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정(李周禎: 1750~1818)의 본관은 고성(固城)이며, 자는 한백(翰伯) · 경첨(景詹), 호는 대계(大溪)이다. 1795년(정조 19) 문과에 급제한 이후 전적, 예조좌랑, 결성현감, 개성부경력 등을 역임했다. 결성현감 재임 중에는 관찰사의 사적인 청을 거절했다가 1808년(순조 8) 파직되었으며, 1816년(순조 16) 개성부 경력에 부임한 이후에는 관아의 경비를 줄이면서 민생을 구제하며 향음례를 거행하고 경전을 강론하는 등 학문 진작에 힘썼다.
6권 3책의 목판본이다. 표제는 ‘대계집(大溪集)’이고, 권수제는 ‘대계선생문집(大溪先生文集)’이다.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한국국학진흥원, 성암고서박물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서발문이나 간기가 없어 간행 정보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힘들다. 다만 부록에 1845년(헌종 11) 이시수(李蓍秀)가 지은 행장, 1846년 유치명(柳致明)이 지은 묘갈명이 실려 있는 것을 참고하면, 1846년경에 간행한 것으로 추측된다.
권1에는 「우음(偶吟)」‧「무이견분매작걸매시(武夷見盆梅作乞梅詩)」‧「족부와설공만(族父臥雪公輓)」 등의 시 130수, 「사사헌부지평소(辭司憲府持平疏)」‧「의청선사철향소(擬請先師餟享疏)」 등의 상소문 2편이 실려 있다. 권2에는 「상한상국용귀(上韓相國用龜)」‧「여오시랑(與吳侍郞)」 등의 편지글 57편이 실려 있다. 권3에는 「예주향음주례시서(禮州鄕飮酒禮詩序)」‧「고성이씨족보서(固城李氏族譜序)」‧「동곡산재시서(東谷山齋詩序)」 등의 서(序) 12편, 「고아소기(顧我巢記)」‧「낙강정기(洛江亭記)」‧「무학당중수기(武學堂重修記)」‧「서도남문중수기(西都南門重修記)」 등의 기(記) 5편, 「일봉조공유집발(一峯趙公遺集跋)」 등의 발(跋) 5편, 상량문 7편, 명 1편, 축문 2편이 실려 있다. 권4에는 「제선조행촌선생묘문(祭先祖杏村先生墓文)」 등의 제문 22편, 「죽오처사이공묘지명(竹嗚處士李公墓誌銘) 등의 묘지명 3편, 묘갈명 4편, 광기 6편이 실려 있다. 권5와 권6에는 총 17편의 행장과 1편의 유사가 있고, 권6의 뒷부분에는 이정주를 대상으로 한 행장과 묘갈명이 수록되어 있다.
『대계문집』은 이주정의 학문과 문학, 행적 등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이다. 그는 생애 전반에 걸쳐 크게 현달하지는 않았지만, 지방관으로의 뛰어난 치적을 남겼으며 학문과 강학에 매진한 인물이었다. 「예주향음주례시서」, 「의청선사철향소」, 「무학당중수기」, 「여거십명(旅居十銘)」 등의 작품들을 통해 그가 유학을 진작하고 선현을 존숭하려는 의식, 그리고 학자로서의 태도와 실천적 자세를 엿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