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조선시대, 금속을 녹여 활자를 만들어 각종 서적을 인쇄하는 장인.
내용
금속활자 제작 기술은 조선 전기 성종(成宗) 때 성현(成俔, 1439~1504)의 『용재총화(慵齋叢話)』에 주물사를 이용하여 활자를 만드는 방법이 소개되어 있다. 그 방법은 미리 준비한 글자본을 황양목(黃楊木)에 새겨 부자(父字)를 만들고, 해포(海蒲)의 부드러운 진흙을 인판(암 주형틀)에다 평평하게 편 뒤 부자를 진흙에다 도장을 찍듯이 찍으면 오목하게 파여서 글자가 된다. 이에 쇳물을 흘러 들어갈 탕로를 만들고 꼭 같은 인판(수 주형틀)에 흙을 채워 합한 후 동(銅)을 녹여 한 편의 구멍으로 주입하면 쇳물이 오목하게 파인 곳으로 흘러 들어가 낱낱이 활자가 만들어진다. 이 방법이 주물사주조법이다.
또 다른 금속활자 제작 방법으로 밀랍을 이용해서 활자를 만드는 밀랍 주조법(蜜蠟鑄造法)이 있다. 문헌의 기록으로는 확인할 수 없으나 고려시대 금속활자본 『직지』의 인면 특징을 분석하여 추정한 활자 제작 방식이다. 먼저 고체 상태의 밀랍으로 부자 활자를 만들고, 진흙으로 감싸서 굳힌 후 열을 가해 밀랍을 녹여내고 그 빈 공간에 쇳물을 주입하여 활자를 만드는 방식이다.
마지막으로 조선 후기 민간에서 사용하였던 도토주조법(陶土鑄造法)이 있는데, 이는 『후생록(厚生錄)』에 소개되어 있다. 도토주조의 방법은 다음과 같다. 먼저 도토를 잘게 빻아서 나무판 위에 평평하게 편 다음 햇볕을 쬐여 반 정도 말린 뒤, 얇은 종이에 크고 작은 글자를 필요한 만큼 정성 들여 쓴다. 그런 후에 밀랍을 녹여 판 위에 뒤집어 붙이고 각수로 하여금 음각으로 새긴 다음, 녹인 쇳물을 붓고 식으면 활자를 개별로 잘라 내어 깎고 다듬어서 완성한다.
『경국대전(經國大典)』에 인쇄와 관련한 장인은 교서관 소속으로 균자장(均字匠), 인출장(印出匠), 각자장(刻字匠), 목장(木匠), 제각장(除刻匠), 지장(紙匠), 책장(册匠), 조각장(彫刻匠), 야장(冶匠), 주장(鑄匠) 등을 두고 있다. 이 중에서 쇠를 다루는 장인은 ‘야장’과 ‘주장’이다. 성현의 『용재총화』에는 “활자를 주조해 내는 사람을 주장이라 한다.”라는 기록이 있어, 주장의 역할은 활자를 만드는 일이고, 그 활자로 책을 인쇄하는 일은 균자장과 인출장 등이 별도로 담당하였음을 알 수 있다. ‘활자장’이라는 용어가 조선시대 금속활자 인쇄에서 특정 장인을 일컫는 명칭으로 사용된 기록은 확인되지 않는다. 따라서 활자장은 활자의 주조에서 부터 조판과 인출 등의 일을 담당하는 주장, 균자장, 인출장 등 여러 분야의 장인들을 통칭하는 용어로 보아야 한다.
참고문헌
원전
- 『용재총화(慵齋叢話)』
- 『후생록(厚生錄)』
단행본
- 남권희, 『고려시대기록문화 연구』(청주고인쇄박물관, 2002)
- 『금속활자 주조 및 인쇄기술사 복원연구 결과보고서』(청주고인쇄박물관, 2006)
논문
- 옥영정, 「인쇄관청의 활자인쇄 匠人에 대하여」(『조선시대 인쇄출판 기관의 변천과 발달』, 2008)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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