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한자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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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의 한자음이 한국어의 음운체계에 합치하도록 변형한 한자음.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한국 한자음은 본래의 한자음을 한국어의 음운체계에 맞도록 변형한 한자음이다. 한자의 토착화음이라고 할 수 있는데 중국음·일본음 등과 구별할 때 사용한다. 한국한자음은 중국음 자체의 시대적, 방언적 차이와과 국어의 음운체계의 변화로 생성된다. 우리나라 자체에서 만들어 쓴 신조자(新造字)도 한국한자음의 생성 요인이 된다. 고구려·백제·신라의 초기 한자음은 한음(漢音)으로 해석되는 예가 보인다. 신라 시대에 들여온 중국의 한자음은 국어의 음운체계에 적응할 수 있도록 변형해서 채택하였다. 근세와 현대에는 중국의 한자음이 국어의 음운체계에 동화되어 국어음운으로서의 기능을 수행하게 되었다.

목차
정의
본래의 한자음이 한국어의 음운체계에 합치하도록 변형한 한자음.
내용

한자의 토착화음이라고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우리 나라에서 통용되는 한자음으로 특별히 중국음 · 일본음 등과 구별할 필요가 있을 때만 한국한자음(Sino-Korean)이라 한다.

한국한자음이라 하더라도 시대에 따라 차이가 있고, 같은 시대의 한자음 가운데도 낡은 것과 새로운 것이 섞여 있는 일이 있다. 그 하나는 중국음 자체의 시대적 차이와 방언적 차이에 말미암은 것이며(외적 요인), 다른 하나는 그것을 받아들인 국어의 음운체계의 변화에 말미암은 것이다(내적 요인).

한편으로 우리나라 자체에서 만들어 쓴 ‘串(곶) · 畓(답) · 䢏(두) · 垈(대) · 洑(보) · 䢘(수)……’ 등과 같은 것이 있다. 이것은 한자의 성부(聲符)와 형부(形符)를 적당히 배합해서 만든 신조자(新造字)인 한국한자이다. 이와 같이 한국한자음에는 세 가지 복잡한 요인이 혼재하고 있다.

한자는 본래 회화문자(繪畫文字)에서 발달한 표어문자(表語文字)이다. 중국어는 고립어(孤立語)로서 한 어(語)는 한 음절로 이루어져 있어, 그것을 한 자(字)로써 표시하는 데 적합하도록 되어 있다.

한자는 그 구성면에서 보면 상형(象形) · 지사(指事) · 회의(會意) · 형성(形聲)의 네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이 가운데 상형과 지사는 처음 그림에서 발달한 가장 기본적인 것이라 할 수 있는 바, 전체 한자의 비중에서 볼 때 그 수는 그렇게 많은 것이 아니다.

한자에서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것은 형성자이며, 그 다음이 회의자이다. 회의자와 형성자는 이미 만들어진 상형자나 지사자를 둘 이상 포개어 만든 복합자이다. 특히 앞에서 언급한 한국한자는 이 원리를 응용한 것이다.

특히 형성자는 ‘江 · 客’과 같이 성부(江→工, 客→各)와 형부(江→氵, 客→宀)의 두 조각으로 분석된다. 성부는 글자의 음을 나타내고, 형부는 글자의 뜻를 나타내는데, 이 형부는 중국 상고음(上古音)을 재구하는 데 중요한 길잡이가 된다.

예를 들면 ‘各’을 성부로 하는 ‘客’ k’○k, 과 ‘洛’ l○k은 서로 다른 경향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各’이 상고음에서는 Kl○k와 같은 어두 복합자음이었음을 암시해 주는 것이다. 한자음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자가 지닌 이러한 구조적 특징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한자음은 초기에는 성(聲)과 운(韻)의 둘로 분석하였으나, 그 뒤에 이것은 다시 성모(聲母) · 개모(介母) · 핵모(核母) · 운미(韻尾)의 넷으로 분석하기에 이르렀고, 여기에 초분절음소(超分節音素)에 해당하는 사성(四聲)을 첨가하였다.

성모의 종류와 수는 시대와 방언에 따라 차이가 있으나, 일반적으로 한자음을 논의하는 데는 송대(宋代) 등운가(等韻家)들이 관습처럼 사용한 삼십육자모도(三十六字母圖)를 이용하는 것이 통례이다 〈표 1〉.

區分 牙音 舌頭音 舌上音 脣重音 脣輕音 齒頭音 正齒音 喉音 半舌音 半齒音
全淸
次淸 穿
全濁
不淸不濁
全淸
半濁半淸
〈표 1〉 36자모

이 자모도는 중국 중고음(中古音)을 기준으로 작성된 것인데, 각 칸의 자모(字母)는 성모를 나타내고, 7음과 청탁(淸濁)은 성모의 변별적 자질을 나타내는 것이다. 어떤 특정의 한자음의 성모를 기술할 때는 이 자모도를 기준으로 그 차이를 규명하는데 이용될 수 있다. 개모는 성모와 핵모 사이에 발달한 매개모음으로 송대의 등운가들은 〈표 2〉와 같이 분류하였다.

등운 1등운 2등운 3등운 4등운
개합
개구음 ∅(zero) r j i
합구음 w rw jw iw
〈표 2〉 개모의 분류

이 표에서 등운(等韻)은 설위(舌位)를, 개합(開合)은 입술의 모양을 나타낸다. 이 개모는 한국한자의 형성에 관여하게 된다. 핵모는 음절의 중심모음으로서, 시대와 방언에 따라 차이가 있으나, 중고음에서는 ―e―, ―○―, ―a―, ―ə―, ―Ɔ―, ―o―, ―u―의 7개의 기준음을 생각할 수 있고, 개모와의 결합에서 많은 변종(變種)을 형성하기도 한다.

운미(韻尾)는 상고음을 기준으로 할 때 다음과 같은 3서(序) 3계(系)를 생각할 수 있다 〈표 3〉. 중고음에서는 음성계의 ―g, ―d, ―b가 ―ø, ―i, ―u와 같은 모음으로 변화한다. 사성은 중고음에서는 평성(平聲) · 상성(上聲) · 거성(去聲) · 입성(入聲)의 넷으로 구별되었다.

분류 음성 양성 입성
유 형 -f, -d, -b -ŋ, -n, -m -k, -t, -p
〈표 3〉 상고음의 운미

중국어 음운의 시대적 차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시대를 몇 개의 단계로 구분할 필요가 있는데, 그 음운적 특징에 따라 다음과 같이 구분할 수 있다 〈표 4〉. 이 시대구분은 학자에 따라 다소의 차이가 있으나, 이것은 동동화(董同龢)의 것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특히, 상고음은 전기(주 · 진) · 중기(한) · 후기(육조)로 나누기도 하는데, 한국고대한자음을 이해하는 데는 이 구분법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시대구분 대상 자료
上古音 先秦語音 시경·혜성자
中古音 隋·唐 절운계음
近古音 宋·元初 고금운회거요음
近代音 중원음운
現代音 明·淸 관화음
〈표 4〉 중국어 음운의 시대구분

한국한자음은 수용한 기층음(基層音)의 차이와 한국어의 음운변화에 따른 변화 등으로 말미암아 시대적 차이를 확인할 수 있다. 그러므로 한국한자음은 ① 고대(한자의 수입에서 신라의 삼국통일까지), ② 중세(신라의 삼국통일에서 조선조 중기까지), ③ 근세(조선조 중기에서 조선조 말기까지), ④ 현대의 네 시기로 구분해서 설명하는 것이 편리하다.

(1) 고대

우리 나라에 한자가 수입된 시기는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중국과의 정치적 · 문화적 접촉이나 현존하는 고구려측 자료로 미루어볼 때, 적어도 서기전 2세기까지는 소급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현존하는 자료로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삼국시대의 고유명사의 표기이다. 고구려 · 백제 · 신라의 초기 한자음은 각각 약간의 차이가 있으나, 그 중에서도 고구려한자음은 한음(漢音)으로 해석되는 예가 적지 않다.

첫째, ‘日’모의 한음은 n'―로 재구되나, 이것이 고구려음에서는 n―와 대응한다. ‘日’모는 n'―>n'z'―>z―와 같이 변천한 것으로 보고 있는데, 이것이 n―와 대응한다는 것은 적어도 n'―나 그 이전의 단계까지 소급된다는 것을 뜻한다.

둘째, ‘喩于’모에 속하는 일부 자류는 b―와 대응하는 일이 있다. ‘喩于’모는 일찍이 b―>w―> · ―와 같이 발달한 것으로 생각되는데, 고구려음이 이것과 대응한다는 것은 가장 이른 시기의 흔적을 남긴 것이라 하겠다.

셋째, 고구려 지명에 의하면 ‘믈(水)’은 ‘買 · 彌 · 米 · 勿 · 滅’ 등으로 표기되는데, 이것이 등가음이 되기 위해서는 운부의 모음이 한대(漢代) 이전으로 소급하지 않으면 안 된다.

넷째, 상고의 운미 ―d · ―g가 고구려음에서는 ―r로 해석된다. 특히, ―d의 ―r와의 대응은 쉽게 이해할 수 있으나 ―g는 그렇지 않다. ―g는 경우에 따라 ―gi와 ―gw의 둘로 분류할 수 있다. 이 중에서 ―gi는 ―gi>―i>―i와 같이 발달한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이것이 ―r와 대응한 것은 ―i의 단계로 생각된다.

이러한 사정은 한반도의 북방부에서는 이미 그 이전부터 한자가 널리 쓰여지고 있었음을 뜻하는 것이다. 백제도 초기의 한자음은 이와 비슷한 경향을 가지고 있으나, 백제 중기부터는 위(魏) · 진(晉)의 음으로 대체된 것으로 보인다. 신라의 초기 한자음의 경향도 백제와 병행한다.

(2) 중세

신라가 삼국을 통일할 무렵에는 당나라와의 접촉이 잦아진다. 경덕왕의 개신지명(改新地名)이 보여주는 한자음의 체계는 중고의 절운계음(切韻系音)과 일치한다.

이것은 신라가 지금까지 사용해 온 한자음 대신에 새로이 절운계음을 받아들인 것이다. 그러나 절운계음과 국어의 음운체계와의 사이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기 때문에, 국어의 음운체계에 적응할 수 있도록 변형해서 채택하게 된다.

예컨대 성모에 있어서 설두음과 설상음을 설음으로, 순중음과 순경음은 순음으로, 치두음과 정치음은 치음으로 각각 처리된다. 또, 청탁의 대립에는 그 당시 무기음과 유기음의 대립이 있었기 때문에 거의 무기음으로 처리되나, 부분적으로 차청음이나 전탁음이 유기음에 적응하는 일이 있었다. 운부의 모음에 있어서도 개모의 성질에 따라 핵모를 일부 바꾸어 쓰는 일이 있었다. 이렇게 성립된 한자음이 현재 우리가 쓰고 있는 한자음의 기반이 되었다.

한편, 14세기에 들어와 한자음의 통일정리를 시도하기 위하여 동국정운식 한자음을 제정하게 되나, 이것은 다분히 언어실제와 유리된 점이 있어서 결국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동국정운식 한자음에서는 전청 · 차청 · 전탁 · 불청불탁과 같은 대립을 시도하였으나, 그것이 그대로 시행되지는 못하였다. 그 뒤에 나타난 경서언해 등은 종래의 관습을 답습하는 방향으로 바뀌게 되었다.

(3) 근세와 현대

이 시기의 한자음은 절운계음이 완전히 국어의 음운체계에 동화되어 국어음운으로서의 기능을 수행하게 된다. 그러나 중국과의 부단한 접촉으로 말미암아 부분적으로 근대 북방음의 영향을 받은 새로운 한자음의 도입이 있었으나, 그것은 지극히 미미하였다. 이 시기에 들어오면 국어의 자음은 평음: 격음:농음(또는 경음)의 삼지적(三肢的) 상관대립을 보이나, 한자음은 아직도 농음의 발달이 보편화하지 못하였다.

지석영(池錫永)『자전석요(字典釋要)』에 이르러 처음으로 ‘雙(쌍) · 喫 (끽)’과 같은 농음이 등장하는데 이것은 한국한자음이 국어의 음운체계에 병행하되, 보다 보수적임을 뜻하는 것이다.

참고문헌

『동국정운식한자음연구(東國正韻式漢字音硏究)』(남광우, 한국연구원, 1966)
『동국정운연구(東國正韻硏究)』(유창균, 형설출판사, 1969)
『동국정운연구(東國正韻硏究)』(이동림, 동국대학교국어국문학연구실, 1970)
『고대국어의 연구-음운편-』(박병채, 고려대학교출판부, 1971)
『백제어연구』(도수희, 아세아문화사, 1977)
『한국고대한자음의 연구 Ⅰ·Ⅱ』(유창균, 계명대학교출판부, 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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