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남원(南原). 자는 자유(子由), 호는 용호(龍湖) 또는 오촌(梧村). 윤엽(尹曄)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사간 윤형언(尹衡彦)이다. 아버지는 윤경(尹㯳)이며, 어머니는 심천수(沈天授)의 딸이다.
1660년(현종 1)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었다. 음보로 공주목사에 이르렀고, 52세 되던 1679년(숙종 5)에야 느지막이 정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영암군수에 제수되고 이어 호조참의·부승지·우승지 등을 역임하였다.
1688년 공충도관찰사가 되었다가 조대수(趙大壽)의 옥사에 연루되어 파직, 오랫동안 야인생활을 하였다. 그 뒤 1692년 좌승지에 이어 강원도관찰사·동지의금부사 등을 거쳐 1707년 공조판서가 되었다. 이어 형조판서·참찬·한성부판윤·지중추부사 등을 역임하고 기로사(耆老社)에 들어갔다. 특히 변려문(騈儷文)에 뛰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