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어쓰기

언어·문자
개념
한글 자모를 서양의 알파벳처럼 낱글자로 나란히 배열하는 표기 방식.
내용 요약

풀어쓰기는 한글 자모를 알파벳처럼 낱글자로 나란히 배열하는 표기 방식이다. 풀어쓰기 방식은 ‘ㄱㅗㅁ’과 같이 낱글자를 나란히 쓰는 것이다. 풀어쓰기는 활판 인쇄나 타자기가 일반적으로 사용되던 시기에는 현실적인 방법이었다. 한글의 풀어쓰기는 개화기 무렵 서양 문자 표기의 영향을 받으면서 제기되었다. 풀어쓰기는 1908년 12월 국문연구소에서 작성한 『국문연구안』에서 처음 언급되었다. 그러나 한글은 전통적으로 모아쓰기 방식을 채택해 왔다. 그 이후로 여러 학자들이 풀어쓰기 방안을 연구하였지만 채택되지는 못하였다.

정의
한글 자모를 서양의 알파벳처럼 낱글자로 나란히 배열하는 표기 방식.
개설

풀어쓰기는 한글 자모를 ‘곰’과 같이 음절 단위로 모아 쓰지 않고 ‘ㄱㅗㅁ’과 같이 낱글자를 나란히 배열하는 표기 방식이다. 한글은 전통적으로 음절 단위로 모아 쓰는 방식을 채택해 왔으나, 개화기 무렵 서양의 문자 표기를 접하면서 한글을 서양의 알파벳처럼 낱글자를 나란히 배열하는 방식으로 표기하자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연원 및 변천

풀어쓰기에 대한 언급은 1908년 12월 국문연구소에서 작성한 『국문연구안(國文硏究案)』에서 처음 이루어졌다. 이 책에는 철자법과 관련하여 당시에 풀어쓰기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는 사실이 언급되어 있다. 그러나 1909년에 국문연구소에서 최종 제출한 『국문연구의정안(國文硏究議定案)』에서는 철자법은 각 위원들 사이에 이견 없이 『훈민정음』 예의(例義)를 따른다고 하여 전통적인 모아쓰기 방식을 채택하였다.

이후 여러 학자들에 의해 풀어쓰기 방안이 꾸준히 연구되었으며, 특히 최현배는 1946년 ‘한글 가로글씨 연구회’를 창립하고 1947년에는 『글자의 혁명』을 출판하여 풀어쓰기 방안을 구체화하였다. 1948년에는 문교부가 『한자 안쓰기의 이론』을 통해 한글을 가로로 풀어 쓰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밝히면서도 풀어쓰기를 바로 시행하기는 어렵다며 풀어쓰기를 배제한 채 가로쓰기만을 채택하였다.

1954년 한글 파동 때에는 국어심의회 한글분과위원회에서 한글간소화 방안으로 한글의 가로 풀어쓰기를 제안했다가 같은 해 7월 3일 다시 모아쓰기의 간소화 방안을 발표하였다. 1971년 10월에는 한글학회 회원들 중 가로 풀어쓰기를 주장하는 이들을 중심으로 ‘한글 풀어쓰기 연구회’가 창립되었으며, 1982년 10월에는 국어학, 그래픽, 한글 기계화 분야의 전문가 14명이 모여 ‘한글 풀어쓰기 모임’을 발족하였다.

내용

풀어쓰기 방안의 특징은 대체로 다음과 같다.

첫째, 영어의 알파벳처럼 낱글자를 나란히 배열한다.

둘째, 대문자와 소문자, 인쇄체와 필기체의 구별이 있다. 초기의 방안에는 이러한 구별이 없었으나 연구가 심화되면서 영어와 같이 대문자와 소문자, 인쇄체와 필기체를 구별하는 방안들이 제시되었다.

셋째, 풀어쓰기를 위한 독자적인 글꼴이 개발되었다. 초기의 글꼴은 한글 낱글자의 글꼴과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갈수록 영어 알파벳과 비슷한 모양의 글꼴 형태를 띠게 되었으며, 학자에 따라 다양한 글꼴이 만들어졌다.

넷째, 풀어쓰기에서는 초성의 ‘ㅇ’을 적지 않는다. 모아쓰기를 할 때는 ‘이름’과 같이 초성에 음가가 없는 ‘ㅇ’을 표기하지만, 풀어쓰기를 할 때는 ‘ㅣㄹㅡㅁ’과 같이 음가가 없는 ‘ㅇ’을 적지 않는다.

다섯째, 일부 모음을 위한 표기가 별도로 고안되었다. 초성의 ‘ㅇ’을 표기하지 않음에 따라 ‘고아’와 ‘과’가 모두 ‘ㄱㅗㅏ’로 동일하게 표기되고 ‘나이’와 ‘내’가 모두 ‘ㄴㅏㅣ’로 동일하게 표기되는 문제가 발생하는데, 이를 해결하기 위해 ‘ㅣ’와 ‘ㅗ’, ‘ㅜ’ 등의 모양을 음가에 따라 조금 다르게 변형하는 방법을 적용하게 되었다.

의의와 평가

일반적으로 풀어쓰기의 장점으로 인쇄하기에 편하다는 점을 든다. 활판 인쇄를 하던 당시에는 모아쓰기를 하기 위해서 음절 수만큼이나 많은 활자가 필요했지만, 풀어쓰기를 하게 되면 20여 종의 활자만으로 인쇄가 가능하다. 타자기로 한글을 입력할 때도 풀어쓰기를 할 때는 낱글자의 글쇠를 단순히 이어서 치면 되지만, 모아쓰기를 할 때는 받침을 입력하기가 쉽지 않았다. 이러한 불편함은 공병우에 의해 한글 세벌식 타자기가 발명되고 인쇄 방식이 디지털 방식으로 넘어가면서 지금은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지만, 당시로서는 매우 현실적인 문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한글을 모아쓰기 방식으로 표기하고 있는 것은 모아쓰기의 전통이 훈민정음 창제 이래 500여 년 넘게 이어져 왔을 뿐만 아니라 모아쓰기 방식이 음절 단위에 민감한 우리말의 특징을 잘 반영하기 때문이다. 서양에서는 약어를 만들 때 ‘VIP(Very Important Person)’처럼 낱글자를 단위로 사용하지만 우리말에서는 ‘여고생(여자 고등학생)’과 같이 음절을 단위로 사용하는 점을 예로 들 수 있다.

참고문헌

『국어정책론』(김민수, 재판, 탑출판사, 1984)
『미 군정기의 한글운동사』(이응호, 성청사, 1974)
『한글학회 50년사』(한글학회 50년 기념사업회, 한글학회, 1971)
『글자의 혁명: 한자 안쓰기와 한글 가로씨기』(최현배, 정음사, 1956)
『글자의 혁명: 한자 안쓰기와 한글 가로씨기』(최현배, 조선교학도서주식회사, 1947)
『국문연구의정안(國文硏究議定案)』(국문연구소, 1909)
『국문연구안(國文硏究案)』(국문연구소, 1908)
「한글의 풀어쓰기와 모아쓰기에 대하여─최현배 선생의 『글자의 혁명』을 중심으로」(이동석, 『청람어문교육』 38, 2008)
「한글 풀어쓰기 연구: 20여년 만에 기지개」(『경향신문』 1982. 12. 8)
집필자
이동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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