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체적으로는 예종 때 국학에 설치된 7재(七齋)를 가리킨다. 흔히 삼사제(三舍制)라 하여 외사(外舍)·내사(內舍)·상사로 이루어진 교육과정 중 최고위 과정을 일컫는데, 이 과정에 입학한 학생들이 기숙하던 건물 또한 상사라고 불렀다.
삼사제는 원래 중국의 송(宋)나라에서 시행하던 것으로 국자감에서의 교육과정을 내사와 상사로 나누고, 대학 외에 따로 외사를 두어 각 과정의 성적에 따라 외사→내사→상사의 상급과정으로 진급시키는 교육체제였다. 이를 도입해 1109년(예종 4)에 예종이 국학에 7재를 설치하면서 상사로 하고 종래의 국자학(國子學)·태학(太學)·사문학(四門學) 과정을 내사로 편제했던 것이다.
따라서 도처에 설립되어 있었다고 여겨지는 학당(學堂)적 성격의 학교나 사숙(私塾), 그리고 1261년(원종 2)에 생긴 동서학당(東西學堂)과 1390년(공양왕 2)에 설립된 5부학당 등이 외사의 역할을 맡았던 것으로 이해된다.
상사에 진학하기 위해 내사생들은 6년 동안의 재학 기간 중에 시(詩)·부(賦)는 물론 경학(經學) 시험까지 치르는 소위 승보시(陞補試)를 거쳐야만 했다. 한편 상사생들은 7재에서 보통 3년 동안 재학했으며, 경학을 위주로 공부하였다.
그리고 재학 기간 중 행예시(行藝試) 또는 고예시(考藝試)라고 불리는 학교시험을 치러야 했는데, 여기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둔 사람은 동당시(東堂試 : 禮部試)의 중장(中場 : 2차시험)이나 종장(終場 : 3차시험)에 직접 응시할 수 있는 특전이 주어졌다.
즉 행예시 성적이 14분(分) 이상이면 종장에, 13분 이하 4분 이상이면 중장에 직접 응시할 수 있었다. 따라서 6년 동안 공부하여 동당시의 초장(初場 : 1차시험)에 겨우 응시할 수 있었던 내사생보다 상사생이 훨씬 유리하였다.
이처럼 송나라의 제도를 모방한 것이기는 했지만 고려의 삼사제에는 송나라와는 다른 뚜렷한 특징이 있다. 즉 송나라의 경우 상사생 중 우수한 자를 뽑아 곧바로 관직에 보임했음에 반해, 고려에서는 아무리 우수한 상사생이라도 직접 관직을 제수하지 않았고, 과거(科擧)나 음서(蔭敍)를 통해서만 관직에 나아갈 수 있도록 했던 것이다.
한편, 예종이 설치한 7재를 경학 위주의 교육을 강화하기 위해 국자감의 상사와는 별도로 만든 교육과정으로 이해하는 이견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