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연미자강론은 1880년대 미국에 문호를 열고 국부 증진, 군사제도 정비 등의 정책 추진을 주장한 강위의 개국론이다. 1880년대 초 강위가 중국의 황준헌이 쓴 『조선책략』의 영향을 받아 조선이 지향해야 할 부국강병 외교 노선으로 주장한 것이다. 중국을 제외한 외국과의 수교를 반대하는 위정척사파에 맞서 일본과의 수교에서 더 나아가 미국과 수교함으로써 자주적 개국을 완수할 수 있다는 적극적인 문호개방론이다.
정의
1880년대, 미국에 문호를 열고 국부 증진, 군사제도 정비 등의 정책 추진을 주장한 강위의 개국론.
내용
김홍집이 일본에서 돌아와 고종에게 『조선책략』을 바친 뒤 조선 정부는 미국과의 수교에 적극 나섰다. 이에 대미 수교를 둘러싸고 큰 논란이 일어났다. 척사위정파는 일본과의 수교에 이은 미국 등 서구와의 수교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강경한 자세를 보였다. 이를 반박하기 위해 쓴 글이 「박악라불가선연의(駁鄂羅不可先聯議)」와 「의고(擬誥)」이다. 앞의 글은 『조선책략』의 주장을 받아들여 러시아보다 미국과의 수교가 우선되어야 하는 이유를 논리적으로 밝힌 것이고 뒤의 글은 임금의 고유문 형식을 빌어 대일 수교의 정당성마저도 부정하는 척사유생들의 주장을 반박하는 것이다.
강위는 러시아를 ‘호랑이 · 이리’로, 미국을 ‘남의 토지 · 인민을 탐하지 않고 공의(公議)를 펴는 나라’로 보았다. 여기까지는 『조선책략』의 러시아 · 미국 인식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그러나 『조선책략』과 강위의 연미론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강위는 러시아와 먼저 연합할 것인가 아니면 미국과 먼저 연합할 것인가의 문제에 관심을 가졌다. 곧 우선 순위의 차이일 뿐 러시아와 미국 모두를 수교 대상으로 여긴 것이다. 나아가 강위는 “만국통상이 서로 돕는 이치가 있어서 이익이 있지 해가 없다”고 주장하였다. 곧 국제법에 따라 미국을 위시해 다른 나라와 통상 관계를 맺는 것이 조선에게 이익이 되면 되었지 손해는 되지 않는다고 본 것이다. 통상에서 직접 얻어지는 이익으로는 관세 수입으로 경비를 보탤 수 있다는 점, 무역의 수익으로 민산(民産)을 후하게 할 수 있는 점, 병농(兵農)의 제도가 더욱 갖춰질 수 있다는 점 등을 들었다. 이는 서양과의 통상을 통해 달성하려고 하는 바가 단순히 외침에 대비하는 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국부와 민부의 증진, 군사제도의 정비, 서양의 근대 기술 도입 등의 자강 정책 추진에도 있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 연미는 곧 자강으로 이어진다는 것이 강위의 생각이었다.
참고문헌
원전
- 강위(姜瑋), 『강위전집(姜瑋全集) 상·하』(아세아문화사, 1978)
논문
- 이헌주, 「1980년대 초반 강위의 일·청 여행과 조선 정부의 개화정책」(『한문학보』 43, 우리한문학회, 2020)
- 이헌주, 「1880년대 초반 강위의 연미자강론」(『한국근현대사연구』 25, 한국근현대사학회, 2006)
- 이헌주, 「강위의 개국론 연구」(고려대학교 박사 학위 논문, 2005)
- 주승택, 「강위와 황준헌의 비교 연구」(『대동한문학』 17, 대동한문학회, 2002)
- 주승택, 「강위의 개화사상과 외교활동」(『한국문화』 12,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1991)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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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나라와 나라 사이에 교제를 맺음.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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