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각활자(連刻活字)는 ‘두 개의 글자를 연속으로 새겨서 하나의 활자처럼 만든다’고 하여 ‘연속활자(連續活字)’ 또는 ‘연자활자(連字活字)’라고도 한다. 활자의 재료에 따라 목활자(木活字)로 만든 것은 ‘연조활자(連雕活字)’라 하기도 하고, 금속활자(金屬活字)로 만든 것은 ‘연주활자(連鑄活字)’라 하여, 목활자와 금속활자를 구분하기도 한다.
조선 초기의 활자 제작은 목활자나 금속활자를 막론하고, 한 개의 활자에 하나의 글자만을 새기는 것이 원칙이었다. 그런데 임진왜란 이후 조선 후기에 들어, 관상감(觀象監)에서 금속활자로 역서(曆書)를 인쇄할 때, ‘移徙(이사), 沐浴(목욕)’ 등과 같이 관용적으로 두 자 이상의 글자를 합쳐서 하나의 관용어로 사용되는 조합성 글자들은 아예 처음부터 두 자 이상의 글자를 합쳐서 한 개의 활자로 주조(鑄造)하는 경향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현상은 교서관(校書館, 芸閣)에서 일본어 학습을 위한 교재인 『첩해신어(捷解新語)』를 간행할 때 생기기 시작했다. 이때 일본어에서 두 자 이상의 글자를 합쳐야 하나의 의미가 성립된다는 연자식(連字式)의 단어 등은 아예 처음부터 두 자 이상의 글자를 합쳐서 한 개의 활자로 주조하였다. 이러한 과정으로 주조된 활자를 ‘연각활자(連刻活字)’ 또는 ‘연주활자’라 하게 된 것이다.
연각활자는 관상감 인력자본(印曆字本) 및 병진왜언자본(丙辰倭諺字本)의 인쇄에서 나타나므로 그 사례를 들면 다음과 같다.
위 인력주자(印曆鑄字)의 특징 중 하나는 연주활자를 많이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날짜, 간지, 절기’ 등을 비롯한 “不宜(불의: 마땅하지 않음), 出行(출행: 밖으로 나감), 動土(동토), 沐浴(목욕), 移徙(이사)” 등과 같은 관용어들을 연주활자로 사용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병진왜언자’는 당시 왜학(倭學)을 전공한 안신휘(安愼徽, 1640~?)가 쓴 일본 문자 ‘伊呂波[이로하]’의 히라가나를 글자본으로 하여, 병진년(丙辰年, 1676)에 대자(大字) 동활자(銅活字)로 주조한 것이다. 이 활자의 주조 목적은 선조(宣祖, 15521608) 때 사역원(司譯院)의 일본어 역관(譯官)이었던 강우성(康遇聖, 1581?)이 편찬한 『첩해신어』를 인출(印出)하기 위함이었다. 교서관에서 주조하였기 때문에 여타의 왜언자와 지방에서 거듭 새긴 판본과 구별하기 위해서 '교서관왜언자(校書館倭諺字)'라고 지칭하기도 한다.
『첩해신어』는 교서관에서 새로 주조한 ‘병진왜언자’를 비롯하여 ‘무신자(戊申字, 1663, 四鑄甲寅字)’와 ‘한글 목활자 소자(小字)’를 함께 사용하여 찍어낸 책이다. 즉 일본 문자인 히라가나 대자(大字)는 ‘왜언자’로, 권차(卷次)와 「難字解(난자해)」의 한자와 「譯(역)」의 한자는 ‘무신자 大字 · 小字’를 사용하였고, 한글 소자는 목활자인지 금속활자인지 불분명하다.
『첩해신어』를 인출한 활자인 병진왜언자의 주조에서는 두 가지 특징을 볼 수 있다.
첫 번째 특징은 ‘捷解新語(첩해신어)’라는 제목의 주조가 네 개의 글자를 한 단위로 합쳐 묶으면서 그 부자(父字, 목활자)를 연각활자로 새겨 제작하고, 이에 따른 금속활자도 한 뭉치의 연주활자로 주조되었다는 것이다.
두 번째 특징은 일본어 히라가나에서 한글로 읽을 때 ‘관(과 + ㄴ), 군(구 + ㄴ), 몬, 안’ 등 두 글자의 발음이 붙어 하나의 우리 글자로 발음되는 글자군은, 두 글자를 한 뭉치의 활자처럼 연자식으로 주조하였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