 그 존엄과 권위를 과시하기 위하여 식장에 배열하거나 행진에 앞장서 이끌게 했다. 고려·조선 시대에는 왕이나 왕족의 조회·연회·행차 등에 동원된 물품 중 한 가지였다. 조선시대 이후 사용된 기의 실물·도안·사용 방법 등은 알려져 있다. 보통 그 문양에 따라 신수문류·신인문류·문자문류·부적문류·천체문류·도상문류·산수문류 등으로 대별할 수 있다. 오늘날은 국기·단체기·군기 등을 집합하여 의장기로 대용하는 일이 많다.
의장기 (儀仗旗)
의장기는 각종 의전행사에서 위의를 갖추기 위하여 사용하는 깃발이다. 신분이나 지위가 높은 사람들의 의전이나 행차 시에 그 존엄과 권위를 과시하기 위하여 식장에 배열하거나 행진에 앞장서 이끌게 했다. 고려·조선 시대에는 왕이나 왕족의 조회·연회·행차 등에 동원된 물품 중 한 가지였다. 조선시대 이후 사용된 기의 실물·도안·사용 방법 등은 알려져 있다. 보통 그 문양에 따라 신수문류·신인문류·문자문류·부적문류·천체문류·도상문류·산수문류 등으로 대별할 수 있다. 오늘날은 국기·단체기·군기 등을 집합하여 의장기로 대용하는 일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