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문직지(三門直指)』의 저자는 진허 팔관(振虛捌關, ?1782)이다. 그는 청허계 편양 문파인 풍담 의심(楓潭義諶, 15921665) - 월저 도안(月渚道安, 16381715) - 설암 추붕(雪巖秋鵬, 16511706) - 벽허 원조(碧虛圓照, 1658~1735)로 이어지는 편양파의 계보를 이은 승려이다.
진허 팔관의 저술로는 1769년에 팔관 본인이 직접 간행한 『삼문직지』와 1786년 그의 제자들이 간행한 『진허집(振虛集)』이 전한다. 김정중이 쓴 「진허집서」에서 “진허 스님이 입적한 지 4년이 지나 그 제자 보철(普喆)이 유고를 수습하고 나에게 서문을 부탁하였다”라고 하였으므로 진허 팔관이 입적(入寂)한 시기는 1782년 경으로 추정할 수 있다.
『삼문직지』는 1권 1책으로 이루어진 목판본이다. 사주단변(四周雙邊)은 20.2×14.7cm이며, 10행 22자, 2엽화문어미(葉花紋魚尾)를 사용하였다.
책머리에는 저자인 팔관의 서문이 있고, 책의 마지막에는 시주 목록과 「천수다라니계청(千手陀羅尼啓請)」, 간기(刊記) 등이 실려 있다.
책의 본문에서는 불교를 염불문(念佛門) · 원돈문(圓頓門) · 경절문(徑截門)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나아가 염불문은 정토(淨土), 원돈문은 교, 경절문은 선으로 서로 이름만 다를 뿐이니, 이는 서로 간의 우열이나 차등이 없는 삼문일실(三門一室)이라는 주장이 나타나 있다.
염불문은 『염불인유경(念佛因由經)』 · 『예념미타도량참법(禮念彌陀道場懺法)』 · 『정토감주(淨土紺珠)』 · 『낙방문류(樂邦文類)』 등의 문헌을 인용하여 서술하였다. 삼문(三門) 가운데 염불문을 가장 먼저 설명한 이유는 염불삼매(念佛三昧)가 보살의 아버지이므로 삼문 가운데 가장 먼저 배치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염불문은 ①평생염불(平生念佛), ②임종염불(臨終念佛), ③칭명염불선후절차(稱名禮念先後節次)의 순서로 배치되었다. 평생염불은 평소에 하는 염불의 종류에 대해 소개한 것이고, 임종염불은 임종시 하는 염불에 대해 설명한 것이며, 칭명예념선후절차는 염불의식의 절차에 대해 설명한 것이다. 한자와 언해를 나란히 서술하여 한자를 모르는 이도 글을 읽고 이해할 수 있도록 책을 만들었다. 마지막 부분에는 「서방극락세계구품연화도(西方極樂世界九品蓮臺圖)」를 실어 유심정토와 서방정토가 둘이 아님을 설명하고 있다.
원돈문에서는 보조국사 지눌(知訥, 1158~1210)의 『원돈성불론(圓頓成佛論)』을 인용하여 '자기 마음 속 분별의 종자가 곧 부처님의 부동지(不動智)임을 깨달은 후에 수선(修禪)을 통하여 묘용(妙用)이 일어남'을 밝히고 있다. 뒤를 이어 의상의 「화엄일승법계도(華嚴一乘法界圖)」를 한문과 한글을 병행해 수록하였다. 덕분에 이 「화엄일승법계도」는 18세기 후반의 국어사, 특히 진언의 한글 음역사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경절문에는 지눌의 『간화결의론(看話決疑論)』을 비롯해 「휴휴암주좌선문(休休庵主坐禪文)」 · 「시각오선인법어(視覺悟禪人法語)」 · 「정진도설(精進圖說)」 · 「간당규(看堂規)」 · 「행선축원규(行禪祝願規)」 등이 수록되어 있다.
『삼문직지』는 삼문(三門)의 주요 내용에 고려시대 지눌의 글을 싣고 있어 지눌의 사상적 영향이 조선 후기까지 이어졌음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또한 이 책은 선 · 교 · 염불의 삼문이 서로 이름만 다를 뿐이니 우열이나 차등을 두어서는 안 된다는 시각을 드러냄으로써 선 · 교 · 염불의 일치를 주장하고 있다. 조선 전기까지 불교계는 선종과 교종으로 나뉘어져 있어 선과 교에 차이가 있었다. 그러나 명종대에 이르러 종파 제도가 폐지되었고 이후 임진왜란을 계기로 종파가 통폐합되면서 선 · 교 · 염불에 차등을 두지 않고 함께 수행하는 삼문수행(三門修行)의 경향이 불교계에 정착되기에 이른다. 『삼문직지』는 삼문수행이라는 조선 후기 불교계의 경향의 변화가 드러나는 책으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