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조선혜"
검색결과 총 17건
전도부인은 한국 개신교 초기에 유급으로 전도 활동에 종사하던 여성 종교인이다. 선교 개척기 한국 여성들에게 선교사의 생각을 전해주며, 선교사의 조력자 역할을 하였다. 한국에서의 개신교 여성 선교는 1885년 미감리회 첫 여선교사 메리 스크랜턴의 내한으로 시작되었다. 대체로 2∼5명의 전도부인은 선교사들과 함께 관할 지역에 파송되어 전도 사업을 수행하였다. 한국 교회가 제도화되는 과정 속에서 남성 사역자들의 경우 교회법을 따라 전문적인 목회자로 위상이 확립되었다. 하지만 전도부인은 한국 교회 형성과 발전에 큰 기여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실상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바가 없다.
전도부인 (傳道夫人)
전도부인은 한국 개신교 초기에 유급으로 전도 활동에 종사하던 여성 종교인이다. 선교 개척기 한국 여성들에게 선교사의 생각을 전해주며, 선교사의 조력자 역할을 하였다. 한국에서의 개신교 여성 선교는 1885년 미감리회 첫 여선교사 메리 스크랜턴의 내한으로 시작되었다. 대체로 2∼5명의 전도부인은 선교사들과 함께 관할 지역에 파송되어 전도 사업을 수행하였다. 한국 교회가 제도화되는 과정 속에서 남성 사역자들의 경우 교회법을 따라 전문적인 목회자로 위상이 확립되었다. 하지만 전도부인은 한국 교회 형성과 발전에 큰 기여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실상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바가 없다.
1892년 스크랜턴 선교사가 동대문 성벽 안에 시약소와 함께 세운 기독교대한감리회 서울연회 소속 교회.
동대문교회 (東大門敎會)
1892년 스크랜턴 선교사가 동대문 성벽 안에 시약소와 함께 세운 기독교대한감리회 서울연회 소속 교회.
아현교회는 1888년 설립된 기독교대한감리회 서울연회 서대문지방 소속 교회이다. 1885년 내한한 스크랜턴 선교사가 가난한 환자를 돌보며 의료활동을 시작했고, 1888년 애오개 시약소를 열었다. 시약소는 10개월 만에 문을 닫았지만, 스크랜턴 대부인(스크랜턴의 어머니)이 여성과 어린이를 대상으로 전도활동을 이어갔다. 1893년 노블 선교사 부부가 담당하면서 안정적 성장을 이루었다. 1925년 미국의 선교헌금으로 60평 규모의 벽돌 예배당을 지었다. 1954년 교단 분열을 겪었다. 1970년대 이후 국내교회 개척과 해외선교에 앞장서는 등 성장을 이루었다.
아현교회 (阿峴敎會)
아현교회는 1888년 설립된 기독교대한감리회 서울연회 서대문지방 소속 교회이다. 1885년 내한한 스크랜턴 선교사가 가난한 환자를 돌보며 의료활동을 시작했고, 1888년 애오개 시약소를 열었다. 시약소는 10개월 만에 문을 닫았지만, 스크랜턴 대부인(스크랜턴의 어머니)이 여성과 어린이를 대상으로 전도활동을 이어갔다. 1893년 노블 선교사 부부가 담당하면서 안정적 성장을 이루었다. 1925년 미국의 선교헌금으로 60평 규모의 벽돌 예배당을 지었다. 1954년 교단 분열을 겪었다. 1970년대 이후 국내교회 개척과 해외선교에 앞장서는 등 성장을 이루었다.
1913년 설립된 원주 최초의 서양식 의료기관.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原州Severance基督病院)
1913년 설립된 원주 최초의 서양식 의료기관.
원주제일교회는 1905년 강원도 영서지방에 최초로 설립된 기독교대한감리회 동부연회 원주서지방 소속 교회이다. 1905년 무스 선교사에 의해 원주읍교회라는 이름으로 설립되었으며, 남감리회에서 북장로회, 다시 북감리회로 소속이 변경되었다. 1914년 중등 교육기관인 의정학교를, 1916년에는 정신유치원을 설립하였으며, 같은 해(1916년) 붉은 벽돌 예배당을 신축했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며 예배당이 전소되는 어려움을 겪었으나, 1955년 재건하였다. 1995년 새로운 예배당을 봉헌하였으며, 국내에 20개의 지(支)교회를 개척하고 해외 선교에도 힘을 쏟았다.
원주제일교회 (原州第一敎會)
원주제일교회는 1905년 강원도 영서지방에 최초로 설립된 기독교대한감리회 동부연회 원주서지방 소속 교회이다. 1905년 무스 선교사에 의해 원주읍교회라는 이름으로 설립되었으며, 남감리회에서 북장로회, 다시 북감리회로 소속이 변경되었다. 1914년 중등 교육기관인 의정학교를, 1916년에는 정신유치원을 설립하였으며, 같은 해(1916년) 붉은 벽돌 예배당을 신축했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며 예배당이 전소되는 어려움을 겪었으나, 1955년 재건하였다. 1995년 새로운 예배당을 봉헌하였으며, 국내에 20개의 지(支)교회를 개척하고 해외 선교에도 힘을 쏟았다.
종교교회는 1900년 설립된 기독교대한감리회 서울연회 종로지방 소속 교회이다. 미국 남감리회의 여선교사 캠벨 부인이 1900년 부활주일을 기해 집회를 시작하며 잣골교회라고 하였다. 여성 중심의 학교 교회인 잣골교회가 1908년 4월 도렴동에 벽돌예배당을 건축하고 ‘종교교회’라고 이름하였다. 잣골교회를 지켰던 교인들은 후에 창성동 자수교 아래 자리 잡으면서 ‘자교교회’라 하였다. 종교교회에는 윤치호 등의 교육 운동가들이 출석하고 배화학당 교사들이 출석하면서 청년 학생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종교교회 (琮橋敎會)
종교교회는 1900년 설립된 기독교대한감리회 서울연회 종로지방 소속 교회이다. 미국 남감리회의 여선교사 캠벨 부인이 1900년 부활주일을 기해 집회를 시작하며 잣골교회라고 하였다. 여성 중심의 학교 교회인 잣골교회가 1908년 4월 도렴동에 벽돌예배당을 건축하고 ‘종교교회’라고 이름하였다. 잣골교회를 지켰던 교인들은 후에 창성동 자수교 아래 자리 잡으면서 ‘자교교회’라 하였다. 종교교회에는 윤치호 등의 교육 운동가들이 출석하고 배화학당 교사들이 출석하면서 청년 학생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광혜여원은 1898년 평양에 첫 번째로 설립된 감리교 여성병원이다. 평양부인병원, 평양보구여관이라고도 한다. 1894년 선교사 홀이 청일전쟁 중에 사망하자 1897년 홀 부인은 선교사 홀을 기리는 ‘기홀병원’을 설립하였고, 아울러 1898년 홀 부인은 평양에 ‘광혜여원’을 열어 여성들을 위한 진료 활동을 개시하였다. 1923년 기홀연합병원과 광혜여원을 연합하여 평양연합기독병원이 되었다.
광혜여원 (廣惠女院)
광혜여원은 1898년 평양에 첫 번째로 설립된 감리교 여성병원이다. 평양부인병원, 평양보구여관이라고도 한다. 1894년 선교사 홀이 청일전쟁 중에 사망하자 1897년 홀 부인은 선교사 홀을 기리는 ‘기홀병원’을 설립하였고, 아울러 1898년 홀 부인은 평양에 ‘광혜여원’을 열어 여성들을 위한 진료 활동을 개시하였다. 1923년 기홀연합병원과 광혜여원을 연합하여 평양연합기독병원이 되었다.
1980년 창립된 한국 최초의 개신교 여성 수도원 공동체.
한국디아코니아자매회 (韓國diaconia姉妹會)
1980년 창립된 한국 최초의 개신교 여성 수도원 공동체.
조선예수교장로회에서 『종교시보』를 개제하여 1936년에 창간한 신문. 개신교신문.
기독교보 (基督敎報)
조선예수교장로회에서 『종교시보』를 개제하여 1936년에 창간한 신문. 개신교신문.
기독교신문협회에서 장로교·감리교·성결교·구세군의 합동 기관지로 1942년에 창간한 신문. 개신교신문.
기독교신문 (基督敎新聞)
기독교신문협회에서 장로교·감리교·성결교·구세군의 합동 기관지로 1942년에 창간한 신문. 개신교신문.
1917년에, 서울 YMCA 인쇄소에서 크램(W. G. Cram) 등이 한글과 한국의 역사 등 한국학 관련 글을 영문으로 발행한 월간 선교 잡지.
코리아 매거진 (Korea Magazine)
1917년에, 서울 YMCA 인쇄소에서 크램(W. G. Cram) 등이 한글과 한국의 역사 등 한국학 관련 글을 영문으로 발행한 월간 선교 잡지.
1904년에, 미국의 남·북 감리회 선교부 합동 위원회에서 한국에서의 선교 활동 내용을 영문으로 발행한 월간 잡지.
코리아 메도디스트 (Korea Methodist)
1904년에, 미국의 남·북 감리회 선교부 합동 위원회에서 한국에서의 선교 활동 내용을 영문으로 발행한 월간 잡지.
재한선교부연합공의회에서 윌리엄스(F. E. C. Williams) 등이 한국선교사업의 총체적 성과에 대하여 1928년에 발행한 개신교서. 선교부연감.
코리아 미션스 이어북 (Korea Missions YearBook)
재한선교부연합공의회에서 윌리엄스(F. E. C. Williams) 등이 한국선교사업의 총체적 성과에 대하여 1928년에 발행한 개신교서. 선교부연감.
『코리안 인트랜지션』은 1909년 미국 북장로회 선교사 게일이 격변기 조선의 모습과 초기 선교 활동을 기술한 개설서이다. 총 8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1909년 뉴욕에서 발행되었고 1911년에는 덴마크어로 번역 출간되었다. 저자인 게일은 1888년 이래로 주로 평양과 원산에서 선교활동을 했다. 『구운몽』, 『춘향전』 등을 영어로 번역하고, 『The Pilgrim’s Progress』(천로역정) 등 영문 소설을 한글로 번역하였다. 『코리안 인트랜지션』에서 격변기 조선의 모습과 선교 활동을 기술하였다. 조선이 아시아 복음화를 위한 선구자 역할을 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코리아 인트랜지션 (Korea in Transition)
『코리안 인트랜지션』은 1909년 미국 북장로회 선교사 게일이 격변기 조선의 모습과 초기 선교 활동을 기술한 개설서이다. 총 8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1909년 뉴욕에서 발행되었고 1911년에는 덴마크어로 번역 출간되었다. 저자인 게일은 1888년 이래로 주로 평양과 원산에서 선교활동을 했다. 『구운몽』, 『춘향전』 등을 영어로 번역하고, 『The Pilgrim’s Progress』(천로역정) 등 영문 소설을 한글로 번역하였다. 『코리안 인트랜지션』에서 격변기 조선의 모습과 선교 활동을 기술하였다. 조선이 아시아 복음화를 위한 선구자 역할을 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만국부인기도회 사건은 1941년 2월 28일 일제가 선교사들과 한국교회 여성들을 검거하여 심문·기소한 사건이다. 일제는 1941년 ‘세계기도일’ 예배를 일제의 정책을 비판하고 인심을 교란시켜 치안을 방해하려 획책한 반전모략사건으로 규정하였다. 일제는 주도적으로 참여한 선교사와 교인 27명을 기소하고 주동적인 교회 여성들 포함 672명에 달하는 교인들을 심문하였다. 1941년 10월 기도회 사건에 연루된 선교사들이 한국을 떠남으로써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일제의 의도는 한국교회에 대한 사상통제를 강화해 일본기독교에의 종속을 확고히 하고자 함이었다.
만국부인기도회 사건 (萬國婦人祈禱會 事件)
만국부인기도회 사건은 1941년 2월 28일 일제가 선교사들과 한국교회 여성들을 검거하여 심문·기소한 사건이다. 일제는 1941년 ‘세계기도일’ 예배를 일제의 정책을 비판하고 인심을 교란시켜 치안을 방해하려 획책한 반전모략사건으로 규정하였다. 일제는 주도적으로 참여한 선교사와 교인 27명을 기소하고 주동적인 교회 여성들 포함 672명에 달하는 교인들을 심문하였다. 1941년 10월 기도회 사건에 연루된 선교사들이 한국을 떠남으로써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일제의 의도는 한국교회에 대한 사상통제를 강화해 일본기독교에의 종속을 확고히 하고자 함이었다.
여메례는 일제강점기 청주교회 전도사, 조치원교회 전도사로 시무한 개신교인이자 교육자이다. 1872년 경상남도 마산에서 태어났다. 이화학당에서 공부하며 ‘메리’라는 세례명을 받았는데 메례는 메리의 한자 음역이다. 진명여학교에서 학감을 맡았고 영어가 능통해 어전통역관 등으로 활동했다. 1923년에 경성성서학원(현 서울신학대학교)을 졸업했다. 1925년부터 성서학원 교수가 되어 학생들을 가르쳤고 1929년에는 여자부 사감이 되었다. 1931년 사감직을 사임하고 교회에서 목회를 시작하였다. 1933년 조치원교회에서 전도사로 시무하던 중 사망하였다.
여메례 (余袂禮)
여메례는 일제강점기 청주교회 전도사, 조치원교회 전도사로 시무한 개신교인이자 교육자이다. 1872년 경상남도 마산에서 태어났다. 이화학당에서 공부하며 ‘메리’라는 세례명을 받았는데 메례는 메리의 한자 음역이다. 진명여학교에서 학감을 맡았고 영어가 능통해 어전통역관 등으로 활동했다. 1923년에 경성성서학원(현 서울신학대학교)을 졸업했다. 1925년부터 성서학원 교수가 되어 학생들을 가르쳤고 1929년에는 여자부 사감이 되었다. 1931년 사감직을 사임하고 교회에서 목회를 시작하였다. 1933년 조치원교회에서 전도사로 시무하던 중 사망하였다.
중앙교회는 1890년 설립된 기독교대한감리회 서울연회 종로지방 소속 교회이다. 한국 최초의 감리교 선교사 아펜젤러는 1887년 정동제일교회를 설립하였다. 1890년 자연스러운 복음 전파를 위해 종로서점을 열었다. 이 종로서점이 중앙교회의 출발점이 되었으며, 1910년 이경직 전도사 부임 후 급성장했다. 1916년 설립된 중앙유치원은 한국 근대 유치원 교육의 모델이 되었고, 중앙대학교의 모태가 되었다. 중앙교회의 담임 김창준 전도사와 박희도 전도사가 3·1운동의 민족대표로 서명하여 옥고를 치렀다. 해방 후 한국 감리교회의 중심 교회로 발전했다.
중앙교회 (中央敎會)
중앙교회는 1890년 설립된 기독교대한감리회 서울연회 종로지방 소속 교회이다. 한국 최초의 감리교 선교사 아펜젤러는 1887년 정동제일교회를 설립하였다. 1890년 자연스러운 복음 전파를 위해 종로서점을 열었다. 이 종로서점이 중앙교회의 출발점이 되었으며, 1910년 이경직 전도사 부임 후 급성장했다. 1916년 설립된 중앙유치원은 한국 근대 유치원 교육의 모델이 되었고, 중앙대학교의 모태가 되었다. 중앙교회의 담임 김창준 전도사와 박희도 전도사가 3·1운동의 민족대표로 서명하여 옥고를 치렀다. 해방 후 한국 감리교회의 중심 교회로 발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