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읍 김명관 고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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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읍 김명관 고택 전경
정읍 김명관 고택 전경
주생활
유적
문화재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산외면에 있는 조선후기 행랑채 · 사랑채 · 안행랑채 · 안채 · 별당 등으로 구성된 주택.
내용 요약

정읍 김명관 고택은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에 있는 조선 후기 행랑채·사랑채·안행랑채·안채·별당 등으로 구성된 주택이다. 1971년 국가민속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이 집은 1790년대의 건축으로 집터의 꾸밈은 풍수지리설에 따랐다. 김명관이 17세 때 짓기 시작하여 10년 만에 완성하였다고 한다.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행랑마당이 있고 ㄷ자형 바깥 행랑채가 있다. 사랑채는 서남쪽에 대청이, 동남쪽에 2칸의 사랑방과 ㄱ자로 꺾여 1칸의 침방이 있다. 안채의 서쪽에는 따로 별당이 건축되어 있다. 서당채는 안채 뒤 북쪽으로 따로 담장을 쌓아 건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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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산외면에 있는 조선후기 행랑채 · 사랑채 · 안행랑채 · 안채 · 별당 등으로 구성된 주택.
내용

1971년 국가민속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이 마을은 앞에는 동진강(東津江)의 상류가 서남으로 흐르고 있다.

뒤편에는 해발 약 150m의 청하산이 둘러 있어 풍수지리에서 말하는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지형을 이루고 있다. 특히 청하산은 그 모양이 지네를 닮았다고 하여 지네산이라고도 부른다. 이 가옥이 들어선 들 건너편에는 풍수지리에서 말하는 안산(案山)으로 독계봉(獨鷄峰)과 화견산(火見山)이 있다고 한다.

따라서 집 둘레에 나무를 많이 심어 화견산과 독계봉을 가리고 숲을 이루어 지네가 습지에서 잘 살 수 있도록 하였다. 또 지네가 지렁이를 잘 먹는다고 하여 집 앞에 폭이 좁고 길이가 긴 지렁이 모양의 연못을 팠다고 한다.

이러한 집터의 꾸밈은 모두 풍수지리설에 따른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집은 현 소유주의 7대조인 김명관(金命寬)이 17세 때 짓기 시작하여 10년만에 완성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 집 옆에 있는 집은 김명관의 둘째아들이 본집 완공 30년 후에 착공하여 10년만에 지었다고 하는데, 상량문에 1834년인 ‘숭정 4 갑오(崇禎四甲午)’로 되어 있어 앞뒤가 맞지 않는다. 따라서 1790년대의 건축으로 보는 것이 가장 타당하다고 여겨진다.

건물들의 평면 배치를 살펴보면 행랑채 · 주1 · 안행랑채 · 안채 · 별당으로 이루어져 있다.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행랑마당이 되고 이 행랑마당에는 ㄷ자형으로 바깥행랑채가 건축되어 있다. 즉, 대문의 서남쪽으로 주3 · 대청, 그리고 ㄱ자로 꺾여 2칸의 방과 주2이 있다.

이 바깥행랑채는 머슴들이 기거하거나 등짐장수들이 묵는 곳이었다. 이 바깥행랑에서 동남쪽으로 난 일각문을 들어서면 넓은 사랑마당이 나온다. 이 마당 북쪽에는 사랑채가 있고, 남쪽에는 대문과 연결된 문간채가 줄지어 있다. 문간채에는 3칸의 곳간, 2칸의 마판, 2칸의 곳간, 1칸의 함실부엌이 있고 부엌에서 ㄱ자로 꺾여 2칸의 방이 있다.

사랑채는 정면 5칸, 측면 3칸 크기로 서남쪽에는 대청이 있고 동남쪽에 2칸의 사랑방과 ㄱ자로 꺾여 1칸의 침방이 있다. 사랑방과 침방에 불을 때는 함실부엌 앞에는 조그만 방이 있는데 이곳에는 10세 정도 된 아이가 늘 있어 노인의 심부름을 하였다고 한다.

사랑채의 구조는 주4으로 마무리 한 낮은 기단 위에 막돌초석을 놓고 네모기둥을 세웠다. 도리는 납도리이고 소로받침이 없으며 가구(架構)는 오량(五樑) 구조이다. 사랑대청의 바닥은 우물마루이고 천장은 연등천장이다. 대청의 사면에는 들어열개로 된 띠살분합을 달았고 사랑방 사이에는 정자살팔각불발기의 들어열개 창호를 달았다. 처마는 홑처마이며 팔작지붕을 이루고 있다.

이 사랑채의 서쪽으로 돌아가면 ㄷ자형의 안행랑채가 나온다. 안행랑채는 중앙에 안대문이 있고 이의 서쪽에 행랑방 · 안변소, 그리고 ㄱ자로 꺾여 3칸의 곳간이 있다. 안대문의 동쪽에는 맷돌 등 곡식을 가는 도구를 둔 매간이 있다. 그 옆으로 2칸의 곳간, 그리고 ㄱ자로 꺾여 3칸의 곳간과 1칸의 책방이 있다. 책방은 어린아이들의 공부방이며, 현 소유주의 5대 전까지는 노인이 세상을 떠나면 이 방에 주5을 하여 3년간 관을 두었다고 한다. 안행랑채 전면에 있는 안채는 ㄷ자형의 평면으로 좌우대칭을 이룬 것이 특징이다.

서쪽 전면에 부엌이 있고 그 위쪽에 안방이 있다. 안방의 맞은편에는 건넌방이 있고 그 아래에 부엌이 있다. 안방에는 노부인이 기거하고 건넌방은 며느리방이다. 손부를 보면 며느리가 손부에게 건넌방을 물리고 안방에서 노부인과 같이 생활하였다고 한다.

안채의 구조는 막돌로 마무리한 낮은 기단 위에 막돌초석을 놓고 네모기둥을 세웠으며 납도리에 소로받침은 없다. 처마는 홑처마이고 지붕은 ㄷ자형의 양측 돌출부 전면에는 합각을 형성하여 팔작지붕 모양을 하고, 다른 쪽은 우진각지붕을 하고 있다. 가구는 5량이며 대청의 바닥은 우물마루이고 천장은 연등천장이다. 대청 전면과 후면에는 띠살로 된 들어열개창호를 달았다.

안채의 서쪽에는 따로 별당이 건축되어 있는데 본래는 집을 지을 때 일꾼들이 기거하던 곳이다. 그러나 뒤에 안에 찾아온 안손님이나 딸들의 거처로 삼게 되었다. 이 건물의 평면은 정면 6칸, 측면 3칸으로 서쪽으로부터 부엌 · 큰방 · 대청 · 윗방 · 골방이 늘어서 있다.

서당채는 안채 뒤 북쪽으로 따로 담장을 쌓아 그 속에 정면 1칸, 측면 1칸 반의 크기로 건축하였다. 구조는 장대석 마무리의 낮은 기단 위에 네모 뿔대의 다듬은 초석을 놓고 두리기둥을 세웠다. 처마는 홑처마이고 맞배지붕이다. 이 가옥의 담장 밖에는 외거노비의 집들이 여러 채 건축되어 있다.

참고문헌

『문화재대관』중요민속자료편 상(문화재관리국, 1985)
주석
주1

사랑으로 쓰는 집채. 우리말샘

주2

함실아궁이로 음식을 끓여 먹게 만든 부엌. 우리말샘

주3

문간 옆에 있는 방. 우리말샘

주4

섬돌 층계나 축대를 쌓는 데 쓰는, 길게 다듬어 만든 돌. 우리말샘

주5

사정상 장사를 속히 치르지 못하고 송장을 방 안에 둘 수 없을 때에, 한데나 의지간에 관을 놓고 이엉 따위로 그 위를 이어 눈비를 가릴 수 있도록 덮어 두는 일. 또는 그렇게 덮어 둔 것. 우리말샘

집필자
주남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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