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자유고 ()

유교
문헌
조선 후기, 문신 · 학자 박태한의 시문집.
문헌/고서
편찬 시기
조선 후기
간행 시기
1730년경
저자
박태한(朴泰漢)
편자
박사한, 박민수
권책수
원집(原集) 14권, 부록(附錄) 2권, 합 7책
권수제
박정자유고(朴正字遺稿)
판본
목판본
표제
박정자유고(朴正字遺稿)
소장처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연세대학교 학술문화처 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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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박정자유고』는 조선 후기의 문신·학자 박태한의 시문집이다. 저자의 유문은 저자가 졸한 지 십여 년 후에 저자의 아우 박사한과 아들 박민수가 저자의 자편고(自編稿)를 바탕으로 산정, 편차하여 가장(家藏)하였다가 1730년경에 조카 박문수가 원집 14권 부록 2권 합 7책을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본집은 원집 14권, 부록 2권 합 7책으로 되어 있다. 각 권별로 목록이 있으며 자주(自註)와 편자주(編者註)가 있다.

키워드
정의
조선 후기, 문신 · 학자 박태한의 시문집.
편찬 및 간행 경위

저자의 유문은 저자가 졸한 지 십여 년 후에 저자의 아우 박사한(朴師漢, 16781745)과 아들 박민수(朴民秀, 16851757)가 저자의 자편고(自編稿)를 바탕으로 산정, 편차하여 가장(家藏)하였다가 1730년경에 조카 박문수(朴文秀, 1691~1756)가 원집 14권 부록 2권 합 7책을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이는 저자의 조부 박장원(朴長遠)『구당집(久堂集)』 간기에 “경술사월일달성관개간해인사장판(庚戌四月日達城館開刊海印寺藏板)”이라 하여 1730년(영조 6) 4월에 『구당집』을 대구 감영에서 목판으로 간행하고 판목을 합천(陜川) 해인사(海印寺)에 보관하였음이 명시되어 있는데, 『구당집』과 『박정자유고』는 행자수, 판심 등의 형태가 동일하고, 박문수가 경상도 관찰사로 재임한 시기가 1728년 4월에서 1730년 6월까지로 『구당집』이 간행된 시기와 일치하므로 박문수가 이즈음에 선대의 문집을 연차적으로 간행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본은 현재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다.

구성과 내용

본집은 원집(原集) 14권, 부록(附錄) 2권 합 7책으로 되어 있다. 각 권별로 목록이 있으며 자주(自註)와 편자주(編者註)가 있다.

권1은 「학칙(學則)」으로 자경문(自警文) 1편, 도설(圖說) 1편, 도(圖) 5편, 설(說) 1편, 후록(後錄) 3편, 서후(書後)·후설(後說)·자의(字義)· 변(辨)·규식(規式)· 가훈(家訓) 각 1편, 권2∼4는 「치법(治法)」으로 올리지 못한 장편 상소(上疏) 3편, 문신강술교관택차지법(文臣講述敎官擇差之法) 1편, 제도(制度) 2편, 명목(名目) 1편, 잡론(雜論) 1편, 논(論) 6편 등이 실려 있다. 권5에 장소(章疏) 6편, 권6∼8에 서간(書簡) 80편, 권9에 묘지(墓誌) 1편, 유사 2편, 권10·11에 부(賦) 1편, 시 241수, 서 2편, 설(說) 4편, 제문(祭文) 3편, 잡저(雜著) 3편, 과제(科制) 3편, 권12·13에 독서차기(讀書箚記) 2편, 권14·15에 부록으로 저자의 행장(行狀) 1편, 제문 3편, 유사 1편이 수록되어 있다.

권1의 「인심도심설(人心道心說)」은 『서경』의 ‘인심유위 도심유미(人心惟危 道心惟微)’에 대한 논술이다. 인심과 도심을 물에 비유해 일원이기(一源二歧)·일원만기(一源萬歧)의 파생(派生) 원리에 따라 한 원류에서 뻗어 나간 이치는 같지만, 이것이 인심·도심에 상대적일 수는 없는 것으로 논술하였다. 그 후록(後錄)에서는 인심과 도심이 처음 발할 때 이미 체단(體段: 성의 본체인 인의예지를 말함)이 이루어진 것이라 하여 이숙(李叔)의 시종설(始終說)을 부정하고, 주자(朱子)의 설을 인용해 그 체단을 상세히 논술하였다.

「경의설(敬義說)」은 경(敬)과 의(義)가 모두 마음에 근본하며, 의 중에 경이 있고 경 중에 의가 있다고 논한 글이다. 그 후록에서는 경과 의가 모두 나태와 탐욕에 의해 병폐를 야기한다고 서술하였다. 「격물설(格物說)」과 그 「왕복서후(往復書後)」는 『대학』의 격물(格物)과 물격(物格)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한 논설이다. 「독서차기」는 사서삼경·『춘추좌전(春秋左傳)』·『사기(史記)』·『통감강목(通鑑綱目)』·『가례비요(家禮備要)』 등을 독파한 후 그 요점을 정리하여 기록한 것이다.

권2의 「의상만언초」에서는 국가의 기강, 사회의 병폐 원인 및 해결 방법, 과거(科擧)·인재(人材)·붕당(朋黨) 및 국가 안위에 대한 시정책을 열거하였다. 권4의 「시무잡론(時務雜論)」과 「시사잡론(時事雜論)」은 당시의 당쟁에 관해 비교적 중립적인 위치에서 서술한 것이다. 저자의 탕평관(蕩平觀) 및 당시의 정치상황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서간문 가운데 「상윤명재(上尹明齋)」는 스승인 윤증(尹拯)에게 올린 편지들이다. 윤증과 송시열(宋時烈)의 갈등 관계를 파악하는 데 좋은 자료가 된다.

이 밖에 「문신강술교관택차지법」과 48조의 「문무과시지제(文武課試之制)」는 과거제의 대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한 것이고, 「복오위제(復五衛制)」는 문종 때 개편되어 조선 초·중기에 중앙 군사조직의 근간을 이루었던 오위(五衛)가 임란 이후에 훈련도감을 비롯한 오군영의 설치로 유명무실해진 것을 보고 제군법(制軍法)으로 오위의 부활을 건의한 것이다. 「의대내구논시사소(擬代內舅論時事疏)」는 1684년(숙종 10)에 지평이 된 외삼촌 이두악(李斗岳)을 대신하여 지은 것으로 군덕(君德), 국정(國政), 조론(朝論), 피폐한 민생에 대하여 극론하고 노소론의 분당 시점에서 윤증, 조지겸(趙持謙), 한태동(韓泰東) 등 소론을 옹호한 내용이고, 「의대만암이공논시사소(擬代晩庵李公論時事疏)」는 1688년 장희빈 등에 대해 간언한 박세채(朴世采)는 출성되고 남구만(南九萬)은 경흥(慶興)에 위리안치되자, 잘못된 것을 바로잡기 위하여 이상진(李尙眞)에게 진달을 권하고자 지은 것이다. 「의청변통과거제목소(擬請變通科擧題目疏)」는 과거 출제 경향을 시무(時弊)와 급무(急務) 등의 국사(國事)를 묻는 대책(對策) 위주로 바꿀 것을 건의하며 윤지완(尹趾完)을 대신하여 지은 것이다. 이러한 것들은 당시의 정치 제도와 학술을 연구하는 데 도움이 되는 자료들이다.

참고문헌

원전

『박정자유고(朴正字遺稿)』

단행본

이미실, 「한국문집총간 해제」 (『한국문집총간』 속55, 한국고전번역원, 2011)

인터넷 자료

규장각 도서 해제(https://kyudb.snu.ac.kr/book/view.do?book_cd=GK03439_00&notes=moonzip)
관련 미디어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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