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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경의례(農耕儀禮)

민속·인류의식행사

 농작물의 풍요로운 수확을 위하여 초자연적인 존재에게 기원하는 행위를 지칭하는 용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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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역닫기영역열기 정의
농작물의 풍요로운 수확을 위하여 초자연적인 존재에게 기원하는 행위를 지칭하는 용어.
영역닫기영역열기내용
인간의 원초적 관심은 식물의 획득과 생식이었다. 인간은 주술적 의례(呪術的儀禮)에 의하여 무엇보다도 먼저 이 두 가지를 얻으려 하였다. 농경의례는 기대하고 욕구하는 생산성과를 충족시키지 못할 때 그 관념을 구상화한 것이고, 그 대상은 신화로 설명되는 영격(靈格)이다.
사회적 배경이나 문화적 배경에 따라서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의 농경사회에서는 농경생산의 풍요를 결정짓는다고 믿는 초자연적인 존재, 즉 농신(農神)을 신앙하고 있으며, 농경의례의 과정과 내용에는 이와 같은 신앙체계와 관념이 일정한 행위양식으로 표출(表出)되고 있다.
농경이 해마다 주기적으로 이루어짐에 따라 의례도 해마다 반복되는 주기성을 띠며, 생산과정에 따라서 의례의 속성을 달리하기도 한다.
우리 나라의 농경의례는 상고시대에 그 연원(淵源)을 두고, 오늘날까지 주기적 계절제의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다. 이와 같은 농경의례를 이해하기 위하여는 의례의 연원·유형·속성·의의 등을 자세히 고찰할 필요가 있다.
우리 나라의 신화와 역대 기록 속에는 농경의례가 주기적인 계절제의 중심으로 이루어졌던 것으로 보인다.
농경의례의 연원을 신화를 통해 보면, 단군신화에는 동북아시아 수렵민의 곰 토템에 대한 의례적인 요소가 농후하다. 그렇지만 풍백(風伯)·우사(雨師)·운사(雲師)·주곡(主穀) 등 농경신(農耕神) 혹은 그에 대한 사제자의 개념도 많이 등장한다.
이규보(李奎報)의 『동명왕편(東明王篇)』에 인용된 『구삼국사(舊三國史)』의 일문(逸文)에는 주몽(朱蒙)의 어머니와 아들 주몽의 관계가 오곡종과 보리씨를 매개로 하여 곡모(穀母)와 곡령(穀靈)의 관계로 묘사되어 있다.
김알지(金閼智)의 신화도 춘추의 곡령에 대한 제의를 신화화 한 것인 듯하고, 대가야국의 시조인 김수로(金首露)와 그의 왕후 허황옥(許黃玉)의 신성혼인에 관한 신화도 김해지방의 상원축원제의(上願祝願祭儀)의 원래 모습을 신화화한 것인 듯하다.
또 석탈해신화(昔脫解神話)는 어업을 생업으로 하던 석씨 집단이 경주사회에 참여하면서 그 조령(祖靈)을 동악신(東岳神)으로 모시게 되고, 그 제의도 춘추의 농경의례와 깊은 관계를 가지게 되었음을 반영한 신화로 볼 수 있다.
가까이는 고려태조 왕건(王建)의 탄생설화도 기장심기와 깊은 관계를 가진 듯이 『고려사』 세계(世系)에 표현되어 있다.
이와 같은 신화에는 농경의례의 구체적 내용은 보이지 않지만 농경신이나 곡신·곡령에 대한 표현이 있어, 농경의례의 관념이 신화로 표출된 것임을 보여준다.
농경의례의 흔적은 옛 기록에도 많이 보인다. 『삼국지』 위서 동이전 등의 중국사서들에 실려 있는 한민족의 영고(迎鼓)·동맹(東盟)·무천(舞天)·제천(祭天) 등 봄·가을의 큰 축제도 모두가 상고시대의 주기적 농경의례로 추측된다.
신라에서는 설화 속의 농경의례나 조묘의 사시제(四時祭) 외에도 설·가배·수리·유두·선농(先農)·중농(中農)·후농(後農)·풍백·운사·영성(靈星) 등의 정기적 의례와 기우(祈雨)·압구(壓丘)·벽기(辟氣) 등의 부정기적 의례가 행하여졌음이 『삼국사기』에 보인다.
이들 의례를 모두 농경의례라고 단정짓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의례의 저변에는 농경생산의 풍요 축원이나 수확감사제적인 목적과 관념이 농후하게 나타나 있다.
고구려의 농경의례에 대한 기록은 희소하지만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 보이는 동맹에 대한 기록으로도 국가적 농경의례가 있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특히 『북사(北史)』 고구려전에는 집집마다 대옥(大屋)을 세우고 귀신을 제사했으며, 겨울에는 영성과 사직(社稷)을 제사했다는 기록이 있어 오늘날 가정단위의 농경의례적 성격을 띤 계절제와 연관지을 수 있다.
백제의 농경의례 관계사료도 고구려와 마찬가지로 뚜렷한 것은 없지만, 초기에는 고구려와 비슷하였으리라 생각된다. 제2대 다루왕 2년(서기 29) 정월을 비롯하여 역대 왕이 매년 동명왕묘에 알묘한 기록을 통하여 그렇게 추측해 보는 것이다.
이런 제의는 온조왕 20년(서기 2) 2월에 왕이 대단(大壇)을 설치하여 천지를 제사한 뒤 역대로 계속된 듯하나 그 내용은 잘 알 수 없다.
고려시대에는 불교와 무교적 신앙이 극성하였다. 나라에서 향사(享祀)하는 신사(神祠)가 많았고 대개 무녀가 주재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신앙과 의례가 모두 기풍(祈豐)·기양(祈禳)·기우(祈雨) 등의 내용이었으니, 농경의례의 성황을 추측하기 어렵지 않다.
특히 연등회(燃燈會)와 팔관회(八關會)는 농경의례의 속성을 농후하게 띤 봄·가을의 대제전으로 보인다.
팔관회의 기록은 『삼국사기』 거칠부전과 진흥왕 33년조의 황룡사에 관한 기록에 이미 보인다. 이들 기록을 통하여 보면, 팔관회는 불교적인 전몰장병의 위령제였다. 그러나 『송사(宋史)』 고려전과 이 기록의 자료가 된 『고려도경』에는 10월의 동맹이 팔관제로 이행되었음을 추측하게 하는 기록이 보인다.
이로써 원래 신라에서 전사자의 위령제로 행해졌던 팔관회가 고려시대에 들어서는 고구려의 동맹과 습합하여 불교적 색채를 띤 수확의례로 정착된 것으로 보인다.
연등회는 중국의 상원장등(上元張燈)에서 유래되었다는 설도 있으나 예로부터 이어 온 곡령하강일로서의 상원에 중국의 상원이 겹쳐졌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래서 연등회는 상원의 농경축원의례적인 성격으로 관행되다가 2월 보름으로, 다시 4월초파일로 이행되었다. 따라서 원초적 내용보다 농경의례적 성격이 흐려진 것이 아닌가 한다.
신화와 옛 기록을 통하여 고려 이전 농경의례의 흔적을 살펴보았지만 대부분이 전국적으로 행해진 큰 축제로서의 농경의례였다.
그러나 이와 같은 농경의례를 모태로 하여 민간의 촌락공동체를 단위로 한 농경의례도 관행되었을 것으로 보이며, 그 관념과 내용은 오늘날의 전통사회에 전승되어 오는 농경의례와 비슷하였을 것이다. 다만 오늘날은 더러 제의절차가 유교식 제의 형식으로 변용되고, 또 많은 종류의 의례가 소멸된 것으로 파악된다.
농경의례는 농경작업의 과정에 따라 크게 축원의례·파종의례·성장의례·수확의례의 네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축원의례란 다가올 1년 동안의 수확의 풍요를 미리 축원하고, 그 성과를 예측하려는 종교적 점세행위(占歲行爲)를 말하며, 음력 세말(12월)에서 연초(1∼2월)에 걸쳐서 행하여진다. 축원의례는 다시 네 가지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는 생산의 풍요로움을 상징적으로 축원하는 유감주술적(類感呪術的) 모의 축원의례이다. 이것은 내농작(內農作) 혹은 가농작(假農作)이라고도 한다.
가농작은 농사의 내용을 흉내내어 파종에서 수확까지의 농경과정을 모작(模作)하면 1년의 풍년을 기약할 수 있다고 믿는 의식에 바탕한 의례이다. 원래 촌락사회에서 관행되던 것이 권농정책의 일환으로 궁중에서까지 관행된 것으로 보인다.
『세조실록』 권30에 최초의 기록이 보이는데, “세속에서 매년 상원에 전가(田家)의 농잠상을 가설하여 1년의 풍년의 징조를 삼던 것을, 세조 9년 이후 궁중에서도 행하게 되었다.”고 하였다. 이 기록에는 대나무를 사용하여 농기구 손질 및 밭갈이 하는 모습, 누에를 치는 모습, 노유(老幼)가 취하고 배부른 모습으로부터 금수와 초목의 모양까지 만들었다고 되어 있다.
『성종실록』에는 좌우로 편을 갈라서 승부를 겨루었다고 기록하였다. 이 궁중 내농작의 풍습은 중종 말년 이후 끊어졌다가, 1562년(명종 17)에 한 번 행하였다. 『조선왕조실록』에서는 보이지 않게 된다.
민간에서는 최근까지도 정월 14일 수수깡으로 온갖 곡식과 농기구의 모양을 만들어 거름더미 위에 꽂아 두었다가 보름날 아침에 수확하고 타작하는 흉내를 내서 1년의 풍요한 수확을 축원하였다. 내농작의 분포지역은 경기도와 강원도의 중부 이남에 주로 분포되는 것으로 보인다.
축원의례의 두번째 유형은 지신밟기로 대표되는 가장영격(假裝靈格)에 의한 도신행사(禱神行事)이다. 지신밟기로 통칭되는 도신행사는 탈놀이, 즉 가면극이 그 원래의 모습에 가까운 것으로 생각된다.
그 내용은 여러 가지의 영격으로 가장한 청소년들이 촌락의 집집마다 찾아가서 기복·기양 등의 주술적 연희행위를 하고 금품이나 음식의 향응을 받는 오신행위(娛神行爲)이다.
이러한 농경의례는 우리 나라를 비롯한 아시아의 수도재배지역에 공통적으로 분포되어 있는 농경의례의 세시풍속이다. 여기서 가장된 영격은 농신이며, 농신이 하강하여 1년 농사의 풍요를 축원해 준다는 신앙이 그 바탕에 깔려 있다.
황해도의 농신내방행사(農神來訪行事)를 비롯하여 기호지방의 거북놀이, 동해안 일대의 사자놀이, 남서부지방의 소놀이, 중부지방의 탈춤·산대희, 영남지방의 광대놀이, 동해안 일대에 근년까지 남아 있던 처용놀이·범굿, 중남부의 걸립, 전국적인 지신밟기, 별신굿 등의 원류는 모두 이 범주에 속한다.
때로는 이 중의 두세 가지가 복합된 현상도 찾을 수 있다. 이와 같이 지역적으로나 그 내용에 있어서나 비교적 풍부한 변이를 보여주는 가장영격의 내방행사는 시기적으로도 정월상원을 비롯하여 단오와 추석, 때로는 2·3·4월에도 행해져서 다양한 양태를 나타내고 있다.
셋째로 곡물이나 농사의 풍흉을 점치는 의례적 점세행위가 있다. 점세는 곡물·천체 등을 관찰하여 한 해의 풍흉을 점치는 직접적인 점세와 싸움놀이, 즉 의전(擬戰) 등의 승패로 풍흉을 가늠하는 간접적 점세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전자는 다분히 유감주술적 성격의 점복행위로서 풍년을 예지하려는 점복행위이며, 후자는 싸움놀이로 승부를 겨루어서 이긴 편에 풍년이 든다는 관념에 연원하고 있다. 천체를 보고 풍흉을 점치는 점세 중에는 달을 보고 점치는 것이 대표적이다.
정월 상원에 보름달이 붉으면 가물 징조이고, 희면 장마가 질 징조이다. 또 달이 뜰 때의 형체·대소·출렁거림·높낮이로 점을 치기도 한다. 또 달의 윤곽과 사방의 두께로 1년 농사를 점치기도 한다. 달의 사방이 두터우면 풍년이 들 징조이고, 엷으면 흉년이 들 징조이고, 조금도 차이가 없으면 평년작이 된다고 믿는다.
이와 같이 달을 보고 풍흉을 점치는 행위는 거의 전국적으로 분포되어 있다. 곡식을 보고 점치는 것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
제주도에는 섣달 그믐날 밤에 키를 씻어서 부엌에 엎어 두었다가, 이튿날 보아서 쌀이 나오면 쌀 풍년, 조가 나오면 조 풍년이라고 점친다. 함경도지방에서는 볏단이나 곡물을 태워서 그 재를 키 속에 담아 지붕 위에 두었다가, 이튿날 아침 그 재 위에 쌀이 있으면 쌀 풍년, 피가 있으면 피 풍년이라고 점친다.
또 콩을 가지고 점치는 것으로 월자(月滋)·호자(戶滋)·윤월(潤月)·풍두기(豐豆祈) 등이 『동국세시기』에 기록되어 있다.
싸움놀이로 풍흉을 점치는 점세적 의전에는 편싸움, 즉 팔매싸움[石戰]과 줄다리기[索戰]·동채싸움[車戰]·횃불싸움[炬火戰]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싸움놀이는 동서 또는 남녀 두 편으로 편을 갈라 그 승부의 결과에 따라 풍흉을 점치는 점세행위이다. 그런데 대체로 서편, 즉 여성편이 이겨야 풍년이 든다는 신앙에 바탕하고 있다. 이는 달과 물과 여성의 증식능력에 대한 신앙에서 발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네번째의 예축의례로는 새해의 신년의례를 들 수 있다. 이는 조선시대의 양반사회에서 발달한 풍속으로 대부분이 중국에서 전래된 것으로 생각되는 관습이다. 새해의 제사는 조상숭배의례와 관련되나, 조상에 제의를 올려 그 해의 풍년을 기원하는 관념도 깃들어 있다.
이 밖에도 음력 정월의 길일(吉日)에 성주신(成主神)에게 풍년을 기원하는 풍습이나, 정월보름에 농사밥을 하여 용왕에게 풍년을 기원하는 풍습이 있어, 이 또한 농경의례의 범주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파종의례는 농작물의 파종기에 농경생산의 풍요를 기원하는 의례를 말한다. 그런데 우리 나라에는 파종의례로 생각되는 의례행위는 흔하지 않다. 그 이유로 파종의례 자체가 역법상의 명절로 이행되었을 가능성과 오락의 성격을 띤 화려한 연희적 세시풍속이 한창 바쁠 때인 농번기에는 관행될 수 없다는 점, 그리고 의례적 세시풍속이 동질적인 것을 반복하는 성격을 가진다는 점 등을 들 수 있다.
파종기의 파종의례로는 못자리 만들 때의 의례와 전작물(田作物)의 파종의례, 화전놀이 등에서 그 면모를 찾을 수 있다.
경상북도 영천과 문경지방에서는 못자리 만드는 날을 택일한다. 논이 동쪽에 있으면 1·2일에, 남쪽에 있으면 3·4일에, 서쪽에 있으면 5·6일에, 북쪽에 있으면 7·8일에는 씨를 뿌리지 않는다. 그러나 9·10일에는 어떤 방위에 있는 논이라도 관계없다.
‘대장군’ 혹은 ‘손’이라는 신이 동서남북을 차례로 도는데, 대장군이 특정 방위에 없는 날 그 방위의 논에 못자리를 하면 그 해 풍년이 든다고 믿기 때문이다.
강원도의 화전지대에는 3월경 전작물을 파종할 때, 밭을 갈아 씨뿌릴 준비를 하고, 씨뿌리는 날 아침에 고사를 올린다. 울진의 화전지역에서는 화전을 일구어 밭골을 타 씨를 뿌린 다음, ‘문복(問卜)쟁이’에게 가 택일하여 풍년을 기원하는 제사를 올린다고 한다. 화전놀이는 3월 3일에 행해진다.
이 시기가 파종 전이고 다른 수도재배문화권에서는 파종의례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음을 감안한다면, 우리 나라에서도 원래 파종의례였던 것이 중국의 청명·한식절 등의 영향으로 변모된 것이 아닌가 한다.
성장의례는 농작물의 성장기에 생산의 풍요를 기원하는 의례이다. 대표적인 성장의례로는 단오절과 농신제·풋굿[草宴]·기우제 등을 들 수 있다. 단오는 원래 중국에서 전래된 명칭이며, 그 행사 내용에도 중국의 것과 동일한 것이 많다. 그러나 우리 고유한 ‘수릿날’의 습속(習俗)은 성장의례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영산의 문호장(文戶長)굿, 자인의 단오굿, 강릉의 단오제는 모두가 모심기 이전에 관행되던 성장을 촉진하기 위한 농경의례이다.
그리고 수릿날에는 가면·가장이나 석전·줄다리기 등의 의전도 행해지고 있어, 축원·점세의 의례도 반복된다. 농신제는 모내기를 마친 뒤 행해지는 수도성장의례로 용제(龍祭)·복제(伏祭)·논고사라고도 한다.
농신제는 삼복중이나 혹은 유두에 모내기 한 논에 가서 지내는 제사이다. 가족이나 일꾼(머슴)이 떡을 가지고 가서 논 가운데 버드나무가지 등을 꽂고 거기에 떡을 꽃처럼 꾸민 병화(餠花)를 만들거나, 물고에 떡을 차려 놓고 제사를 지낸다.
풋굿은 세벌논매기(혹은 두벌논매기)가 끝난 시기에 행하는 의례적 행사로, ‘호미시세’·‘서리짖게’·‘풋구’라고도 부른다.
근래에 남아 있는 풋굿은 논 맨 다음의 머슴들의 잔치 혹은 먹고 노는 행사라고 인식되고 있다. 그렇지만 안동지방에서는 아직도 ‘풋구먹는다’고 하여 동제(‘초연고사’라고도 함)를 시작으로 풋굿을 행하는 곳이 있다. 바쁜 농사일이 끝나고 농사가 잘 되기를 비는 고사의 성격을 띤 것으로 생각된다.
이 밖에도 경산 자인 지방에서는 풋굿을 하는 날에 모의 혼인과 같은 모방주술을 행하고, 안동 하회에서는 농악을 잡히면서 걸립을 한다고도 한다.
이들 사례를 미루어 보아 풋굿은 원래 성장의례였던 것이 성스러운 그 의례성은 소멸되고, 의례 뒤의 속된 음복의 향연만 지금까지 남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기우제는 여름철 가뭄이 심할 때 부정기적으로 행해지는 농경의례의 한 가지이다. 기우제는 가뭄을 해소하여 농작물의 순조로운 성장을 기원하는 농경의례라고 보아야 한다. 기우제의 내용은 다양하여 기록과 관행에서 열 가지 정도로 그 유형을 분류할 수 있다.
수확의례는 농작물의 수확을 한 뒤 농경신, 또는 조령에게 감사를 드리는 의례이다. 우리 나라의 수확의례는 그 시기로 보아 중하(仲夏)의 유두천신(流頭薦新)과 중추의 추석천신(秋夕薦新), 그리고 초겨울의 고사천신(告祀薦新)으로 대별하여 볼 수 있다.
유두천신은 시기적으로 성장의례와 겹치는 것으로, 수도수확과도 관계는 있으나 여러 가지 기록과 시식(時食)의 내용으로 보아 전작물의 천신일 가능성이 많다.
지방에 따라서는 유두절이 ‘옛날 나랏님이 햅쌀밥을 먹던 날’이라고 전해지고 있어, 수도천신의 의미도 있는 듯하나 경상북도 일원에서는 ‘국수로 조상에게 제사지내는 날’이라는 전승이 있고, 『동국세시기』 등의 기록에는 유두절에 밀가루로 만든 음식으로 천신제의를 행한다고 되어 있어서 유두절은 전작물의 천신의례일 가능성이 크다.
추석천신은 조령제와 밀접한 관련을 가지는 햅쌀의 천신제이며, 제의력상(祭儀曆上)의 성격으로는 중양절과의 사이에 시기적으로 유동성이 보인다. 그리고 제의의 유형으로는 유교적 조상제의의 형태를 띠고 있으며, 호주(戶主)에 의하여 상속되는 남성주제(男性主祭)의 의례이다.
추석천신은 수도지배지역, 특히 신라의 독특한 수확의례로 보이는데, 『삼국사기』의 가배절의 적마행사(績麻行事)로 미루어 삼[麻]의 수확의례의 성격도 띠고 있다.
고사천신은 주부에 의하여 상속되는 가족제로, 가장 원초적인 우리 나라의 수확의례로 생각되며, 그 제의의 대상이 되는 신은 영격 성주신[成造神]을 비롯한 다양한 가신들로서 무교적인 다령관(多靈觀)이 그 바탕에 깔려 있는 듯하다.
고사천신은 상고시대의 동맹·무천·영고·제천 등의 국행대제와 시기적으로 맥락을 같이 하지만 오늘날에는 가족단위의 고사만 남아 있다. 이와 같은 고사천신은 ‘안택고사’ 혹은 ‘안택’이라는 명칭으로 전국적인 분포를 보이고 있다.
농경의례는 농작물 생산과정의 단락마다 행해지는 세시풍속이다. 그 궁극적 목적은 농신과 조령으로 일괄할 수 있는 초자연적인 존재들에게 농경생산의 풍요를 기원하여 풍성한 수확을 얻으려는 종교적 행위이다.
농경의례는 그 의례행위의 과정을 통하여 심리적 불안을 해소시키는 기능을 하기도 하며, 또한 생산 촉진의 기능도 가진다. 생산과정의 단락마다 있는 농경의례는 농민에게 휴식을 제공하여 다음 주기의 농사일을 촉진시키는 생산촉진의 기능과 함께 종교적 기능도 있다. 의례의 대상이 초자연적인 존재, 즉 농경신이며, 농경신에 대한 직접적인 신앙 없이는 농경의례가 성립되지 않기 때문이다.
한편 농경의례는 유희오락의 기능도 담당한다. 농경의례를 행하는 시기는 ‘노는 날’·‘쉬는 날’로 표현되고, 이때에는 놀이가 수반되어 농민들에게 휴식과 오락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농경의례는 사회결속의 기능도 가진다. 공동제의는 물론이고 가족단위의 농경의례라고 하더라도 이때에는 ‘굿판’을 통한 모임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의의를 지닌 농경의례는 산업화와 영농기술의 발달로 인한 세계관의 변화로 우리의 농촌사회에서도 점차 소멸해 가는 실정이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참고문헌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1995년)
김택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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