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홍선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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냅코프로젝트는 미국의 특수공작기관인 OSS(전략첩보국)가 1944년 말부터 1945년 초에 걸쳐 한인 공작원들을 한반도에 침투시켜 미일전쟁을 승리로 이끌고자 했던 한반도침투작전이다. OSS가 실행한 특수작전으로, 공작원들은 재미 한인 중 민간인과 군인, 미국 내 포로수용소 출신의 한인 포로, 버마에서 탈출한 학병출신 한인 등으로 구성되었다. 공중 혹은 잠수함으로 한국에 침투시켜 무장 유격활동을 전개한다는 계획 아래 혹독한 훈련을 실시하던 중 일본의 항복 선언으로 냅코프로젝트는 종결되었고, 같은 해 9월 훈련에 참가한 한인들은 해산되었다.
냅코 프로젝트 (NAPKO Project)
냅코프로젝트는 미국의 특수공작기관인 OSS(전략첩보국)가 1944년 말부터 1945년 초에 걸쳐 한인 공작원들을 한반도에 침투시켜 미일전쟁을 승리로 이끌고자 했던 한반도침투작전이다. OSS가 실행한 특수작전으로, 공작원들은 재미 한인 중 민간인과 군인, 미국 내 포로수용소 출신의 한인 포로, 버마에서 탈출한 학병출신 한인 등으로 구성되었다. 공중 혹은 잠수함으로 한국에 침투시켜 무장 유격활동을 전개한다는 계획 아래 혹독한 훈련을 실시하던 중 일본의 항복 선언으로 냅코프로젝트는 종결되었고, 같은 해 9월 훈련에 참가한 한인들은 해산되었다.
대한인동지회는 대한민국임시정부와 임정대통령 이승만의 독립운동을 돕기 위해 하와이의 한인들이 호놀룰루에 설립한 민족운동 단체이다. 임정대통령에 임명된 이승만의 지지 기반을 확보하기 위해 1921년 7월에 설립을 결의하고 11월에 하와이 한인대표회를 개최하여 조직을 강화하였다. 미일전쟁 발발 이후 워싱턴DC로 기반을 옮기고 북미동지회총지부를 조직하여 활동하였다. 이후 재미한족연합위원회에서 이탈해 독자노선을 굳히면서 이승만 지지 세력들로만 결속되었다. 미주한인사회의 대표적인 민족운동단체이면서 종신 총재 이승만의 정치 활동을 적극 지지하는 단체로 해방 이후에도 활동하였다.
대한인동지회 (大韓人同志會)
대한인동지회는 대한민국임시정부와 임정대통령 이승만의 독립운동을 돕기 위해 하와이의 한인들이 호놀룰루에 설립한 민족운동 단체이다. 임정대통령에 임명된 이승만의 지지 기반을 확보하기 위해 1921년 7월에 설립을 결의하고 11월에 하와이 한인대표회를 개최하여 조직을 강화하였다. 미일전쟁 발발 이후 워싱턴DC로 기반을 옮기고 북미동지회총지부를 조직하여 활동하였다. 이후 재미한족연합위원회에서 이탈해 독자노선을 굳히면서 이승만 지지 세력들로만 결속되었다. 미주한인사회의 대표적인 민족운동단체이면서 종신 총재 이승만의 정치 활동을 적극 지지하는 단체로 해방 이후에도 활동하였다.
이승만이 대한인동지회(大韓人同志會)를 미주한인사회 독립운동의 중심 단체로 확장 · 발전시키기 위해 1930년 7월 15일부터 21일까지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개최한 대회를 말한다. 하와이 교민단총회관과 신흥국어학교에서 연 800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성대히 개최되었다. 하와이 대표 외에 북미에서 온 대표는 시카고 대표 김원용과 나성 대표 최영기가 참석했다. 동지회의 헌장과 정강을 확정한 것과 구미위원부와 임시정부 사이의 법통 관계를 정리한 것, 그리고 동지회를 독립운동의 유일한 정치단체로 인정한 것은 이번 대회의 중요한 성과였다.
동지미포대표회 (同志美布代表會)
이승만이 대한인동지회(大韓人同志會)를 미주한인사회 독립운동의 중심 단체로 확장 · 발전시키기 위해 1930년 7월 15일부터 21일까지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개최한 대회를 말한다. 하와이 교민단총회관과 신흥국어학교에서 연 800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성대히 개최되었다. 하와이 대표 외에 북미에서 온 대표는 시카고 대표 김원용과 나성 대표 최영기가 참석했다. 동지회의 헌장과 정강을 확정한 것과 구미위원부와 임시정부 사이의 법통 관계를 정리한 것, 그리고 동지회를 독립운동의 유일한 정치단체로 인정한 것은 이번 대회의 중요한 성과였다.
1919년 3월 미국 캘리포니아 다뉴바(Dinuba) 지역 여성들이 결성한 독립운동단체.
신한부인회 (新韓婦人會)
1919년 3월 미국 캘리포니아 다뉴바(Dinuba) 지역 여성들이 결성한 독립운동단체.
러일강화회의 한인대표 외교활동은 윤병구와 이승만이 1905년 러일강화회의 때 대한제국의 주권과 독립을 지키기 위해 미국 정부를 상대로 전개한 외교활동이다. 1905년 러일강화회의를 앞두고 하와이 한인사회는 한국 독립을 보장받기 위한 외교 활동을 시도했다. 윤병구와 이승만은 루즈벨트 대통령을 만나 한국의 주권과 독립을 위한 청원서를 제출하였다. 그러나 미국과 러시아의 묵인과 승인 속에서 한국을 보호국화 하려는 일본의 의도대로 종결되었다. 대한제국의 주권과 독립을 보전하기 위한 외교적 노력이 미주한인들에 의해 자발적으로 전개되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러일강화회의 한인대표 외교활동 (←Russia日講和會議 韓人代表 外交活動)
러일강화회의 한인대표 외교활동은 윤병구와 이승만이 1905년 러일강화회의 때 대한제국의 주권과 독립을 지키기 위해 미국 정부를 상대로 전개한 외교활동이다. 1905년 러일강화회의를 앞두고 하와이 한인사회는 한국 독립을 보장받기 위한 외교 활동을 시도했다. 윤병구와 이승만은 루즈벨트 대통령을 만나 한국의 주권과 독립을 위한 청원서를 제출하였다. 그러나 미국과 러시아의 묵인과 승인 속에서 한국을 보호국화 하려는 일본의 의도대로 종결되었다. 대한제국의 주권과 독립을 보전하기 위한 외교적 노력이 미주한인들에 의해 자발적으로 전개되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국제연합기구 창설문제를 협의하려는 미국과 영국 정부의 샌프란시스코회의(1945.4.25.)에 대비하고자 1945년 3월 재미한족연합위원회가 결성한 외교 대표단이다. 조직은 단장 한시대, 재무 유진석, 단원 김호·한길수·김용성·김병연·박상엽으로 정했다. 기존의 임정대표단과 별도로 해외한족대표단을 결성한 것은 임정과 이승만에 대한 강한 불신과 외교활동을 미주한인의 독자적인 힘으로 추진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었다. 국제대회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와 별도로 미주한인이 단독으로 선전외교활동을 전개한 대표적인 사례이다.
해외한족대표단 (海外韓族代表團)
국제연합기구 창설문제를 협의하려는 미국과 영국 정부의 샌프란시스코회의(1945.4.25.)에 대비하고자 1945년 3월 재미한족연합위원회가 결성한 외교 대표단이다. 조직은 단장 한시대, 재무 유진석, 단원 김호·한길수·김용성·김병연·박상엽으로 정했다. 기존의 임정대표단과 별도로 해외한족대표단을 결성한 것은 임정과 이승만에 대한 강한 불신과 외교활동을 미주한인의 독자적인 힘으로 추진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었다. 국제대회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와 별도로 미주한인이 단독으로 선전외교활동을 전개한 대표적인 사례이다.
한인여학원은 1915년 10월 이승만이 하와이 호놀룰루에 설립한 여성 교육기관이다. 한인들의 기부로 세운 사립학교이다. 한인 여학생들에게 미국 시민으로서의 일반 교육과 한국인으로서의 민족교육을 제공하기 위해 설립하였다. 미국 공립학교와 같은 체제로 모두 영어로 수업을 하고 한글 교육과 한국 역사 교육을 병행하였다. 교육 이념으로 기독교 사상과 민족주의 사상을 고취하였다. 개교 당시 한인 여학생은 45명이었는데 1918년 처음으로 한인 남학생을 입학시킨 후 학생 수가 100명으로 증가했다. 남녀평등의 정신을 실현한 민족교육 기관으로 평가된다.
한인여학원 (韓人女學院)
한인여학원은 1915년 10월 이승만이 하와이 호놀룰루에 설립한 여성 교육기관이다. 한인들의 기부로 세운 사립학교이다. 한인 여학생들에게 미국 시민으로서의 일반 교육과 한국인으로서의 민족교육을 제공하기 위해 설립하였다. 미국 공립학교와 같은 체제로 모두 영어로 수업을 하고 한글 교육과 한국 역사 교육을 병행하였다. 교육 이념으로 기독교 사상과 민족주의 사상을 고취하였다. 개교 당시 한인 여학생은 45명이었는데 1918년 처음으로 한인 남학생을 입학시킨 후 학생 수가 100명으로 증가했다. 남녀평등의 정신을 실현한 민족교육 기관으로 평가된다.
주영한은 일제강점기 때, 미국에서 대한인국민회 나성지방회 재무, 구미위원부 사무원 등을 역임하였으며, 해방 이후 이승만 정부에 대한 선전 활동을 펼친 독립운동가이다. 1916년 미국 유학을 떠나 로스앤젤레스공립중학교를 다녔다. 클리블랜드와 애크론에 살면서 3·1절 경축식을 거행하고 대한민국임시정부 승인 운동을 전개했다. 또한 『공개편지』를 창간해 한국 독립을 위한 선전 활동을 전개했다. 해방 후 샌프란시스코 초대 총영사로 활동하였다. 이승만의 정치 선전 활동을 전개하다가 한인들로부터 총영사 소환 요구를 받고 1960년 사임하였다.
주영한 (朱榮翰)
주영한은 일제강점기 때, 미국에서 대한인국민회 나성지방회 재무, 구미위원부 사무원 등을 역임하였으며, 해방 이후 이승만 정부에 대한 선전 활동을 펼친 독립운동가이다. 1916년 미국 유학을 떠나 로스앤젤레스공립중학교를 다녔다. 클리블랜드와 애크론에 살면서 3·1절 경축식을 거행하고 대한민국임시정부 승인 운동을 전개했다. 또한 『공개편지』를 창간해 한국 독립을 위한 선전 활동을 전개했다. 해방 후 샌프란시스코 초대 총영사로 활동하였다. 이승만의 정치 선전 활동을 전개하다가 한인들로부터 총영사 소환 요구를 받고 1960년 사임하였다.
1919년 5월 재미한인 청년들이 독립운동에 전념하기 위해 결성한 청년단체.
청년혈성단 (靑年血誠團)
1919년 5월 재미한인 청년들이 독립운동에 전념하기 위해 결성한 청년단체.
북미대한인유학생총회는 미주 한인 유학생들이 결성한 최대의 학생단체이다. 제1차 세계대전 종결 이후 개최될 파리강화회의를 대비하기 위해 1919년 1월 1일 오하이오주에서 미주대한인학생회가 결성되었다. 이후 미국 각지에서 한인학생들의 독자활동이 전개되자, 1921년 각 지역 학생회를 통합한 북미대한인유학생총회를 결성하였다. 1945년까지 활동하면서 영문·국문잡지를 발간하고, 국내에 의연금을 송금하며, 일제 침략규탄 운동 등을 전개하였다. 북미대한인유학생총회는 학생신분으로 민족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해방 후 근대 국가건설을 위한 인재가 되기 위해 노력하였다.
북미대한인유학생총회 (北美大韓人留學生總會)
북미대한인유학생총회는 미주 한인 유학생들이 결성한 최대의 학생단체이다. 제1차 세계대전 종결 이후 개최될 파리강화회의를 대비하기 위해 1919년 1월 1일 오하이오주에서 미주대한인학생회가 결성되었다. 이후 미국 각지에서 한인학생들의 독자활동이 전개되자, 1921년 각 지역 학생회를 통합한 북미대한인유학생총회를 결성하였다. 1945년까지 활동하면서 영문·국문잡지를 발간하고, 국내에 의연금을 송금하며, 일제 침략규탄 운동 등을 전개하였다. 북미대한인유학생총회는 학생신분으로 민족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해방 후 근대 국가건설을 위한 인재가 되기 위해 노력하였다.
1913년 네브라스카주 헤스팅스지역에서 한인 유학생들이 결성한 학생단체.
북미유학생총회 (北美留學生總會)
1913년 네브라스카주 헤스팅스지역에서 한인 유학생들이 결성한 학생단체.
임성우는 일제강점기 때, 하와이 대한인국민회 총회장, 한국독립당 하와이총지부 집행위원장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이다. 1889년 서울에서 출생하였고, 1900년대 말경 하와이로 이민 간 것으로 보인다. 하와이에서 동포 간 상업을 장려하기 위해 조직된 조미구락부의 2대 총재로 활동했다. 또 상해 임시정부가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비밀리에 재정을 지원하였다. 공식적으로 임시정부를 후원하는 단체를 결성하고 독립활동 지원금 모금을 지속하였다. 평생 독립운동에 앞장섰던 점을 높이 사서 1997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임성우 (林成雨)
임성우는 일제강점기 때, 하와이 대한인국민회 총회장, 한국독립당 하와이총지부 집행위원장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이다. 1889년 서울에서 출생하였고, 1900년대 말경 하와이로 이민 간 것으로 보인다. 하와이에서 동포 간 상업을 장려하기 위해 조직된 조미구락부의 2대 총재로 활동했다. 또 상해 임시정부가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비밀리에 재정을 지원하였다. 공식적으로 임시정부를 후원하는 단체를 결성하고 독립활동 지원금 모금을 지속하였다. 평생 독립운동에 앞장섰던 점을 높이 사서 1997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일제강점기 미국에서 대한인국민회를 중심으로 독립운동을 후원한 기업인.
정봉규
일제강점기 미국에서 대한인국민회를 중심으로 독립운동을 후원한 기업인.
1925년 한미 두 민족간의 친목과 복리를 증진하기 위해서 설립한 단체.
조미구락부 (朝美俱樂部)
1925년 한미 두 민족간의 친목과 복리를 증진하기 위해서 설립한 단체.
미주한인 사회에서 한미 양국의 우호를 증진하기 위해 설립한 단체.
미주한인재단 (美州韓人財團)
미주한인 사회에서 한미 양국의 우호를 증진하기 위해 설립한 단체.
한인들의 상업을 확대하고 경제적인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 설립한 경제단체.
한인농상주식회사 (韓人農商株式會社)
한인들의 상업을 확대하고 경제적인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 설립한 경제단체.
1932년 3월 하와이 한인 2세 여성들이 조직한 문화단체.
해당화클럽 (海棠花club)
1932년 3월 하와이 한인 2세 여성들이 조직한 문화단체.
미주한인의 날은 한인들이 하와이에 처음 도착한 1903년 1월 13일을 기념하여 법률로 제정한 민족기념일이다. 미주로 이민한 한인들을 위해 미국 연방의회가 법률로서 제정한 공식 기념일이다. 이 법률의 제정은 미주한인의 개척적인 삶과 미국 사회에서의 활동을 높이 평가받았음을 의미한다. 이 법률로 인해 미주한인들은 미국 사회에서 당당한 주역의 일원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현재 미주한인재단은 매년 전국적으로 미주한인의 날 기념행사를 거행하고 있다. 이를 통해 이민 선조들의 애국심을 선양하고 차세대 한인들에게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미주한인의 날 (美州韓人의 날)
미주한인의 날은 한인들이 하와이에 처음 도착한 1903년 1월 13일을 기념하여 법률로 제정한 민족기념일이다. 미주로 이민한 한인들을 위해 미국 연방의회가 법률로서 제정한 공식 기념일이다. 이 법률의 제정은 미주한인의 개척적인 삶과 미국 사회에서의 활동을 높이 평가받았음을 의미한다. 이 법률로 인해 미주한인들은 미국 사회에서 당당한 주역의 일원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현재 미주한인재단은 매년 전국적으로 미주한인의 날 기념행사를 거행하고 있다. 이를 통해 이민 선조들의 애국심을 선양하고 차세대 한인들에게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미주한인이민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하와이를 비롯한 미국 전역에 설립된 단체.
미주한인이민100주년기념사업회 (美州韓人移民百周年記念事業會)
미주한인이민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하와이를 비롯한 미국 전역에 설립된 단체.
1919년 8월 시카고 지역 한인들에 의해 설립된 한인감리교회.
시카고한인제일연합감리교회 (Chicago韓人第一聯合監理敎會)
1919년 8월 시카고 지역 한인들에 의해 설립된 한인감리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