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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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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문신 우복룡이 당론 · 시정 · 인물평 · 기문이적 등을 기술한 잡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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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시대 문신 우복룡이 당론 · 시정 · 인물평 · 기문이적 등을 기술한 잡록.
서지적 사항

1책. 필사본.

내용

먼저 당론에 관한 내용을 보면 1572년(선조 5) 이준경(李浚慶)이 붕당의 조짐이 보인다고 유소(遺疏)를 올리니, 이이(李珥)와 삼사가 근거없는 내용을 조작해 조정을 어지럽힌다고 탄핵한 붕당소(朋黨疏)가 실려 있다.

동○서 분당이 일어난 뒤 1578년 이이가 당쟁을 조정하려다 실패하고 서인 송익필(宋翼弼)·성혼(成渾)·정철(鄭澈)이 동인 이발(李潑)에게 보낸 서간이 실려 있다. 또한 이이가 고향 파주로 내려가서 올린 사대사간소(辭大司諫疏: 대사간을 사직하는 상소)·대백참찬인걸소(代白參贊仁傑疏: 참찬 백인걸을 대신하여 지은 상소)·사대사간겸진세척동서소(辭大司諫兼陳洗滌東西疏: 대사간을 사직하며 겸하여 동서 붕당을 씻어버리라고 진술한 상소)가 실려 있다.

이 밖에 김성일(金誠一)의 발설로 진도군수 이수미옥사건(李銖米獄事件)이 일어나 동○서 당쟁이 격화된 시말이 실려 있고, 1583년에 이를 중심으로 동○서 당쟁이 격화되자 이이를 신구(伸救)하는 성락(成洛)·유공진(柳拱辰)·변사정(邊士貞) 등의 소가 실려 있다. 1589년 기축옥사에 관한 기사도 실려 있다.

시정에 관한 기사에는 을사사화로 피화된 유관(柳灌)·유인숙(柳仁淑)의 복관과 이기(李芑)·정순붕(鄭順朋)의 관작 추탈이 기록되어 있고, 학행이 두드러진 성혼·민순(閔純)·최영경(崔永慶)·정구(鄭逑) 등에 당상직을 수여함을 기록하였다.

또 학행이 있고 청렴하다 하여 우복룡·서인원(徐仁元)·안민학(安敏學)·허상(許鏛)·유운룡(柳雲龍) 등에 6품직을 서용한 기사도 있고, 남치리(南致利)·이덕홍(李德弘)·김장생(金長生)·구사민(具思閔) 등을 특선한 기록도 있다.

1581년에 기근과 역질이 심해 각도에 구황어사(救荒御史)를 파견했으며, 황해도와 전라도에서 1만여 명이 죽고 우역(牛疫)으로 1,000여 마리의 소가 죽었다는 기록도 있다. 또 임진왜란의 기록으로 상주·함창의 전투 기록, 심유경(沈惟敬)의 부산왜영(釜山倭營) 입성 기사, 이몽학난(李夢鶴亂), 남원전투 등에 관한 기록이 실려 있다.

이이의 신도비에서 이항복(李恒福)이 행한 평가에 대한 김장생 등의 시정 상소가 실려 있다. 1592년 유성룡(柳成龍)을 신구한 이원익(李元翼)의 차자에 대해 이이첨(李爾瞻) 등이 선창화의(先倡和議)했다 하여 반박한 소가 실려 있다.

인물평에 있어서는 이준경을 현상(賢相)이라고 하면서도 사기를 부식(扶植)하지 못했다고 평하고, 기대승(奇大升)에 대해서는 신진 사류의 영수로 자기의 뜻을 펴지 못하고 죽었다고 평하였다.

기문이적에는 전라도에서 산모가 1남3녀를 낳았고, 경상도에는 두마리의 송아지를 낳은 소가 있고, 영해에서는 땅에 불이 타고 있다는 등의 기록이 있다. 또 평안도에서는 뿔이 세개가 있는 송아지를 낳았다는 등의 기록이 있다.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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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강주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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