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충청북도 시도기념물로 지정되었다. 비신(碑身)의 높이 256㎝, 폭 63㎝, 두께 26㎝로 정조 때 세웠으며, 최근에 보호각을 건립하였다.
송시열의 본관은 은진(恩津)이고, 자는 영보(英甫), 호는 우암(尤庵) 또는 화양동주(華陽洞主)이며, 시호는 문정(文正)으로 김장쟁(金長生) · 김집(金集)을 이어 기호학파를 이끌면서 서인 · 노론의 영수로 활약하였다.
1607년 11월 12일 구룡촌(九龍村)에서 출생하였다. 여덟살 때부터 친척인 송이창(宋爾昌)에게서 글을 배웠다. 이 때 그 아들 송준길(宋浚吉)과 같이 공부하면서 이후 평생동안 학문과 정치생활에서 함께 고락을 나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