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거화(去華). 박절문(朴切問)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좌참찬 박중손(朴仲孫)이고, 아버지는 예조참의 박미(朴楣)이며, 어머니는 진주강씨(晉州姜氏)로 지돈녕부사(知敦寧府事) 강석덕(姜碩德)의 딸이다.
1474년(성종 5)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며, 1482년 친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 승정원정자(承政院正字)로 등용되어 호조·공조의 좌랑을 거쳐 사간원헌납(司諫院獻納)이 되고, 1500년(연산군 6) 사헌부집의(司憲府執義)가 되었다.
1504년 대사간이 되었으나 갑자사화 때 대사간으로 이세좌(李世佐)의 죄를 말하지 않았다 하여 같은 해 3월에 충청도 문의(文義)에 중도부처(中途付處: 가벼운 죄로 귀양을 가던 도중에 자신이 원하는 곳에서만 지낼 수 있는 형벌)되었으며, 뒤에 풀려나와 점차 승진하여 중종 때 호조·예조·병조·공조의 참의를 역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