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치경 ()

유교
인물
조선 중기에,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이 발발하자 의병을 일으켜 항쟁한 학자 · 의병.
이칭
일지(一之)
경림(敬林)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1597년(선조 30)
본관
해남(海南)
출생지
미상
관련 사건
정유재란
정의
조선 중기에,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이 발발하자 의병을 일으켜 항쟁한 학자 · 의병.
개설

본관은 해남(海南). 자는 일지(一之), 호는 경림(敬林). 아버지는 참봉 윤강(尹綱)이고, 어머니는 광산이씨(光山李氏)로 판결사 이변(李邊)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어려서부터 학문에 전념하고 여러 차례에 걸친 향천(鄕薦)이 있었으나 오직 제가(齊家)에만 힘썼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백의(白衣)로서 창의(倡義)하여 군자감주부(軍資監主簿)인 계부(季父) 윤신(尹紳), 종제 윤동철(尹東喆)과 더불어 가동(家僮) 수십 명과 의병 수백 명을 거느리고 태안 일대의 왜적을 크게 무찔러 큰 공을 세웠다.

1597년 정유재란 때에는 중부(仲父) 윤윤(尹綸), 계부 윤신, 종제 윤동철과 다시 의병을 일으켜 해남군 옥천면 성산리 대교야(大橋野)에서 어란진(於蘭鎭)에서부터 추격하여온 왜적과 대항하여 싸우다가 네 사람이 다같이 전사하였다. 강진군 화암사(花巖祠)에 배향되었다. 저서로 『경림유고(敬林遺稿)』가 있다.

참고문헌

『경림유고(敬林遺稿)』
『호남절의록(湖南節義錄)』
집필자
윤혁동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