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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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국화리에 있는 공립 고등학교.
강화고등학교 (江華高等學校)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국화리에 있는 공립 고등학교.
인천광역시 강화군 하점면에 있는 청동기시대 북방식 고인돌. 지석묘.
강화 부근리 점골 지석묘 (江華 富近里 점골 支石墓)
인천광역시 강화군 하점면에 있는 청동기시대 북방식 고인돌. 지석묘.
강화삼거리유적은 인천광역시 강화군 하점면 삼거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과 집터 유적이다. 고인돌과 팽이형토기가 나온 집터는 서북한 지역 대동강 유역의 청동기 문화와 관련된 것으로 주목된다. 팽이형토기 문화는 강화도의 삼거리, 오상리, 장정리 유적을 비롯하여 김포, 화천, 춘천 등 여러 지역에서 확인되고 있으므로 서북한과 남한 지역 사이의 문화접변 및 문화변동의 관점에서 연구가 필요하다.
강화 삼거리 유적 (江華 三巨里 遺蹟)
강화삼거리유적은 인천광역시 강화군 하점면 삼거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과 집터 유적이다. 고인돌과 팽이형토기가 나온 집터는 서북한 지역 대동강 유역의 청동기 문화와 관련된 것으로 주목된다. 팽이형토기 문화는 강화도의 삼거리, 오상리, 장정리 유적을 비롯하여 김포, 화천, 춘천 등 여러 지역에서 확인되고 있으므로 서북한과 남한 지역 사이의 문화접변 및 문화변동의 관점에서 연구가 필요하다.
강화 홍릉(江華 洪陵)은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에 있는 고려 후기 제23대 고종의 능이다. 홍릉은 강화군 고려산 중턱의 남사면에 있다. 1916년 조사 보고에 의하면 능역 내 호석과 난간 일부가 남아 있는 봉분과 석수 4마리, 석인상 4구, 정자각 터 등이 남아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석사자를 비롯한 일부 석물이 사라진 상태이다. 1970년대 정비 과정에서 능역이 상당 부분 변형되었다.
강화 홍릉 (江華 洪陵)
강화 홍릉(江華 洪陵)은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에 있는 고려 후기 제23대 고종의 능이다. 홍릉은 강화군 고려산 중턱의 남사면에 있다. 1916년 조사 보고에 의하면 능역 내 호석과 난간 일부가 남아 있는 봉분과 석수 4마리, 석인상 4구, 정자각 터 등이 남아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석사자를 비롯한 일부 석물이 사라진 상태이다. 1970년대 정비 과정에서 능역이 상당 부분 변형되었다.
인천광역시 강화군 일대에 형성된 저어새가 번식하고 있는 갯벌.
강화 갯벌 및 저어새 번식지 (江華 갯벌 및 저어새 繁殖地)
인천광역시 강화군 일대에 형성된 저어새가 번식하고 있는 갯벌.
인천광역시 강화군 화도면 문산리 참성단 내에 소재한 소사나무.
강화 참성단 소사나무 (江華 塹星壇 소사나무)
인천광역시 강화군 화도면 문산리 참성단 내에 소재한 소사나무.
강화초지대교는 경기도 김포시 대곶면과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강화도)을 연결하는 연륙교이다. 1996년 착공된 강화초지대교는 720m 길이의 왕복 4차선 다리로, 2001년 8월 완공되었다. 특이한 연륙교 형태로 섬과 내륙을 잇고, 교량부에는 상수도와 도시가스관이 설치되어 있다. 이후 2002년 8월 개통되어 수도권에서 강화도로의 진입을 용이하게 했으며, 국가지원 지방도 84호선의 부분이다. 길이 1.2㎞, 폭 17.6m의 4차선 교량으로 하루에 3만 5000대의 교통량을 처리할 수 있다.
강화초지대교 (江華草芝大橋)
강화초지대교는 경기도 김포시 대곶면과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강화도)을 연결하는 연륙교이다. 1996년 착공된 강화초지대교는 720m 길이의 왕복 4차선 다리로, 2001년 8월 완공되었다. 특이한 연륙교 형태로 섬과 내륙을 잇고, 교량부에는 상수도와 도시가스관이 설치되어 있다. 이후 2002년 8월 개통되어 수도권에서 강화도로의 진입을 용이하게 했으며, 국가지원 지방도 84호선의 부분이다. 길이 1.2㎞, 폭 17.6m의 4차선 교량으로 하루에 3만 5000대의 교통량을 처리할 수 있다.
고종은 고려 후기의 제23대 왕이다. 무인 정권하에서 재위하였으며, 재위 중인 1231년(고종 18)부터 몽골군의 침입이 시작되었고 이듬해 1232년(고종 19)에 강화도로 도읍지를 옮겨 항쟁하였다. 1259년(고종 46)까지 전란이 지속되어 개경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강화도에서 숨을 거두었다. 장기적인 전란, 천도, 무인 정권이라는 특수한 정치적 상황에도 불구하고 고려의 역대 임금 가운데 가장 오랜 기간 재위한 임금이다.
고종 (高宗)
고종은 고려 후기의 제23대 왕이다. 무인 정권하에서 재위하였으며, 재위 중인 1231년(고종 18)부터 몽골군의 침입이 시작되었고 이듬해 1232년(고종 19)에 강화도로 도읍지를 옮겨 항쟁하였다. 1259년(고종 46)까지 전란이 지속되어 개경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강화도에서 숨을 거두었다. 장기적인 전란, 천도, 무인 정권이라는 특수한 정치적 상황에도 불구하고 고려의 역대 임금 가운데 가장 오랜 기간 재위한 임금이다.
『명미당집(明美堂集)』은 조선 말기에 태어나 개항기 때 활동하였던 문신이자 학자인 이건창의 시가와 산문을 엮은 시문집이다. 1917년 당시 중국으로 망명해 남통(南通)에서 출판 문화 사업을 하고 있던 김택영(金澤榮)이 교정하고 편차하여 한묵림서국(翰墨林書局)에서 20권 8책의 연활자본으로 간행하였다.
명미당집 (明美堂集)
『명미당집(明美堂集)』은 조선 말기에 태어나 개항기 때 활동하였던 문신이자 학자인 이건창의 시가와 산문을 엮은 시문집이다. 1917년 당시 중국으로 망명해 남통(南通)에서 출판 문화 사업을 하고 있던 김택영(金澤榮)이 교정하고 편차하여 한묵림서국(翰墨林書局)에서 20권 8책의 연활자본으로 간행하였다.
고려 후기에, 추밀원사, 지문하성사, 이부상서 등을 역임한 무신.
김보정 (金寶鼎)
고려 후기에, 추밀원사, 지문하성사, 이부상서 등을 역임한 무신.
일제강점기 때, 파리강화회의에 전달할 독립청원서의 서명 운동과 발송에 가담하였으며, 군자금을 제공하여 독립군기지 건설을 지원하다가 체포된 독립운동가.
권상익 (權相翊)
일제강점기 때, 파리강화회의에 전달할 독립청원서의 서명 운동과 발송에 가담하였으며, 군자금을 제공하여 독립군기지 건설을 지원하다가 체포된 독립운동가.
고려 후기에, 직사관, 시어사, 중서사인 등을 역임한 문신.
김수강 (金守剛)
고려 후기에, 직사관, 시어사, 중서사인 등을 역임한 문신.
고려후기 우복야, 추밀원부사, 참지정사 판예부사 등을 역임한 무신.
박성재 (朴成梓)
고려후기 우복야, 추밀원부사, 참지정사 판예부사 등을 역임한 무신.
고려후기 양광도병마사, 보안군, 양광도도순위사 등을 역임한 무신.
박수년 (朴壽年)
고려후기 양광도병마사, 보안군, 양광도도순위사 등을 역임한 무신.
무신정권은 1170년부터 1270년 사이에 무신 세력에 의해 주도된 고려 왕조의 정권이다. 무신 세력은 삼별초 등 사병집단으로 정권을 유지하고, 정방·교정별감 등의 기구를 설치하여 전횡을 일삼고 독재정치를 행하였다. 무신정권기에 불법적 토지 강점이 광범위하게 이루어지면서 토지제도가 붕괴되고 농민과 천민 등 하부계층의 저항을 불러일으켜 민란 발생과 더불어 신분질서의 동요가 일어났다. 무신정권 집권 후반부 40년은 강화도로 천도하여 대몽항쟁을 벌이던 시기이다. 팔만대장경 제조 등으로 강렬한 민족주체의식이 발휘되었고 이는 후대의 배원정책으로 이어졌다.
무신정권 (武臣政權)
무신정권은 1170년부터 1270년 사이에 무신 세력에 의해 주도된 고려 왕조의 정권이다. 무신 세력은 삼별초 등 사병집단으로 정권을 유지하고, 정방·교정별감 등의 기구를 설치하여 전횡을 일삼고 독재정치를 행하였다. 무신정권기에 불법적 토지 강점이 광범위하게 이루어지면서 토지제도가 붕괴되고 농민과 천민 등 하부계층의 저항을 불러일으켜 민란 발생과 더불어 신분질서의 동요가 일어났다. 무신정권 집권 후반부 40년은 강화도로 천도하여 대몽항쟁을 벌이던 시기이다. 팔만대장경 제조 등으로 강렬한 민족주체의식이 발휘되었고 이는 후대의 배원정책으로 이어졌다.
고려 후기 국방력 강화업무를 관장하던 임시관서.
무예도감 (武藝都監)
고려 후기 국방력 강화업무를 관장하던 임시관서.
조선시대 병자호란 때, 강화도에서 항전하여 영의정으로 추증된 문신.
김익겸 (金益兼)
조선시대 병자호란 때, 강화도에서 항전하여 영의정으로 추증된 문신.
문수산성은 경기도 김포시 문수산에 있는 조선 후기 산성이다. 1694년(숙종 20)에 왕실 보장처 강화도의 방비를 위해 쌓았다. 1866년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군과 전투가 벌어진 역사적 현장이기도 하다. 문수산 정상부에서는 삼국~통일신라시대에 쌓이고 운영된 성벽이 발굴되어 조선시대 이전부터 이곳이 군사 요충지였음을 알 수 있다.
문수산성 (文殊山城)
문수산성은 경기도 김포시 문수산에 있는 조선 후기 산성이다. 1694년(숙종 20)에 왕실 보장처 강화도의 방비를 위해 쌓았다. 1866년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군과 전투가 벌어진 역사적 현장이기도 하다. 문수산 정상부에서는 삼국~통일신라시대에 쌓이고 운영된 성벽이 발굴되어 조선시대 이전부터 이곳이 군사 요충지였음을 알 수 있다.
고려 후기에, 병마사, 만호 등을 역임한 무신·공신.
김지서 (金之瑞)
고려 후기에, 병마사, 만호 등을 역임한 무신·공신.
고려시대 10도 12주 절도사체제 하의 지방관.
도단련사 (都團練使)
고려시대 10도 12주 절도사체제 하의 지방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