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생몽유록」은 조선 중기에 임제가 지은 한문 소설이다. 원자허전(元子虛傳)이라고도 한다. 문집인 『백호집』의 별책부록 『남명소승』에 실려있다. 작품 말미의 연기(年記)로 제작 연대를 추정하면 1568년(선조 1)으로 보인다. 주인공 원자허가 강개한 선비로 초야에 묻혀 살아가던 어느날 밤, 꿈에서 죽은 사람들이 사는 영계로 우연히 가게 되었다. 왕(단종)과 다섯 신하가 있는 정자로 가서 이들과 어울려 고금의 흥망사를 의론한다. 「원생몽유록」은 폐주 단종과 사육신의 억울한 경우를 드러내어 은연중 세조의 찬탈을 비판하고 있다.
조선 중기에 임제(林悌)가 지은 한문소설. 필사본. 일명 ‘원자허전(元子虛傳)’이라고도 하는데, 원자허(元子虛)라는 인물이 꿈속에서 단종과 사육신을 만나 비분한 마음으로 흥망의 도를 토론하였다는 내용으로 세조의 왕위 찬탈을 소재로 정치권력의 모순을 폭로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화사(花史)」와 「수성지(愁城誌)」 등의 한문 소설과 함께 문집인 『백호집』의 별책부록 『남명소승』에 전한다. 이외에 『조야첨재(朝野僉載)』 권8에 수록된 본문, 「육신전(六臣傳)」(일명 육문졍튱졀ᄒᆡᆼ녹)에 수록된 국역본 등이 현존하는 필사본이다.
그 밖에 인간본(印刊本)으로는 『장릉지(莊陵誌)』, 남효온(南孝溫)의 『남추강집(南秋江集)』, 원호(元昊)의 『관란유고(觀瀾遺稿)』, 임제(林悌)의 『백호문집(白湖文集)』 등에 수록된 것들이 전한다.
작자에 대해서는 김시습(金時習) · 원호를 주장하는 이설이 있었다. 황여일(黃汝一)의 『해월문집(海月文集)』의 기록에 의하여 임제임이 확정되었다. 작품의 제작연대는 확실하지 않다. 작품 말미의 연기(年記)로 추정하면 1568년(선조 1)으로 보인다. 황여일은 이 글에 발(跋)과 제시(題詩)를 붙이고 있다.
주인공 원자허(元子虛)가 강개한 선비로 야(野)에 묻혀 살아가던 어느날 밤, 꿈에서 죽은 사람들이 사는 영계로 우연히 가게 되었다. 그곳에서 복건자(幅巾者, 南孝溫 남효원)의 마중을 받아 왕(단종)과 다섯 신하가 있는 정자로 가서 이들과 어울려 고금의 흥망사를 의론한다.
마음이 격하여 있던 복건자는 요(堯) · 순(舜) · 탕(湯) · 무(武)의 네 성군을 적시(賊視)하는 발언을 한다. 이들은 선양(禪讓)을 빙자해서 찬탈의 선례를 역사에 남겼다는 것이다. 왕은 이에 이를 빙자하는 자가 나쁠 뿐이지, 결코 성군을 탓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일동은 술을 마시며 지난 일들을 시로 읊어 회한을 토로한다.
왕의 노래를 시작으로 신하들이 차례로 음영하고 마지막으로 자허는 감정이 복받쳐서 눈물을 흘리며 시 한수를 읊으니 일동이 듣고 비감에 젖게 된다. 이 때 씩씩한 장부(兪應孚에 해당)가 자리로 뛰어들어와 왕에게 인사하고 썩은 선비들과는 대사를 이룰 수가 없다며 칼을 뽑아 춤추며 큰 소리로 노래한다. 노래가 채 끝나기도 전에 갑자기 날이 어두워지며 비바람이 치고 우레가 한 번 울리자 자허는 꿈에서 깨어난다는 이야기이다.
작중인물 복건자에 대하여 통설과는 달리 최덕지(崔德之)로 보는 견해가 있다. 그러나 많은 문헌에서 남효온이 인정되고 있다. 「원생몽유록」은 폐주 단종과 사육신의 억울한 경우를 드러내어 은연중 세조의 찬탈을 비판하고 있다. 이것은 당시에 함부로 말할 수 없는 금기된 사실이었다.
그러므로 필사된 형태로 문집에 실리지 못한 채 전해온 것이다. 그러나 독자층은 일반사대부 외에도 국역본의 존재에서 보듯 부녀자층까지 확산되고 있다. 이는 금기시된 내용이기는 하나 불의를 미워하고 약자를 동정하는 인간의 상정이 크게 작용한 듯하다.
숙종은 「원생몽유록」을 친히 읽고 복건자의 발언 중 ‘적(賊)’자만을 고쳐 세상에 읽히는 것을 묵인하였다. 이 작품에서 궁극적으로 문제삼은 것은 인간사의 부조리한 면이다. 이 점은 황여일의 발문에서도 드러나 있다.
한국소설사상 몽유록계통의 소설이 이 작품에 이르러 비로소 역사적 · 사회적 주제를 띤 본격소설로 성격화되었으며, 보다 높은 차원의 몽자소설(夢字小說)의 전개를 촉진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