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연화대합설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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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일종의 궁중무용.
국가지정문화재
지정기관
문화재청
종목
국가무형문화재(1971년 01월 08일 지정)
소재지
서울특별시
내용 요약

학연화대합설무는 학무와 연화대가 합쳐진 일종의 궁중무용이다. 학무는 청학이나 백학, 청학이나 황학 또는 백학 한 쌍이 마주하여 춤을 추는 것이다. 1935년 한성준의 창작 학무로 춤의 명맥이 이어져 내려왔다. 연화대는 고려 시대의 당악정재인데 나라의 어진 정치를 칭송하는 내용이다. 이 학연화대는 동물의 탈을 쓰고 추는 춤으로 고귀하고 아름다우며 청아하다. 학의 동작을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있어 예술성도 높다. 무원은 청학 1인, 황학 1인, 동녀 2인, 협무 2인, 죽간자 2인, 악사기 2인이다. 반주음악은 궁중음악을 사용한다.

목차
정의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일종의 궁중무용.
내용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일종의 궁중무용. 학무(鶴舞)연화대(蓮花臺)가 하나의 작품으로 구성되어 궁중무용에서 대작(大作)에 속하는 작품.

학연화대 합설무에 대해서 학무인 경우, 조선 초기 『악학궤범(樂學軌範)』에는 청학(靑鶴)과 백학(白鶴), 조선 말기 『정재홀기(呈才笏記)』에서는 청학과 황학(黃鶴), 고종 9년(1872) 정현석(鄭顯奭)의 『교방가요(敎坊歌謠)』에서는 백학 한 쌍이 서로 대무(對舞)하면서 춤을 추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춤은 고종 이후 단절되었다가 1935년 부민관에서 발표된 한성준(韓成俊)의 창작 학무로 명맥이 이어져 내려 오고 있다.

연화대는 고려시대의 당악정재(唐樂呈才)로서 중국에서는 석지무(柘枝舞)라 한다. 이 춤은 나라의 어진 정치를 칭송하는 내용을 주제로 삼고 있다.

『악학궤범』에 따라 학연화대 처용무합설로서 향악정재(鄕樂呈才)에 편입되어 있는데, 1971년 처용무가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면서 학무도 개별로 지정되었다. 당시 학무의 예능보유자인 한영숙(韓英淑)에서 이흥구(李興九)로 이어지다가 1995년 학연화대무로 개명(改名)하여 지정되었다.

춤의 내용 및 춤사위는 무대 뒷편에 지당판(池塘板)을 설치해 놓고 청학 · 황학이 나는 듯이 지당판 앞에 나아가 동서(東西)로 나누어 서서, 내고(內顧) 외고(外顧)하며 춤을 추다가 구부려서 쪼고, 머리를 들어 부리를 마주 친다.

또 회선(回旋:빙빙 도는 동작) 내선(內旋)하며 춤을 추다가 지당판으로 올라가 연동(連筒)을 쪼으면 연동이 벌어지면서 양동녀가 나오고 두 학은 놀라서 뛰어 나간다. 양동녀가 연동으로 나와 지당판을 내려올 때, 협무(挾舞) 2인과 주1 2인이 나와 동서로 나누어 서면, 주2하고 죽간자가 구호(口號)를 창한다. 죽간자가 좌우로 나가 나누어 서면 양동녀와 협무 2인은 앞으로 조금 나와 염수하고 미신사(微臣詞)를 창한 다음, 상대(相對), 상배(相背), 회선(回旋)하며 춘다.

학무의 특징은 동물의 탈을 쓰고 추는 대표적인 춤으로, 고귀하고 아름다우며 청아하고 매우 운치 있는 연무(軟舞)이다. 날짐승인 두루미의 동작을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있어서 독자성(獨自性) · 예술성(藝術性)이 있다. 무원(舞員)은 청학(靑鶴) 1인, 황학(黃鶴) 1인, 동녀(童女) 2인, 협무(挾舞) 2인, 죽간자(竹竿子) 2인, 악사기(樂師伎) 2인으로 되어 있다.

반주음악은 학무에서는 「세령산」 · 「삼현도드리」 · 「타령」을 사용하고, 연화대무에서는 「보허자(步虛子)」 · 「삼현도드리」 · 「자진도드리타령」 · 「자진타령」 · 「타령」을 사용하는데 이 모두 궁중음악만을 사용한다. 악기는 모두 삼현육각으로 편성한다.

의상 및 도구는 청학 1, 황학 1, 학발 4, 학바지 4벌과 연화대무의 주3 2, 유소(流蘇) 2, 단의(丹衣) 4벌, 상(裳), 치마저고리 4벌, 대(帶) 4와 도구로는 죽간자 2, 지당판 1이 있다.

지당판(池塘板)에는 칠보등용 1, 대형 화병과 꽃 6, 연동 2, 소형 연꽃, 연잎 10개로 진열한다. 1971년 국가무형문화재인 학무가 1993년에 학연화대 합설무로 명칭 변경되었다.

학연화대합설무의 기능보유자로 지정된 이흥구(李興九)는 조선시대 말 주4김보남(金寶男), 김천흥(金千興), 한성준, 한영숙에게서 이어받아 국립국악원에서 전승되고 있으며, 전승자 손경순(孫敬順)으로 이어지고 있다.

주석
주1

정재(呈才) 때 사용하는 무구(舞具)의 하나. 붉은 나무 자루 위에 가는 대 100개를 꽂고 붉은 실로 엮어 수정 구슬을 달아서 장식하였다. 우리말샘

주2

풍악을 그침. 우리말샘

주3

예전에, 연화대를 출 때에 여자아이가 쓰던 관. 연꽃 모양으로 금을 박은 두 줄의 끈이 있다. 우리말샘

주4

조선 시대의 장악원이 일제 강점기에서 격하되어 만들어진 기관. 1915년에 이 명칭으로 바뀌어 1946년까지 사용되었다. 해방 후 국립국악원으로 계승되었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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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최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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