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권 1책. 필사본. 권두에 유최기(兪最基)·김영한(金寗漢) 등의 서문이 있다. 1977년『금사병암유집(錦沙屛巖遺集)』으로 영인, 간행되었다. 고려대학교 도서관과 국민대학교 도서관 등에 있다.
권1에 시 240수, 권2에 소 3편, 서(書) 3편, 기 1편, 제문 2편, 행장 2편, 부록으로 묘지명 1편, 여지승람초(輿地勝覽抄) 1편, 가승초(家乘抄) 2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시는 대체로 자연시인데, 인목대비의 폐모론과 병자호란의 비분한 한을 표현한 것도 있다. 소의 「청유완평부원군이원익잉척흉당소(請宥完平府院君李元翼仍斥凶黨疏)」는 1615년(광해군 7)에 유배가게 된 이원익(李元翼)을 비호하는 한편, 인목대비를 서궁에 유폐시키는 데 앞장선 이위경(李偉卿)·정조(鄭造)·윤인(尹訒) 등과 정인홍(鄭仁弘)·이이첨(李爾瞻) 등을 탄핵한 글이다.
「청경천근민소(請敬天勤民疏)」는 1643년(인조 21)에 올린 상소로, 왕은 경천에 근본한 요·순(堯舜)의 도와 근민에 근본한 우·탕(禹湯)의 덕을 본받아야 하며, 병자호란의 치욕을 씻을 방책으로 내수외양(內修外攘)할 것을 호소하는 내용이다. 「인재이진오사소(因災異陳五事疏)」는 1644년 왕의 20년 동안의 치적이 지지부진한 데 대한 불만을 토로하고, 아울러 혁신적이고 원만한 국정을 촉구한 것이다.
서 중 「답지주이후형(答地主李侯逈)」은 1637년 수령인 이형(李逈)에게 답한 서한으로, 병자호란 때 의병의 소집, 무기와 군수물자 등의 수집현황 및 조치사항을 기록하였다. 부록에는 『동국여지승람』 등에 소장, 기록된 저자의 관계사실을 모은 것이 들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