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신앙은 자식이 없는 부녀자가 자식을 낳기 위하여 기원하는 민간신앙이다. 조선 시대에는 아들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회적 환경 때문에 기자신앙이 특히 발달했다. 신앙의 대상은 산과 강의 기암괴석이나 기자암, 기자석 등이다. 기자신앙의 형태는 지역에 따라 또는 집안에 따라 전국적으로 다양한 양상을 보인다. 초월적인 존재나 영험하다고 믿는 자연물에 치성을 드리거나, 특정 물건을 몸에 지니는 것 등이다. 자연물이나 기자석 등에게 비는 치성 행위는 부녀자들이 흔히 행하던 방법이었다.
넓은 뜻으로는 자식을 얻기 위한 신앙이라 할 수 있으나, 좁은 뜻으로는 얻으려는 자식 가운데서도 특히 아들을 얻어 그 아들이 무병장수하여 부귀영화를 누리게 되기를 기원하는 신앙을 말한다. 조선시대에는 아들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회적환경 때문에 기자신앙이 특히 발달했다.
그런데 기자행위는 『삼국사기』 및 『삼국유사』의 시조탄생신화에도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고대부터 있어온 것으로 볼 수 있다.
「단군신화」에서 웅녀는 그와 혼인해주는 이가 없으므로 늘 단수(壇樹) 아래에 가서 아이를 잉태하고자 주원(呪願)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이것은 신단수에 빌어 단군을 잉태한 것이므로 기자치성(祈子致誠)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신단수 아래에서 주원하였다는 것은 곧 신수(神樹)에 깃들인 정령(精靈)의 힘을 빌려 아기를 낳고자 한 행위로서, 수목숭배(樹木崇拜)의 일종이기도 하다. 이것은 후대에 큰 나무에 아기낳기를 비는 기자행위와 같은 형태로 볼 수 있다.
이와 달리 「금와왕탄생설화」에는 “북부여의 왕인 해부루(解夫婁)가 늙도록 자식이 없어 후사를 구하고자 산천에 제사를 올렸다. 그리고 그가 탔던 말이 곤연(鯤淵)에 이르러 큰 돌을 보고 눈물을 흘리자 이상히 여겨 그곳을 들추니 금색개구리모양[金色蛙形]의 어린아이가 있었다.”고 하였다. 이 설화에 나타나는 기자신앙의 대상은 산천과 큰 돌[大石]이다.
이러한 신앙의 대상은 후대에 와서 산이나 내, 기암괴석이나 기자암 · 기자석에 치성을 드리는 기자행위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형태로 오늘날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또, 『삼국유사』 가락국기(駕洛國記)의 「김수로왕탄생신화」에서는 마을사람들과 더불어 구지봉(龜旨峰)에 오른 구간(九干)들이 흙을 파면서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어라. 내어놓지 않으면 구워먹으리라.”고 노래하고 춤을 추자 수로가 탄생했다고 하였다. 이러한 주언(呪言)으로 노래하고 춤을 추어 김수로왕이 탄생한 것은 무의적(巫儀的) 기자행위로 볼 수 있다.
이는 오늘날까지 무의에 의탁하여 자식을 낳고자 하는 기자행위로 이어져오고 있다. 무당의 영력(靈力)을 빌려 자식을 얻고자 하였던 기자신앙의 문헌적 자취는 조선 후기의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곧 “진천(鎭川) 풍속에 3월 3일부터 4월 8일까지 여인들이 무당을 데리고 우담(牛潭)의 동서 용왕당 및 삼신당으로 가서 아들을 낳게 해달라고 기도한다.”고 했으며, “그 행렬이 끊어지지 않고 일년 내내 이어졌다.”고 하였다. 여기서 특히 아들낳기를 원했던 조선시대의 남아선호의식과 아울러 기자행위 형태로서 무속적인 방법의 성행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기자신앙의 흔적은 고대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의 출생담에서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특히, 영웅소설이나 판소리계 소설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가령 「유충렬전」에서 유심부부가 삼칠일 목욕재계를 하고, 남악산에 들어가 제물을 갖추고 축문을 지어 형산 신령전에 기자축수하여 충렬을 얻었다.
「춘향전」에서는 월매가 나이가 들도록 일점혈육이 없어 아이를 얻으려는 생각으로 목욕재계하고 지리산 꼭대기에 단(壇)을 쌓고 산신에게 빌어 춘향을 얻었다.
또 「심청전」에서 곽씨부인이 석불미륵과 태상노군 후토부인에게 빌고, 몸가짐에 있어 자리에 바르게 앉고, 칼로 벤 음식을 먹지 않고, 귀로는 음란한 소리를 듣지 않고, 눈으로는 악한 것을 보지 않고, 매사에 근신하여 심청을 낳는 등 기자행위는 여러 양상을 보인다.
기자신앙의 형태는 지역에 따라 또는 집안에 따라 전국적으로 다양한 양상을 보이는데, 자식 얻기를 기원하는 주체자의 행위에 따라 크게 다섯가지 분류된다.
첫째, 초월적인 존재나 또는 영험이 있다고 믿는 자연물에 치성을 드리는 유형이 있다.
기원대상은 산신 · 용신(용왕) · 삼신 · 칠성 · 부처(또는 미륵) 등의 신과, 암석 · 나무(또는 당나무) 등의 자연물이며, 그밖에 어느 특정 신일 수도 있다. 비는 곳은 산 · 내 · 바위 아래 · 나무 밑 · 절 · 삼신당 · 용왕당 · 칠성각 등이며, 혹은 집안의 어느 곳일 수도 있다.
의례방법은 촛불을 켜놓고 정성들인 제수(祭需)와 함께 정화수를 떠놓고 비는 비손 형식이나 절에 가서 불공을 드리는 것이 일반적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무당을 불러 굿을 하기도 한다.
비는 시기는 일정하지 않으나 대개 정월대보름 또는 그 전날, 삼월삼짇날, 사월초파일, 오월단오, 유월유두, 칠월칠석, 10월 3일, 매월 초사흘, 그리고 추석과 같은 명절을 전후하여 비는 경우가 많다.
비는 기간은 3일 · 7일 · 21일 · 100일간 등이며, 빌 때는 남이 모르게 빌어야 효험이 있다고 하여 보통 밤이나 새벽을 택한다. 이러한 치성행위는 다른 기자행위에 비하여 비교적 쉽게 할 수 있는 것이어서 부녀자들이 흔히 행하던 방법의 하나이다.
치성을 하기 전에는 반드시 목욕재계를 하여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고 부정한 것을 가린다. 구체적인 사례를 보면 다음과 같다.
①절에 가서 관음보살이나 미륵보살에게 3일 · 7일 · 21일 · 100일 동안 기도를 드린다(전국). ②샘이나 큰 나무, 특히 구멍이 크게 나 있는 고목을 향하여 빈다(전국). ③해변에 나가 용왕에게 빈다. 이를 ‘해공(海供)’이라 한다(제주). ④ 바위, 특히 아들바위 · 남근석(男根石) · 선바위 밑에 촛불을 켜놓고 빈다. 이때 작은 돌을 주워 들고 자기 나이 수만큼 정성껏 암벽에 문지른 다음 살며시 뗀다. 그 순간 작은 돌이 암벽에 붙으면 소원이 성취된다고 한다.
전국의 여러 기자암이나 기자석 가운데에서도 서울 인왕산 중턱의 ‘선바위’, 서울 자하문 밖의 ‘기자암’, 전라도 지리산의 ‘선바위’, 북제주 용담(龍潭) 냇가의 ‘석불’ 등은 특히 효험이 있는 바위로 알려져왔다.
굿을 통한 기자의례로는 영남지역의 ‘삼제왕굿’과 ‘불도’인데, 이는 산신(産神)을 청하여 아들을 낳게 해달라고 비는 제주도의 ‘불도맞이’ 등이 이에 해당한다.
둘째, 특정한 약물이나 음식을 마시거나 먹는 유형이 있다. 남성을 상징하는 생식기나 물건, 또는 주로 아들과 관련된 열매 · 음식 등을 먹음으로써 주력을 옮겨받을 수 있다고 믿는 습속이다.
그 구체적인 사례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①약물의 경우 『언해태산집(諺解胎産集)』에 부녀자가 잉태를 바랄 때는 ‘조경종옥탕(調經種玉湯)’이 효험이 있다고 하였다.
②수탉의 생식기를 생으로 먹는다. ③수평아리가 될 달걀을 매월 달 수대로 삶아 먹는다. ④산모에게 첫국밥을 해주고, 그 산모와 함께 첫국밥을 먹는다. ⑤아들 낳은 집의 금줄에 달려 있는 고추를 훔쳐다 달여먹는다. ⑥한개나 두개만 열린 홍도 또는 석류를 따먹거나, 동쪽으로 뻗은 뽕나무 가지의 오디를 먹는다.
⑦석불의 코를 깎아 갈아 마신다. ⑧비석에 새겨진 글자 중 ‘자(子)’ · ‘남(男)’ · ‘문(文)’ · ‘무(武)’ · ‘인(仁)’ · ‘의(義)’ · ‘지(智)’ · ‘용(勇)’자 등을 파내어 그 돌가루를 먹는다. ⑨적색이나 흑색 땅거미 3마리를 잡아 말려서 가루를 먹는다.
셋째, 특정한 물건을 몸에 지니고 다니거나 은밀한 장소에 숨겨두는 유형이 있다. 특정한 물건이란 대개 남성을 상징하거나 생산을 상징하는 주물(呪物)들이다. 그 구체적인 사례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① 부적을 몸에 지니거나 베개 속 또는 문 위에 붙인다. ② 친정어머니가 준 은장도를 치마 끝에 달고 다니거나, 은장도를 사람들이 많이 밟고 다니는 문턱 밑에 3개월간 묻어두었다가 꺼내어 허리에 차고 다닌다.
③ 아들을 많이 낳은 집의 식칼을 훔쳐다가 작은 도끼를 만들어 여자의 베개 밑에 놓거나 속옷에 차고 다닌다. ④ 은으로 자물통을 만들어 찬다. ⑤ 아들 3형제를 둔 집의 수저를 훔쳐다가 자식을 낳지 못하는 부인의 베개 밑에 감추어둔다.
⑥ 다산(多産)한 여인의 속옷이나 월경대를 훔쳐다가(또는 얻어다가) 몸에 두르고 다닌다. ⑦ 남자가 씨름할 때 다리에 두른 수건이나 아기 잘 낳는 부인의 속옷을 가져다가 속옷을 지어 입는다. ⑧ 붉은 고추 또는 알밤 · 은행열매를 주머니에 넣어 치마 속에 차고 다니거나 안방의 동쪽 벽에 걸어두거나 남편의 베개 밑에 숨겨둔다.
⑨ 신부가 신랑집에 신행갈 때 신랑집 마을 어느 집에 아들 표시의 금줄이 있는 것을 보면 그것을 거두어 가마 앞에 건다. ⑩ 작두의 고르재기나 호랑이 발톱, 수탉의 생식기를 지니고 다닌다. ⑪ 상여가 나갈 때 공포조각을 훔쳐다 속옷에 달고 다닌다.
넷째, 남녀의 성기모양의 돌(또는 바위)이나 나무에다 잉태와 출산의 모의행위(模擬行爲)를 재현하는 유형이 있다. 흔히 좆바위 · 자지바위 · 아들바위 등 다양한 명칭으로 불리는 남근석(男根石)이나, 공알바위 · 보지바위 · 붙임바위 등으로 불리는 여근(女根)모양의 돌(또는 바위)이나 여근형국에서 행하여지는 것은 암석숭배(巖石崇拜)의 하나로 전국적으로 널리 분포되어 있다.
이 방법은 성기모양의 자연물과 유사한 것과의 접촉을 통하여 똑같은 결과를 초래하려는, 보다 적극적인 표현의 주술행위에 속하며, 흔히 치성행위와 함께 행하여진다. 그 구체적인 사례로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① 아기 없는 부녀자들이 밤에 몰래 남근석에 음부(陰部)를 비벼대면서 아기 낳기를 빈다.
② 기자석 앞에 실 한끝을 매고 다른 한끝은 기자하는 부인의 하복부에 둘러매고 정좌하여 기도하는데, 하복부를 찌르는듯한 영감이 들 때까지 며칠간 계속한다. 이 방법은 조금만 움직여도 실이 끊어지므로 상당한 고역이 따른다.
③ 강원도 고성 해안의 해금강 만물상 끝에 있는 기자암은 바위와 바위가 겹쳐서 마치 여음의 형국을 이루었으며, 그 오목한 곳에 구멍이 패어 있는데, 그곳에 밥과 함께 백지로 싼 봉석, 곧 길쭉한 돌을 공양하고 기도를 한다.
그 후 효험이 있어 태어난 아들에 대해서는 “너의 아버지는 돌아버지다.”라고 놀린다고 하며, 또 그 아이가 아프면 부모는 아이를 업고 그 기자암에 찾아가서 “이 아이는 너의 아들이니 병없이 자라게 해달라.”는 내용의 주문을 외며 빈다고 한다.
④ 울릉도 북면 나리동 해안에는 암산이 있는데, 이 산의 왼쪽에 구멍이 뚫려 있어 석양에는 한가닥의 빛이 이 암굴에 들어온다. 이 빛에 음부를 쬐면 아들을 낳는다 하여 그곳 부녀자들 사이에서는 석양 무렵에 치마를 들추는 습속이 있었다고 한다.
⑤ 어멈바위라고 하는 평평한 바위표면을 애돌[子石]로 갈아 오목하게 파놓고, 그 애돌을 붙여두면 아들을 낳는다 하여, 야음에 이 붙임바위를 찾아와 어멈바위를 갈면서 기자 주문을 외운다.
⑥ 두 나무의 가지가 엉켜서 한 나무처럼 연리지목(連理枝木)이나 사람의 다리모양처럼 생긴 Y자형의 나뭇가지가 있는 근처에서 방을 얻어 부부가 동침하면 아들을 낳을 수 있다고 한다. 또는, Y자형의 나뭇가지에 돌을 꽂아 아들을 기원하기도 한다. 혹은 산모가 출산 때 입었던 피묻은 옷을 입고 산실의 아랫목에 앉아 아기 낳는 흉내를 내며 하룻밤을 지내면 효험이 있다고 한다.
다섯째, 여러 사람에게 좋은 일을 많이 함으로서 자식을 얻고자 하는 공덕의 유형이 있다. 남에게 공덕을 많이 쌓음으로서 소원이 성취될 수 있다고 믿는 인과응보에 따른 불교적 관념에서 생긴 습속이라 할 수 있다. 그 구체적인 사례는 다음과 같다.
① 정월보름날 남편이 냇물에 징검다리를 놓아 많은 사람들이 편안히 다닐 수 있게 해준다. ② 가끔, 특히 칠월칠석에 마을 공동우물을 푸어 마을사람들이 늘 깨끗한 물을 마실 수 있게 해준다. ③ 허물어진 길을 잘 닦아주고, 길을 쓸어 깨끗하게 한다.
④ 시주승이 오면 시주를 정성껏 한다. ⑤ 부부가 절대로 남에게 해로운 일을 하지 않도록 노력하며 불쌍한 사람을 힘껏 도와준다.
기자신앙은 생명을 존중하고 생산력에 대한 강한 애착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물론, 가부장적 권위가 강화되었던 조선시대에 남아선호사상으로 말미암아 기자신앙이 잘못된 폐단을 낳은 적도 있었다.
그러나 기자신앙에 담긴 여인들의 자식에 대한 간절한 정성과 절박한 염원, 그리고 생명체에 대하여 지녔던 존엄성 등은 오늘날에도 우리의 중요한 정신적 맥락으로 이어지고 있다.
또한, 이러한 신앙을 통해서 부인들은 아들을 낳지 못한 불안과 초조감을 해소시킬 수가 있었고, 정신적인 위안을 얻으면서 인내심을 기를 수 있었다는 점에서 효과적인 수단으로 널리 활용되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