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균 ()

인당집
인당집
근대사
인물
개항기 때, 공릉령, 진안현감, 청안현감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순형(順亨)
인당(忍堂), 초성(蕉醒)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833년(순조 33)
사망 연도
1922년
본관
평산(平山)
주요 관직
순강원수봉관|의금부도사|공릉령|진안현감|청안현감
정의
개항기 때, 공릉령, 진안현감, 청안현감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평산(平山). 자는 순형(順亨), 호는 인당(忍堂) 또는 초성(蕉醒). 아버지는 동지돈녕부사 신종태(申鍾泰)이며, 어머니는 연안이씨(延安李氏)로 진사 이광복(李光福)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876년(고종 13) 장사랑에 제수되어 순강원수봉관(順康院守奉官)을 지냈으며, 1880년 의금부도사, 1885년 공릉령(恭陵令), 1888년 진안현감, 1902년 청안현감에 임명되었으나 그 이듬해 부친상을 당하여 사직하였다.

뒤에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갔으며, 동시에 통정대부(通政大夫)로 특진되었다. 신영균은 조선 말기의 급변하는 정세 속에서 여러 직책을 역임하면서 진보적인 시각에서 민족적인 자부심의 회복과 국력의 신장을 위하여 끊임없이 노력을 기울였다.

특히 1884년 갑신정변 때 동지 100여 인을 규합하여 세자와 신정왕후(神貞王后)·명성황후(明成皇后)를 호위한 공로로 고종으로부터 내탕금(內帑金: 임금이 개인적으로 쓰는 돈) 5,000냥을 하사받았는데, 신영균은 이 자금으로 갑신정변에 반대하는 인사들로 구성된 창의계(倡義契)를 조직하여 왕에 대한 충절을 맹세하였다.

외직으로 나가 고을을 다스릴 때에도 선정을 베풀었으므로 고을주민들이 신영균을 신부(神父)라 부르고 생사(生祠: 생전에 지은 사당)를 건립하기도 하였다. 저서로는 『인당집』 2권이 있다.

참고문헌

『인당집(忍堂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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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한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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