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위에 관한 특별조치법」은 1971년 국가비상사태에서 국가의 안전과 관련되는 내정·외교 및 국방상의 조처를 사전에 취할 수 있도록 비상대권을 대통령에게 부여하기 위하여 제정한 법률이다. 박정희 대통령의 국가비상사태 선언의 실정법적 근거를 마련하고자 입법화된 것으로서 국가비상사태에서 국가의 안전과 관련되는 내정·외교 및 국방상의 조처를 사전에 취할 수 있도록 비상대권을 대통령에게 부여하는 것을 내용으로 한다. 1981년 폐지되었고, 이후 헌법재판소에서 위헌으로 선언되었다.
1971년 12월 6일 당시 대통령 박정희는 국가가 안전보장상 중대한 시점에 있다고 보고, 국가안보를 저해하는 모든 행위를 용납하지 않으며, 무책임한 안보 논쟁을 삼갈 것과 최악의 경우, 기본권의 일부도 유보할 결의를 하여야 할 것이라는 내용의 국가비상사태를 선언하였다.
그러나 당시 이러한 대통령의 선언을 구체화할 실정법적 근거가 없었으므로 여당이었던 민주공화당은 대통령의 선언을 뒷받침하기 위한 법률안을 작성하여 야당의 강력한 반대를 무릅쓰고 입법화시켰다.
이에 따라 「국가보위에 관한 특별조치법」은 대통령에게 국가비상사태선포를 하고 국가의 안전보장과 관련하여 내정, 외교 및 국방상 필요한 광범위한 조치를 할 수 있는 비상대권을 부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1971년 12월 27일 법률 제2312호로 제정되었으며 전문 12조와 부칙으로 되어 있다. 대통령에게 국가비상사태선포권을 부여하고, 국회에 국가비상사태선포 해제 건의권을 인정하며, 대통령은 비상사태에서 물가 · 임금 등에 대한 일시적 통제를 할 수 있도록 하였다. 대통령은 국방상의 목적을 위한 인적 · 물적 자원의 효율적인 동원이나 통제 운영을 위하여 국가 동원령을 발하고, 동원 대상 지역의 토지, 시설의 수용 · 사용에 대한 특별한 조치를 할 수 있다.
또한 주민의 이동 · 입주 또는 주1를 명할 수 있고, 옥외집회 · 시위 · 언론 및 출판과 근로자의 단체교섭권 · 단체행동권을 규제할 수 있으며, 대통령이 세출예산을 조정하고, 이러한 대통령의 조치에 위반한 자를 처벌할 수 있도록 규정하였다.
이 법률의 시행을 위하여 「자원운영 등에 관한 규정」[대통령령 제6818조, 1973. 8.] 및 「국가보위에 관한 특별조치법」 제5조 제4항의 규정에 의한 「동원대상지역내의 토지의 수용 · 사용에 관한 특별조치령」[대통령령 제5912조, 1971. 12.]을 제정하여 시행하였다.
이 법률의 제정 동기가 대통령 박정희의 국가비상사태선포를 사후 합리화하기 위한 조치이고, 민주공화당이 이 법률안을 국회에 제출하자 신민당의 강력한 반대로 법률의 제정이 난항을 거듭할 때, 대통령 박정희가 국회의장에게 친서를 보내 이 법률의 제정을 강력히 촉구하였다는 점은 다른 법률에서 찾아볼 수 없는 사례이다.
「국가보위에 관한 특별조치법」의 제정 이듬해인 1972년의 유신헌법은 대통령에게 영도자적 지위를 부여하였다는 점에서 이 법률에 대한 헌법적인 뒷받침을 하였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제5공화국 헌법 시행 후인 1981년 12월 「국가보위에 관한 특별조치법폐지법률」에 따라 이 법률은 폐지되었다.
그러나 「국가보위에 관한 특별조치법폐지법률」 부칙에서 종전의 제2조 및 제5조의 규정에 의하여 발하여진 명령은 관계법률로 대체될 때까지 그 효력을 가지도록 규정하고 있어, 이 법률의 해당 부분은 여전히 효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후 헌법재판소는 「헌재 1994. 6. 30. 92헌가18 결정」 및 「헌재 2015. 3. 26. 2014헌가5 결정」에서 초헌법적인 국가긴급권을 대통령에게 부여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는 헌법을 부정하고 파괴하는 반입헌주의, 반법치주의의 위헌 법률이며, 헌법이 요구하는 국가긴급권의 실체적 발동 요건, 사후통제 절차, 시간적 한계에 위반되어 헌법에 위반된다고 판시하였다.
이 법률의 제정 후 10개월 만에 10월유신이 있었다는 점에서 이 법률의 제정은 10월유신의 전주곡(前奏曲)이라 할 수 있다. 이 법률이 당시 헌법 아래서 과연 합헌이었는가에 대하여 의문이 제기되었으나 이후 헌법재판소의 일련의 결정으로 위헌 논쟁은 종결되었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