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화평(致和平)」과 마찬가지로 국·한문으로 된 「용비어천가」전편을 노래하던 음악이다. 『세종실록』과 『대악후보(大樂後譜)』에 악보만 남아 있을 뿐 음악은 전하지 않고 있다.
남려·응종·대려·고선·유빈의 5음으로 구성된 이 곡은 고선궁 평조로서 남려궁 평조인 「치화평」보다 6율, 즉 여섯 반음 밑으로 이조된 음계를 가졌다.
「치화평」과 「취풍형」의 음악이 기록된 정간보를 비교하면 「치화평」의 5·3·8정간은 각기 「취풍형」의 3·2·3정간으로 축소되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이것은 「취풍형」이 「치화평」보다 동일한 가사를 노래하면서도 그 한배, 즉 속도가 훨씬 빨라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결국 「취풍형」은「봉래의」정재 중에서도 이보다 앞 순서에서 연주되던 「치화평」음악과 단지 리듬과 조성만 다를 뿐 그 선율이며 형식이 비슷한 치화평의 축소형 음악이다.
한편, 「취풍형」과 비슷한 이름에 「취풍형지곡(醉豊亨之曲)」이 있는데, 「취풍형」과 실제로는 음악이 다르다. 세종 때의 「봉래의」정재는 조선 말기까지 전승되었는데 「치화평」이 빠지는 등 많은 변모를 보였고, 「취풍형」음악도 가곡의 농(弄)·계락(界樂)·편(編)으로 대체되었는데, 이 때의 가곡계통의 음악을 「취풍형지곡」이라고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