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암유고 ()

유교
문헌
조선 후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생존한 학자 · 독립운동가, 이중업의 시 · 서(書) · 기 · 제문 등을 수록한 시문집.
정의
조선 후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생존한 학자 · 독립운동가, 이중업의 시 · 서(書) · 기 · 제문 등을 수록한 시문집.
편찬/발간 경위

이중업의 아들 이동흠(李東欽)과 이종흠(李棕欽)이 편집한 것을 1986년 손자 이윤덕(李潤德) 등이 영인하였다. 서문은 없고, 권말에 증손자 이부(李滏)의 후지(後識)가 있다.

서지적 사항

28권 14책. 필사본. 규장각 도서와 각 대학 도서관에 있다.

내용

권1에 시 186수, 상언(上言) 1편, 격문(檄文) 1편, 권2∼20에 서(書) 753편, 권21에 서(序) 6편, 기 11편, 발 5편, 명·잠·설·상량문 각 1편, 고유문 5편, 권22에 제문 12편, 권23에 묘비명 1편·묘갈명 16편, 권24에 행장 4편, 유사 1편, 권25∼28에 부록으로 만사 11편, 제문 129편, 뇌문(誄文) 1편, 묘지명·행장 등이 수록되어 있다.

시는 우국충정을 표현한 것, 승경(勝景)을 유람하고 그 감상을 읊은 것, 자신의 학문정진과 올바른 삶을 스스로 경계하는 것 등이 있다. 전체적으로 진솔하고 담백하여 고체시의 격조를 지니고 있다. 이 가운데 「도하연진왜이입선자퇴부등부고풍(到荷淵津倭已入船自退不登賦古風)」은 서릿발 같은 절개와 충의를 담백하면서도 기운차게 묘사한 작품이다. 「청풍명월야음(淸風明月夜吟)」과 「부귀(富貴)」에는 그의 겸허하면서도 진취적인 삶의 태도가 질박한 언어로 표현되어 있다.

「당교격문(唐橋檄文)」은 1895년 을미사변이 일어나자 안동과 예안을 중심으로 영남 일대의 유생들을 규합해 창의한 내용이다. 서(書)에는 스승·친지·제자·친척들에게 안부를 묻거나 학문상의 문제점을 질의·토론한 것과, 시사(時事)를 설명하고 걱정한 내용이 많다. 그 가운데 「답서산선생(答西山先生)」에서는 이황의 「중용문목(中庸問目)」 및 「심학도제설조(心學圖諸說條)」와 정구(鄭逑)의 「존양성찰(存養省察)」을 비교하여 설명했고, 「답권찬수(答權贊粹)」에는 도산서원(陶山書院)의 각 재(齋)의 설립 동기와 연원 및 그에 관련된 숨은 이야기들이 상세히 기술되어 있다.

「답유현경(答柳見卿)」은 병환 중인 아버지를 대신해 을미사변 후 날로 더해 가는 왜인들의 흉계를 지적하고 오적의 매국 행위를 규탄하는 내용의 소를 올리려고 했으나, 궁궐을 이미 왜인들이 지키고 있어 올릴 수 없었던 당시의 일을 상세히 기록한 것이다. 요직에 있는 관료들을 찾아가 부탁했으나 거절당하고, 노력 끝에 대원군의 사위인 판서 조정구(趙鼎九)를 통해 임금에게 소를 올릴 수 있었다. 그런데 임금도 왜인의 감시가 두려워 비답(批答)을 하지 못하고 “충의로써 영남 선비들과 함께 창의하라. 그러나 지난번 김복한(金福漢)이 이와 비슷한 소를 올렸다가 오적들에 의해 감금되었으니 조심해야 된다.”고 밀교를 내리자 통곡했다는 내용이다.

만사와 제문은 영남의 사림들이 그의 학덕과 애국충정 및 절의를 칭송한 것이다. 끝에 그의 아들 이동흠의 『이고만제록(貳顧挽祭錄)』과 이종흠의 『반산유고(泮山遺稿)』가 부록되어 있다.

집필자
한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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