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소는 세로로 부는 짧은 죽부 단관 관악기(管樂器)이다. 단소라는 명칭은 조선 후기 문인들의 시나 판소리, 무가 사설에 등장하였다. 조선 후기 단소는 풍류 음악과 민간 기악에 다양하게 활용되었는데, 일제강점기에 조선정악전습소의 교습 과목으로 채택되고, 이왕직아악부에서도 연주되었다. ‘U’자 형태의 취구로 김을 내어 소리를 내는데 다섯 개의 지공을 가지고 두 옥타브에 해당하는 맑고 청아한 음색을 낸다. 사용하는 지역에 따라 경제단소와 향제단소 두 가지가 있다. 오늘날에는 국악 입문용 악기로 사랑받고 있다.
단소(短簫)는 ‘짧은 퉁소’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고대에 소(簫)는 주1나 주2와 같이 여러 개의 관을 묶어 연주하는 편관(編管) 악기였으며, 단관(單管)으로 되어 있는 세로로 부는 관악기를 적(笛)이라 불렀다. 적은 그 길이에 따라 장적(長笛), 단적(短笛)이라 이름하였는데, 『체원초』에 따르면 일본에 전해진 고려적(高麗笛) 중 단적을 척팔(尺八)이라 불렀다. 백제의 의자왕이 일본에 전한 척팔 중에는 오늘날 국립국악원에서 사용하는 단소보다 한 주3을 더 가지고 있는 것을 제외하고 제작 도안이 같은 척팔이 존재하는데, 이로부터 고대 한반도에는 오늘날 단소와 유사한 관악기가 존재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세로로 부는 단관 악기를 소라고 이름한 경우는 17세기 악보인 『백운암금보(白雲庵琴譜)』에 수록된 ‘소평조계면조(簫平調界面調)’라는 악곡과 그 옆에 제시된 산형(散形)에서 처음 살펴볼 수 있는데, 이는 세로로 부는 단관 악기인 소로 연주하는 ‘평조계면조’라는 뜻을 갖는다.
하지만 단소라는 명칭이 등장한 것은 후대이다. 18세기 이후 이덕무(李德懋)나 조수삼(趙秀三)의 시에는 단소라는 악기 명칭이 등장하고 있으며, 『왈자타령』이나 『춘향가』 같은 판소리와 무가의 사설에서도 그 명칭이 등장하였다. 이를 보면 조선 후기 단소는 풍류 등 다양한 음악에서 활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일제강점기 단소는 우리나라의 주13을 보존하기 위해서 1909년 9월 주4로부터 장려금을 받고, 백용진(白瑢鎭) 등이 조직한 조양구락부(調陽俱樂部)와 그의 후신 조선정악전습소(朝鮮正樂傳習所)에서도 교습 과목으로 채택되기도 하였다. 조선정악전습소의 단소 교사로는 이춘우(李春雨), 조동석(趙東錫)이 있었으며, 1912년 조선악과 졸업생 중 단소과 졸업생으로 현동철(玄東轍)이 있다. 또한 조선시대 장악원의 뒤를 이어받은 이왕직아악부(李王職雅樂部)에서는 줄풍류(줄風流)인 중광지곡(重光之曲), 정상지곡(呈祥之曲)과 가곡인 만년장환지곡(萬年長歡之曲), 그리고 주5으로 알려진 요천순일지곡(堯天舜日之曲)의 단소 음악이 연주되고 전승되기 시작하였다. 이들 음악은 정간보 및 오선보 형식의 단소보(短簫譜)로 전승되고 있다. 이 시기 민간 단소 음악에서도 단소산조가 형성되기 시작하였는데, 해방 후 추산 전용선(秋山 全用先, 1888~1965)이 단소산조를 구성하여 이름을 알렸다.
이왕직아악부의 단소 음악은 오늘날 국립국악원을 통해 전승되었으며, 민간의 단소산조는 맥이 끊겼다가 다시 몇몇 연주가들에 의해 복원되어 연주되고 있으며, 이생강 등의 대금산조 명인들이 자신의 단소산조를 구성하여 연주해 오고 있다. 현재 단소는 간단한 구조와 저렴한 가격 등의 이유로 대중들에게 국악 입문용 악기로 사랑을 받고 있으며, 그로 인해 초등학교 음악 교육에서 채택되어 보급되고 있다.
단소를 제작하는 재료는 오래 묵은 주12이나 오죽(烏竹)을 쓰는데, 경우에 따라서는 플라스틱이나 금속 및 옥과 같은 석재를 사용하기도 한다. 대나무 관에 입김을 넣을 수 있는 취구(吹口)를 ‘U’자 형태로 파서 만들고, 음 높이를 낼 수 있는 주14을 위로부터 뒤에 하나, 앞에 네 개를 뚫어서 악기를 제작한다.
입술을 가볍게 다문 상태에서 아래 입술에 취구를 대고 가볍게 김을 불어 넣는데 김이 취구의 안팎으로 나뉘어 들어가면서 관 안의 공기를 진동하게 하여 소리를 낸다. 김의 세기에 따라 주15을 낼 수 있는 악기로 주16와 주17로 옥타브 소리를 낼 수 있다. 음역은 두 옥타브 정도를 낼 수 있으며, 그 음색은 맑고 청아하다.
단소는 사용하는 지역에 따라 경제단소와 향제단소 두 가지 종류가 있다. 경제는 서울과 경기 지역의 음악에 사용하는 단소이며, 향제는 지방에서 사용하는 단소를 말한다. 경제는 다 막고 내는 음과 다 열고 내는 음이 다르나, 향제는 서로 동일하다. 그리고 다 막고 내는 음고가 경제보다 향제가 반음 정도 높다. 그 이유는 향제의 경우 산조와 같은 음악을 연주하기 위해 쉽게 하기 위해서라 할 수 있다.
또한 연주하는 음악에 따라 기본음이 다른 단소를 사용하기도 한다. 이럴 때는 사용하는 음악의 악조에 따라 계면조단소와 평조단소로 구분한다. 평조는 계면조를 4도 아래로 낮춘 ‘낮은 조’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4도 아래 음을 내기 위해 길게 제작된다. 일반적으로 계면조단소는 주18 중 「중광지곡」 연주에 사용되며, 평조단소는 영산회상 중 「평조회상」 연주에 사용된다. 이런 기본음이 다른 단소는 계면조단소와 평조단소 이외에 개인에 따라 다 막은 음의 음고를 다양하게 제작하여 사용하기도 한다. 특히 시조 연주에서는 사람에 따라 기준이 되는 음의 높이가 다르기 때문이다.
김기수는 『단소율보(短簫律譜)』에서 오늘날 연주하는 단소 음악을 도드리 송구여[細還入 頌九如], 영산회상 중광곡(靈山會相 重光曲), 취타 수요남극(吹打 壽耀南極), 다스름(右 · 界面 治音 調音 平調 · 界面調), 가곡 만년장환(歌曲 萬年長歡), 긴염불 헌천수(獻天壽), 청성곡 요천순일(淸聲曲 堯天舜日), 시조 평시조(時調 平時調), 가사 죽지사(歌詞 竹枝詞), 산조(허튼가락 散調) 등으로 제시하였다. 위 음악에 포함되지 않는 단소 음악이라 한다면 다양한 민요 반주와 단소 창작곡쯤이라 할 수 있다.
위와 같은 단소 음악은 대부분 일제강점기 근대화 과정부터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근대식 극장에서의 공연에도 단소 연주는 주된 레파토리가 되었으며, 그러한 음악은 라디오에서의 실연과 유성기 음반으로의 발매로 대중들에게 보급되었다. 일제강점기 단소 음악은 주6와 주7, 주8 등으로 연주되었는데 병주의 경우 양금(洋琴)이나 생황(笙簧) 등의 악기와 함께 구성된다. 당시 우리나라에는 서양 음악이 유입되어 학교에서 교육되었고, 유흥가에서 유행하였는데, 이러한 상황 속에서 창가나 유행가 등의 음악이 단소로 연주되기도 하고, 서양 악기와의 합주에 단소가 활용되게 되었다. 또한 새롭게 등장한 연극과 영화 매체 속에서도 김계선(金桂善)은 단소로 배경 음악을 이끌기도 하였다.
이 시기에는 단소를 연주하는 연주자에게도 변화가 나타났는데, 여성 단소 연주자가 등장한 것이다. 1912년 조선정악전습소에서는 여악(女樂)을 교수하기 위해 분교실을 두었는데, 주9 하규일이 주10 출신들을 시조 · 가곡 · 가사 등을 전수하였으며, 단소 연주가 이소향을 배출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무대나 라디오 방송, 그리고 유성기 음반을 통해 단소 연주가들 중에서 명성을 얻은 이들이 나타났는데 1920년대는 양우석(楊又石), 김상기(金相騏), 조동석(趙東奭) 등이, 1930년대에는 최수성(崔壽成), 이병우(李炳祐) 등이 이름이 높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