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개항기 때, 홍문관제학, 형조판서, 판의금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867년에 예방승지(禮房承旨), 1870년에는 전라도관찰사에 임명되었다. 당시 전라도지방의 행정에 진력해 외침에 대비한 성의 보수(補修)와 군사훈련에 주력하였다. 3년 여의 전라도관찰사를 지낸 뒤 1872년 11월 규장각직제학이 되었다. 1874년 형조판서에 올랐으며, 이듬 해에는 시강원우빈객과 좌부빈객으로 세자의 교육을 맡았다.
1879년 한성부판윤이 되었다가 다시 형조판서를 거쳐, 이듬 해에 예조와 이조판서를 역임하였다. 1883년 병조판서가 되고, 같은 해 9월 판의금부사로 특별 발탁되었다. 갑신정변 직전인 1884년 6월에는 동지 겸 사은정사(冬至兼謝恩正使)로 청나라에 다녀오기로 되어 있었으나, 청나라에 다녀와 복명(復命)하였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1885년 5월 예조판서를 거치고 그 해 8월 판돈녕부사 · 판의금부사 · 홍문관제학 등을 두루 거쳤으며, 이듬 해 2월에는 다시 예문관제학이 되었다. 그 해 6월에 경상도관찰사로 다시 외직에 나갔다. 전라도에 이어 경상도의 관찰사를 역임하여 당대의 관리 중에서 누구보다 지방 실정에 밝은 관리가 될 수 있었다.
1888년에는 공조판서 · 예문관제학 · 규장각제학 · 판의금부사 등을 다시 역임하였다. 1889년에 이르러서는 판의금부사 · 홍문관제학을 지내고 이듬 해 형조판서 · 판의금부사, 1893년 판중추부사를 지냈다.
1896년에는 품계가 정1품에 오르고 규장원경 겸 왕태자궁일강관(奎章院卿兼王太子宮日講官)이 되었으며, 칙임관3등에 올랐다. 이듬 해 중추원의장에 칙임관1등이 되었고, 1898년 궁내부특진관이 되었다. 같은 해 의정부참정(議政府參政)을 지냈으며, 1899년에는 금보전문서(金寶篆文書) 서사관(書寫官)을 지냈다. 1901년 궁내부특진관으로 재임하였다.
상훈과 추모
참고문헌
- 『고종실록(高宗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비변사등록(備邊司謄錄)』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일성록(日省錄)』
- 『고종시대사』1∼5(국사편찬위원회, 1970·1971)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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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이조에 속한 정삼품의 당상관. 이조 참판의 아래이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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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조선 시대에, 승정원의 예방을 맡아보던 우승지.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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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조선 시대에 둔, 형조의 으뜸 벼슬. 품계는 정이품이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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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
: 조선 시대에, 한성부의 으뜸 벼슬. 품계는 정이품이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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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5
: 조선 시대에 둔, 의금부의 으뜸 벼슬. 품계는 종일품이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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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6
: 조선 시대에, 중추부에 속한 종이품 벼슬.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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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7
: 명령을 받고 일을 처리한 사람이 그 결과를 보고함.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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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8
: 조선 시대에 둔, 의금부의 으뜸 벼슬. 품계는 종일품이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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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9
: 고려 시대에 둔, 전공사 및 공조(工曹)의 으뜸 벼슬. 품계는 정삼품이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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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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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1
: 각 관아에서 필사하는 일을 맡아 하는 잡직의 구실아치.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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