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훈국 사진대는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국방부에서 임인식을 대장으로 하여 설치한 전쟁사진 기록 전문 사진 부대이다. 즉 전쟁사진의 제작, 대여, 전시, 보관 등의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설립된 공식 기관이었다. 사진대원으로는 이필연, 이혜복, 정성관 등이 활동하였고, 문관으로는 이건중, 이경모, 임윤창, 정범태, 최계복 등이 배속되었다. 정훈국 사진대 사진은 전쟁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 기록 사진이었지만 개성적인 시각으로 이후 다큐멘터리 사진이 한국 사진의 주류로 자리매김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정의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국방부에서 임인식을 대장으로 하여 설치한 전쟁사진 기록 전문 사진 부대.
제정 목적
내용
사진대원으로는 보도과 소속의 이필연, 이형록, 이혜복, 정성관 등이 활동하였고, 군인 신분이 아니면서 군사 관련 행정 사무를 보았던 문관으로는 이건중, 이경모, 임윤창, 정범태, 최계복 등이 배속되었다. 북진을 시작할 무렵에는 김원영, 임윤창, 최원식[최계복의 아들]이 더 충원되었다.
정훈국 사진대는 정식으로 월급을 받지는 못했으나 관급품이나 군 장비를 제공받는 등의 특권을 누렸다. 국방부 식당에서 식사를 할 수 있었고 출장증명서를 제시하면 군용차도 탈 수 있었다. 카메라는 라이카 IIIB, 필름은 코닥 Plus-x를 지급받았다.
정훈국 사진대는 전황에 따라 현장을 이동하며 전쟁 상황을 생생히 기록하였다. 낙동강 방어선 구축과 함께 본격화되어, 최대 격전지였던 다부동지구전투, 영천지구전투, 창녕 · 영산지구전투 등에서 중요한 사진을 많이 남겼다. 전쟁 발발에서 평양시민환영대회까지 한국전쟁의 전모를 진행 과정에 따라 충실하게 기록한 임인식의 사진은 정훈국 사진대의 특기할 만한 사진들이다.
변천 사항
처음 정훈국 사진대는 서울 명동에 있었으나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한 것은 육군 본부를 대구로 옮긴 후부터였다. 1·4 후퇴로 정부와 함께 부산으로 남하하였고, 9·28 수복으로 서울 정동에 있다가, 북진과 함께 평양의 서순삼이 경영하던 삼정사진관을 거점으로 하여 취재 활동을 하였다. 국군과 유엔군의 인천상륙작전 반격 이후 정훈국 사진대의 활동 범위는 더욱 넓어졌다. 그러나 현재 국방부에 반납한 정훈국 사진대의 사진 원판들은 망실되었고, 유족들이 보관하고 있는 일부 원판도 보존 상태가 좋지 않은 상태이다.
의의 및 평가
참고문헌
단행본
- 이경민, 「임인식의 사진 활동으로 본 해방 초기~1950년대 한국사진사 고찰」(『그때 그 서울』, 서울역사박물관, 2023)
- 임인식, 『우리가 본 한국 전쟁: 국방부 정훈국 사진대 대장의 종군 사진일기 1950~1953』(눈빛, 2008)
논문
- 김윤정, 「다큐멘터리로서의 한국 전쟁 사진」(서울대학교 석사 학위 논문, 2009)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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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군인을 대상으로 한 교양, 이념 교육 및 군사 선전, 대외 보도 따위에 관한 일을 통틀어 이르는 말.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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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군대를 따라 전쟁터로 나감.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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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사진을 찍는 기계. 광선이 새어 들어오지 못하도록 만든 상자의 앞쪽에 장치한 렌즈로부터 순간적으로 광선이 들어오게 하여 그 뒤에 있는 감광판(感光板)에 영상(映像)이 비치게 한다. 광선의 양을 조절하는 조리개, 일정한 시간을 노출하기 위한 셔터, 색채감을 조정하는 필터(filter), 찍는 물체의 위치를 정하는 파인더(finder) 따위의 장치가 있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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