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은좌(殷佐). 윤태산(尹太山)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참판 윤잠(尹岑)이다. 아버지는 윤지숭(尹之崇)이며, 어머니는 이계창(李繼昌)의 딸이다.
1494년(성종 25) 생원으로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504년(연산군 10) 우의정 허침(許琛) 등이 6월 갑자사화로 유배된 이극균(李克均)·윤필상(尹弼商) 등의 족친과 각 도 감사와 수령과의 접촉을 사람을 보내어 척간(擲奸)하고자 할 때, 조계상(曺繼商) 등과 함께 천거되기도 하였다.
1506년(중종 1) 9월 헌납(獻納)에 제수되었으며, 이후 장령을 거쳐 1519년 11월 집의에 이르렀다. 이 때 대사헌 유운(柳雲)과 함께 기묘사화로 희생된 조광조(趙光祖) 등의 억울함을 상소하고 사직하였다.
1522년 집의로서 전라도암행어사가 되었고, 이듬해 5월에는 충청도에 파견되어 민정을 살피기도 하였다. 1537년 5월 산릉도감낭관(山陵都監郎官)으로 재직할 때 장경왕후(章敬王后: 중종의 비)의 장지(葬地: 禧陵)를 잘못 택하였다는 이유로 직첩을 추탈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