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여즙(汝楫). 판서 윤국형(尹國馨)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참의 윤경립(尹敬立)이다. 아버지는 윤세징(尹世徵)이며, 어머니는 유정(柳艇)의 딸이다.
1663년(현종 4)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고, 1676년(숙종 2) 의주부윤이 되고 강화유수·공청도관찰사 등을 거쳐, 1682년 진하 겸 진주사은부사(進賀兼陳奏謝恩副使)가 되어 청나라에 다녀왔다.
그 뒤 승지·동지중추부사·경기도관찰사·평안도관찰사 등을 거쳐 1689년 기사환국이 일어나자 남인으로 어영대장에 임명되었다. 그 뒤 한성부좌·우윤을 거쳐 판윤이 되고 형조판서가 되었다. 1691년에는 원접사(遠接使)가 되어 청나라 사신을 맞아들이기도 하였다.
그 뒤로 비변사제조·우참찬·공조판서·형조판서·어영대장 등 요직을 지내다가 1694년 갑술옥사가 일어나자 삭탈관작되어 향리 포천에서 은거하였다. 세 번이나 관찰사를 지내고 다년간 병권을 잡았으나 항상 청백하여 집에는 담장이 없었고, 스스로 몸가짐을 삼가하여 당화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큰 화를 입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