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익신 옥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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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도·전라도 일원에 발생했던 안익신의 변란과 관련된 옥사.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김우철
  • 최종수정 2025년 11월 05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후기 충청도·전라도 일원에 발생했던 안익신의 변란과 관련된 옥사.

개설

1646년(인조 24) 공청도(公淸道, 현재 충청도) 이산(尼山) 등지에서 변란이 발생했다. 안익신(安益信)이 주도하고 권대용(權大用), 유탁(柳濯), 이지혐(李之馦), 홍영진(洪榮振) 등 서울과 지방의 하층 양반들이 결탁하여 거사를 일으켰다. 이석룡(李碩龍)과 김충립(金忠立)의 고변으로 발각되어 실패했는데, 이를 계기로 추국청(推鞫廳)이 설치되었다.

역사적 배경

반정(反正)으로 즉위한 인조대(仁祖代)에는 1624년(인조 2) 이괄(李适)의 난과 1644년(인조 22) 심기원(沈器遠)의 모반 등, 인조의 정통성을 문제 삼는 각종 사건이 잇달았다. 안익신의 모반이 일어난 1646년을 전후하여 화적(火賊)으로 불리는 민중들의 저항도 일상화되고 있었다.

경과

1646년(인조 24) 3월 26일, 이석룡과 김충립이 각각 당시 이산 현감 유동수(柳東秀)에게 이산현의 생원 유탁이 반역을 모의한다고 고변하였다. 임경업(林慶業)을 대장으로 한 역적들이 군사를 모아 상경할 예정이라는 내용이었다. 3월 27일, 유탁은 군사를 일으켜 길을 떠나다 매복했던 이산 현감에게 체포되었다. 나머지 군사들은 뿔뿔이 흩어졌지만, 주모자인 안익신과 유탁은 달아났다가 4월 3일 보은(報恩)에서 체포되었으며, 잔당인 윤성립(尹成立)은 1647년(인조 25) 8월 28일 마지막으로 체포되었다.

결과

1646년 4월 3일, 고변인인 이석룡과 김충립을 포함하여, 체포된 관련자들에 대한 추국(推鞫)이 시작되었다. 안익신은 서울 출신의 면천(免賤)으로 일정한 주거가 없이 전국을 유랑하던 존재였다. 서울의 진사(進士)인 권대용, 이산의 유학(幼學)인 유탁, 연산(連山)의 교생(校生)인 이지혐, 이산의 교생인 홍영진 등이 유탁과 함께 변란을 주모하였다.

이 밖의 가담자들은 주모자들 및 다른 가담자들과 혈연 및 지연으로 연결된 사이였는데, 이산 · 연산 및 공주(公州) · 부여(扶餘) 등 충청도와 용담(龍潭) · 전주(全州) · 함열(咸悅) 등지의 출신이었다. 거병 과정에 속오군(束伍軍)이 조직적으로 동원되었다. 추국청에서 추국을 받고 안익신 등 46명은 처형되었고, 추국 과정에서 12명이 물고(物故) 되었다. 그밖에 공청도 · 전라도 감영에서 각각 22명, 11명이 처형되었다.

의의와 평가

안익신의 모반은 인조대 내내 이어진 모반의 흐름을 계승하는 연장선상에서 발생한 측면과 함께 민중의 저항이라는 새로운 흐름이 결합하여 발생하였다. 그 과정에서 민중들의 신망이 높은 임경업이 거명되었고, 최영(崔瑩)의 후예나 정씨(鄭氏) 진인(眞人)이 거론되기도 하였다. 이는 후에 『정감록(鄭鑑錄)』이 출현하는 배경이 되었다.

참고문헌

  • - 『인조실록(仁祖實錄)』

  •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 『추안급국안(推案及鞫案)』

  • - 『조선후기 정치·사회 변동과 추국』(김우철, 경인문화사, 2013)

  • - 「인조 24년(1646) 안익신 모반 사건과 그 의미」(김우철, 『한국사학보』33, 고려사학회, 2008)

  • - 「조선 인조대 정국의 동향과 산림의 역할」(우인수, 『대구사학』41, 대구사학회,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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