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관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후기에, 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1722년(경종 2)
목차
정의
조선 후기에, 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생애 및 활동사항

숙종이 죽은 뒤 경종이 즉위하자 왕의 병약함과 후사(後嗣)가 없음을 이유로 왕세제(王世弟: 뒤의 영조)의 책봉과 책봉된 세제로 하여금 대리청정하게 하자는 김창집(金昌集)·김운택(金雲澤) 등의 주장이 조태구(趙泰耉)·최석항(崔錫恒)·이광좌(李光佐) 등에 의하여 거부되고, 이로 인하여 신임사화 때 그가 부사로서 김운택의 가신이 되어 서덕수(徐德修)·김창도(金昌道)·이정식(李正植) 등과 결당하였다는 조흡(趙洽)의 고발에 의하여 1722년 5월 의금부에서 조사를 받다 복주(伏誅)되었다.

그의 형제·처첩·자식들 모두 연좌되어 피해를 당하였다. 그 뒤 영조가 즉위하고 의금부의 주청에 의하여 형제·처첩·자식 등이 방송(放送)되고, 그도 신원(伸寃:억울하게 입은 죄를 풀어줌.)되었다.

참고문헌

『경종실록(景宗實錄)』
『영조실록(英祖實錄)』
『전고대방(典故大方)』
집필자
남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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