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섬에 대한 학술조사는 1958년에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학술조사단에 의해 행해진 바 있고, 1973년에는 대한산악연맹의 후원으로 사회학 및 인류학적 조사가 실시된 바 있다.
1973년도의 조사에서는 진촌리에서 말등패총이 발견된 바 있고, 출토지가 불확실하지만 백령도 출토라고 전하는 흑도장경호(黑陶長頸壺)가 국립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1981년에는 서울신문사 후원으로 서울대학교 고고학과가 주관이 되어 백령도에 대한 대대적인 학술조사가 이루어졌다. 그 결과, 신석기시대에 속하는 빗살무늬토기〔櫛文土器〕 패총이 용기마을과 말등마을에서 발견, 조사되었다.
용기패총은 용기포 포구에서 동쪽으로 약 100m 떨어진 진촌 5리 산 35번지에 위치하고 있다. 1980년 신축가옥을 지을 때 패각층(貝殼層)이 노출됨으로써 발견되었다. 조사 당시의 패총은 거의 깎여져 나가고 약간만 남아 있었다. 대체로 남북방향의 길이는 7.5m이고 패각층의 두께는 20㎝ 정도였다.
출토유물로는 토기는 횡주어골문(橫走魚骨文)의 빗살무늬토기편과 병행사단선문(竝行斜短線文) 및 민무늬토기조각의 토기편 등이 있다. 모두 굵은 사립(砂粒)을 섞은 점토질로 만들어졌으며, 토기의 앞뒤면에 다치구(多齒具)로 찰과(擦過)한 흔적이 보인다.
석기는 자연석을 그대로 이용한 돌도끼가 발견되었다. 이러한 것으로 미뤄볼 때, 이 패총의 연대는 빗살무늬토기시대 중에서도 말기에 속한다.
말등패총은 출입제한구역인 해안가에 위치한다. 패각층의 두께는 약 60∼100㎝, 길이는 15∼20m에 달하여 남한 최대의 조개무지라고도 할 수 있다.
출토유물은 토기로는 빗살무늬토기 구연부(口緣部) 1편, 동체부(胴體部) 1편, 저부(底部) 2편과 즐문계 무문양토기(櫛文系無文樣土器) 완형 1점 등이 있다. 석기로는 긁개(Scraper) 2점, 마제석부(磨製石斧), 갈돌〔碾石〕, 역석기(礫石器), 박편석기(剝片石器) 등이 수십 점 발견되었다.
또한 노지(爐址)와 유사한 불을 피우던 자리도 발견되었다. 이 곳에서 보이는 토기와 석기들은 평양시 청호리·금탄리와 해주시 용당포 등의 유적과 같은 계통으로 신석기시대의 후기에 속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