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경후갑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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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사
문헌
조선후기 노론과 소론 간의 당쟁 전말을 기록한 정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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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후기 노론과 소론 간의 당쟁 전말을 기록한 정치서.
내용

10권 10책으로 된 필사본이다. 편저자 및 저술 연대는 미상이다. 이 책은 1720년(경종 즉위)부터 1738년(영조 14)까지 노론과 소론 간의 당쟁 전말을 기록했다. 주로 소론의 입장을 중심으로 기술되어 소론계 인물이 저술한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은 일종의 자료집과 같은 성격을 띠고 있다. 『정원일기(政院日記)』, 신축·임인년 간의 경연 대화 기록인 『신임연화(辛壬筵話)』, 『등보(謄報)』·『정등(政謄)』 등의 관변 기록과 이재(李縡)의 『부공초종설(復恐初從說)』, 민진원(閔鎭遠)의 『단암록(丹巖錄)』, 홍계희(洪啓禧)의 『창상록(滄桑錄)』 등 사찬 기록을 비롯해 22종에 이르는 각종 문헌에서 자료를 뽑아 실었다.

‘선경후갑’은 경자년인 1720년(경종 즉위)과 갑진년인 1724년(영조 즉위)을 지칭하는 것으로, 『선경후갑록』은 경종·영조대의 노론과 소론의 당쟁 기록을 뜻한다. 이 책은 제1책 서두에 인용 서명을 기재하고, 매권 표지마다 또 인용한 서명과 연대를 표기하였다.

그 체재는 먼저 소장(疏章) 등의 주된 자료를 큰 글씨로 쓰고, 그 아래에 소자이행(小字二行)의 주석체로 상세한 사실을 기록하였다. 내용은 경종 즉위 이후의 사건을 연대순으로 서술했다. 권1은 1720년 1월부터 1721년 8월까지, 권2는 1721년 8월부터 그 해 12월까지, 권3은 1721년 12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권4는 1722년 1월부터 그해 5월까지, 권5는 1722년 5월부터 그해 8월까지, 권6은 1722년 8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권7은 1723년 3월부터 그해 10월까지, 권8은 1723년 10월부터 이듬해 8월까지, 권9는 1724년 8월부터 그해 12월까지, 권10은 1725년 정월부터 이듬해 정월까지의 사실을 기술하였다.

기록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720년 경종이 즉위하자 김창집(金昌集) 등 노론 측에서는 왕이 병약한 것을 들어 세제 책봉을 청했다. 결국 소론 측의 반대를 물리치고 대비 인원왕후 김씨를 움직여 왕의 허락을 얻어 연잉군(延礽君: 뒤에 영조)을 세제로 책봉하는 데 성공하였다.

노론은 이어 세제로 하여금 대리청정하게 하려고 사대신(四大臣: 金昌集·李健命·李頤命·趙泰采)이 중심이 되어 건의 활동을 벌였다. 그러나 소론의 영수 조태구(趙泰耉) 등이 반대해 그 결정이 보류되었다. 이에 소론의 강경파였던 김일경(金一鏡) 등이 일어나 김창집 등이 왕의 병을 조작해 대리청정을 강요하는 등의 불충(不忠)을 공격했다. 그리하여 노론이 축출되고 소론 정권이 수립되었다. 이 책에는 노론이 경종을 시해하려 했다는 음모를 상세히 기록했다. 그리고 소론이 왕세제를 죽이려는 음모는 거짓 꾸며진 것으로 서술하였다. 그 뒤 목호룡(睦虎龍)이 반역을 알려, 노론이 왕을 시역하고 이이명을 추대하려는 역모를 꾸몄다는 이유로 노론의 사대신 등 많은 노론계 신하들이 숙청되는 신임사화의 내막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1724년 영조가 즉위하여 신임사화를 일으킨 김일경·목호룡 등을 처형하고 노론을 재등용하는 기사처분(己巳處分)과 이때 노론의 잘못을 지적한 자료들도 수록했다. 또한 탕평책(蕩平策) 시행의 경위, 1728년(영조 4)에 일어난 이인좌(李麟佐)의 난 및 그 토벌에 관한 시비를 기록한 『감난록(勘亂錄)』과 1737년(영조 13) 당폐를 논한 영조의 유서(諭書) 등이 포함되어 있다. 규장각도서·장서각도서에 있다.

의의와 평가

이 자료에는 김일경·목호룡의 무옥(誣獄)에 대한 변명, 노론을 두둔한 영조의 탕평책에 대한 비판, 이인좌의 난이 노론의 모략에 의해 일어났다는 주장 등 소론의 입장을 옹호, 변명한 내용이 많다. 또한 인용한 자료나 저술도 소론 측의 입장이 대부분이다. 따라서 이 책은 조선 후기 노론과 소론의 당쟁을 이해하는 데 요긴한 자료이다. 다만 그 편파성에는 유의할 필요가 있다.

집필자
강주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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