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헌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후기에, 직장, 연풍현감, 군기시별제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군술(君述)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미상
본관
하동(河東)
주요 관직
연풍현감|군기시별제(軍器寺別提)
정의
조선 후기에, 직장, 연풍현감, 군기시별제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하동(河東). 자는 군술(君述). 정여창(鄭汝昌)의 후손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명릉참봉·선공감봉사(繕工監奉事)·직장(直長)·군기시별제(軍器寺別提) 등을 역임하고 연풍현감(延風縣監)에 이르렀다.

1728년(영조 4) 정희량(鄭希亮) 등이 난을 도모하였을 때 관직에서 물러나 함양으로 돌아와 충으로써 종당(宗堂)을 격려하고, 토적(討賊)의 계책을 제시하였으며, 스스로 가동(家僮) 몇 사람과 함께 난 진압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난 평정 후 박문수(朴文秀)가 포전(褒典)을 청하고, 조정의 신료들도 이에 찬성하였으나, 그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1809년(순조 9) 충신으로 일컬어지면서 특별히 이조참의에 추증되었다.

참고문헌

『영조실록(英祖實錄)』
『순조실록(純祖實錄)』
『화천집(華泉集)』
집필자
남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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