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으로 유고가 거의 없어졌을 때, 아들 경심(慶深)이 세간에 전송되는 이증의 시 8수를 얻은 것을 1614년(광해군 6)김현성(金玄成)이 필사하였다.
그 뒤 1657년(효종 8) 손자인 단(檀)과 증손인 정기(廷虁)가 일시(逸詩) 29수를 찾아낸 것을 이경석(李景奭)이 필사해 두었다가 1659년에 합하여 한 첩(帖)으로 만들고, 손자사위인 안응창(安應昌)의 도움을 얻어 간행하였다. 권두에 김현성의 서문과 율시 1수가 있고, 권말에 이경석의 서문과 율시 1수, 정두경(鄭斗卿)의 발문이 있다.
1책. 목판본. 규장각 도서에 있다.
시 45수가 있으며, 부록으로는 1549년(명종 4)의 사마방목(司馬榜目)과 제문 7편, 이경석이 찬한 시장(諡狀), 1560년 별시급제방목(別試及第榜目) 등이 있다.
이 책에 수록된 시는 45수로 김현성과 이경석이 서문에서 말한 8수와 29수를 합한 분량보다 많은데, 간행할 당시 다소의 출입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북애의 시는 제영(題詠)이나 창수(唱酬)를 한 것이 대부분이다.
정두경은 발문에서 그의 시를 “격률이 청원, 아건하여 물소리를 듣는 듯 여운이 있다(格律淸遠雅健, 渢渢乎有餘味).”고 하였다. 즉, 선이 굵고 힘찬 이증의 시의 특징을 지적한 표현이다. 이 같은 이증의 시를 당대의 명필인 김현성과 이경석의 붓에 의탁시킴으로써 보는 이로 하여금 더욱 생동하는 시상을 느끼게 해준다.
이 책은 조선 중기 한시사(漢詩史)의 일면을 보여주고 있는 동시에 서법 연구에도 도움을 주는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