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만영은 해방 이후 『밤의 서정』, 『저녁종소리』, 『장만영선시집』 등을 저술한 시인이다. 1932년 『동광』 에 시 「봄노래」로 등단했다. 1948년 서울에서 출판사 산호장을 경영하면서 김기림 등 문우들의 시집을 발행했다. 1954년에는 서울신문사에 입사하여 출판국장을 역임하면서 『신천지』와 학생문예지 『신문예』를 주간했다. 1937년에 출간된 첫 시집 『양(羊)』을 비롯해 8권의 시집을 출간했다. 장만영은 도시적·문명적 감각의 회화가 아니라 전원적·서정적 제재를 현대적 감성으로 노래한 이미지스트의 경향을 지닌 시인으로 평가된다.
본관은 안동(安東). 호는 초애(草涯). 황해도 연백 출생. 아버지는 장완식(張完植)이며, 어머니는 연안 김씨(延安金氏)로 김숙자(金淑子)이다.
1923년 황해도 배천공립보통학교에 입학하여 1927년에 졸업하고 단신으로 상경하여, 1932년 지금의 경복고등학교(景福高等學校) 전신인 경성 제2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
1934년 일본 도쿄로 건너가 삼기영어학교(三岐英語學校) 고등과에 입학하였으나 1936년 부모의 강권으로 학교를 그만두고 귀국하였다. 같은 해 신석정(申夕汀)의 소개로 알게 된 전라북도(지금의 전북특별자치도) 김제 출신의 박영규(朴榮奎)와 혼인하였다.
비교적 많은 교우 · 문우와 친교를 맺었다. 고보 시절에는 훗날 『삼사문학(三四文學)』을 창간한 정현웅(鄭玄雄) · 이시우(李時雨) · 한노단(韓路壇) 등과 더불어 습작 활동을 하였다.
고보 졸업 후에는 서면으로만 알아왔던 김억(金億)과 두터운 사제의 관계를 맺기도 하였다. 또한 신석정 · 박영희(朴英熙) · 최재서(崔載瑞) · 오장환(吳章煥) · 김기림(金起林) · 정지용(鄭芝溶) · 서정주(徐廷柱) 등과도 친교를 맺었다.
1944년 아버지가 경영하던 배천의 온천을 경영하다가 1948년 서울에서 출판사 산호장(珊瑚莊)을 경영하면서 김기림 등 문우들의 시집을 발행해주기도 하였다.
1950년 6·25 때에는 종군작가단에 편성된 문인들과 어울려 『전선문학(戰線文學)』을 간행하였다. 1954년에는 서울신문사에 입사하여 출판국장을 역임하면서 『신천지(新天地)』와 학생문예지 『신문예(新文藝)』를 주간하기도 하였다.
1959년에는 한국시인협회 부회장, 1966년에는 회장에 선임되었고, 1968년에는 신시60년기념사업회(新詩六十年紀念事業會) 부회장을 역임하다가 1975년 10월에 사망하였다.
그의 시작 활동은 1931년 『동광(東光)』지 독자투고란에 습작품을 발표하면서부터 시작되었으나, 같은 잡지 1932년 5월호에 시 「봄노래」가 김억의 추천을 받음으로써 정식으로 등단하였다.
이 후 『조선일보』에 「물장난」 · 「동무여!」(1932.7.3.), 『동광』에 「마을의 여름밤」(1932.10.) · 「정처없이 떠다니고 싶지 않나?」 · 「자네는 와서」(1933.1.), 『신동아』에 「나비여!」 · 「알밤」(1933.10.) · 「비 걷은 아침」(1933.4.) 등을 계속 발표하였다.
흔히, 그는 신석정과 김광균(金光均)의 특성을 고루 갖춘 시인으로 평가된다. 그의 시는 전반적으로 도시적 · 문명적 감각의 회화가 아니라 전원적 · 서정적 제재를 현대적 감성으로 노래한 이미지스트의 경향을 지닌다.
농촌의 감수성을 바탕으로 하고 동심과 감상적 서정을 지닌 점에서는 신석정과 통하고, 대상을 이미지화한 점에서는 김광균 등의 모더니스트와 맥을 같이한다.
그의 시에 보이는 선명한 시각적 이미지, 관념과 형상의 조화는 그가 특히 이미지의 조형에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최재서는 이 점에 대하여 “이미지와 운동이 합쳐서 세련된 위트의 시”라고 하였다. 1937년에 발간된 첫 시집 『양(羊)』에는 시작 활동의 초기에 해당하는 작품집이다.
이 시집에는 「아직도 거문고 소리가 들리지 않습니까」 · 「가을 아침 풍경(風景)」 · 「봄들기 전」 · 「해안에서」 · 「달 · 포도 · 잎사귀」 등 모더니즘적인 신선한 감각을 풍기는 작품들 30편이 수록되어 있다.
곧이어 발간된 제2시집 『축제』(1938)와 1948년에 발간된 제3시집 『유년송(幼年頌)』은 중기의 작품집에 해당되는 것으로서, 각박한 현실 체험에 따른 지적 고뇌와 표박의식(漂泊意識)이 드러나 있다.
그 뒤의 『밤의 서정』(1956) · 『저녁종소리』(1957) · 『장만영선시집』(1964) · 『등불따라 놀따라』(1970) · 『저녁놀 스러지듯이』(1973) 들은 후기의 작품 경향을 보이는 작품집들로서 자연 및 현실에 대한 관조 · 융화의 자세를 보여주고 있다. 1983년 장지인 경기도 용인 공원묘지에 시비가 세워졌다.
위에 언급된 8권의 시집 외에 자작시 해설집 『이정표』(1958), 수필집 『그리운 날에』(1965), 번역시집 『남구(南歐)의 시집』(1956) · 『바이론시집』(1961) · 『하이네시집』(1961) 등이 있고, 기타 저서로 『고등문예독본』(1952) · 『현대시의 이해와 감상』(1957) · 『소월시 감상』(1957) · 『현대시감상』(1959)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