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남북국시대 때, 시독한림랑 겸 숭문대서서원직학사를 역임한 통일신라의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그런데 이 서문이 『청장관전서』의 「한죽당섭필상(寒竹堂涉筆上)」에 전하고 있다. 내용은 대사(大師)의 행장을 노래한 것인데, 특히 신라 왕실과의 두터운 교분이 잘 나타나 있다. 그런데 이덕무는 이 글을 평하기를, “영영(英英)한 정채(精彩)는 없으나 오히려 당나라 문체의 전형(典型)이 있다.”라고 하였다.
이러한 평가와 통일신라시대 도당 유학의 유행 등을 생각해 보면, 박옹은 최치원(崔致遠) 등 당시의 문사들처럼 당나라에 유학해 학문을 했던 육두품(六頭品) 출신의 지식인으로서 헌강왕의 측근에서 문필에 관한 일을 담당하며 왕을 보필했던 것 같다.
참고문헌
- 『삼국사기(三國史記)』
- 『계원유향(桂苑遺香)』
-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
- 『역주한국고대금석문3』(한국고대사회연구소 저, 가락국사적개발연구원, 1992)
- 「나말여초(羅末麗初) 근시기구(近侍機構)와 문한기구(文翰機構)의 확장(擴張)」(이기동, 『신라골품제사회와 화랑도』, 한국연구원, 1980)
- 「신라하대(新羅下代) 빈공급제자(賓貢及第者)의 출현(出現)과 나당문인(羅唐文人)의 교환(交驩)」(이기동, 『신라골품제사회와 화랑도』, 한국연구원, 1980)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