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공민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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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흥사대부는 고려후기 새롭게 등장하여 조선을 건국한 정치세력이다. 신진사대부·신흥유신·신진사류·신흥사족이라고도 한다. 고려전기 이래 지방 향리로 머물던 중소지주들이 고려후기부터 과거에 급제하여 중앙의 관리로 진출하는 경향이 뚜렷해졌다. 이들은 고려 말에 정치권력을 장악하고 조선을 건국했는데, 이 집단을 특정하여 신흥사대부라는 역사적 용어를 사용한다. 학문적 소양이 있고 중소지주로서 경제적 기반을 갖추었다는 것이 특징이다. 하지만 사대부가 관료를 뜻하는 말로 널리 쓰여 왔기 때문에 부적절한 명칭이라 하여 신진사류·신흥사족으로 불러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신흥사대부 (新興士大夫)
신흥사대부는 고려후기 새롭게 등장하여 조선을 건국한 정치세력이다. 신진사대부·신흥유신·신진사류·신흥사족이라고도 한다. 고려전기 이래 지방 향리로 머물던 중소지주들이 고려후기부터 과거에 급제하여 중앙의 관리로 진출하는 경향이 뚜렷해졌다. 이들은 고려 말에 정치권력을 장악하고 조선을 건국했는데, 이 집단을 특정하여 신흥사대부라는 역사적 용어를 사용한다. 학문적 소양이 있고 중소지주로서 경제적 기반을 갖추었다는 것이 특징이다. 하지만 사대부가 관료를 뜻하는 말로 널리 쓰여 왔기 때문에 부적절한 명칭이라 하여 신진사류·신흥사족으로 불러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몽고는 13세기 초에서 14세기 말(15세기 초)까지 몽골 초원에서 활동하던 부족이자 칭기즈칸에 의해 건국되어 유라시아 전역에 세력을 확대하며 존재하였던 국가이다. 고려와는 30여 년에 이르는 전쟁을 치렀고, 이후 100여 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였으며, 이 관계는 고려의 정치와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다.
몽고 (蒙古)
몽고는 13세기 초에서 14세기 말(15세기 초)까지 몽골 초원에서 활동하던 부족이자 칭기즈칸에 의해 건국되어 유라시아 전역에 세력을 확대하며 존재하였던 국가이다. 고려와는 30여 년에 이르는 전쟁을 치렀고, 이후 100여 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였으며, 이 관계는 고려의 정치와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다.
반원정치는 고려 후기 원나라의 간섭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펼친 고려의 정치활동이다. 1270년 개경환도에 반발한 삼별초의 항쟁과 충선왕의 개혁, 총목왕의 정치도감 개혁 등을 반원적 행동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본격적인 반원정책은 1356년 공민왕이 원을 배경으로 권세를 부려온 부원세력을 제거하면서 시작되었다. 공민왕은 고려의 내정에 간섭한 정동행성 이문소를 혁파하여 사법권을 회복하였고, 쌍성총관부를 수복하였다. 원의 연호를 정지하고 관제를 대폭 개정하여 황제국 체제를 회복하였다. 국왕의 측근 세력이 주도하였다는 점이 한계로 지적된다.
반원정치 (反元政治)
반원정치는 고려 후기 원나라의 간섭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펼친 고려의 정치활동이다. 1270년 개경환도에 반발한 삼별초의 항쟁과 충선왕의 개혁, 총목왕의 정치도감 개혁 등을 반원적 행동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본격적인 반원정책은 1356년 공민왕이 원을 배경으로 권세를 부려온 부원세력을 제거하면서 시작되었다. 공민왕은 고려의 내정에 간섭한 정동행성 이문소를 혁파하여 사법권을 회복하였고, 쌍성총관부를 수복하였다. 원의 연호를 정지하고 관제를 대폭 개정하여 황제국 체제를 회복하였다. 국왕의 측근 세력이 주도하였다는 점이 한계로 지적된다.
고려후기 공민왕 때 설치된 관서.
자제위 (子弟衛)
고려후기 공민왕 때 설치된 관서.
고려 말기에 군공(軍功)을 포상하기 위해 설치된 실직없는 관직.
첨설직 (添設職)
고려 말기에 군공(軍功)을 포상하기 위해 설치된 실직없는 관직.
고려 공민왕 때 조일신(趙日新)이 일으킨 반란.
조일신의 난 (趙日新의 亂)
고려 공민왕 때 조일신(趙日新)이 일으킨 반란.
고려후기 제31대 공민왕의 왕비.
익비 (益妃)
고려후기 제31대 공민왕의 왕비.
조일신은 고려후기 찬성사로 정천기, 최화상 등과 반란을 일으킨 주모자이다. 1352년(공민왕 1)에 사망했다. 충선왕 때의 공신 조인규의 손자이다. 공민왕이 원나라에서 숙위하던 시절에 수종(隨從)하였다. 공민왕이 즉위한 후 정방의 복구를 요구하거나 윗사람을 능멸하는 등 부당한 행위를 자행하였다. 대간의 탄핵으로 위기를 맞게 되자 정천기, 최화상, 장승량 등과 함께 반란을 일으켰다. 변란의 책임을 면하기 위해 최화상을 먼저 살해하고 장승량 등을 효수하게 했으며, 정천기는 하옥시켰다. 이후 더욱 방자하게 행동하다가 왕명에 의해 주살되었다.
조일신 (趙日新)
조일신은 고려후기 찬성사로 정천기, 최화상 등과 반란을 일으킨 주모자이다. 1352년(공민왕 1)에 사망했다. 충선왕 때의 공신 조인규의 손자이다. 공민왕이 원나라에서 숙위하던 시절에 수종(隨從)하였다. 공민왕이 즉위한 후 정방의 복구를 요구하거나 윗사람을 능멸하는 등 부당한 행위를 자행하였다. 대간의 탄핵으로 위기를 맞게 되자 정천기, 최화상, 장승량 등과 함께 반란을 일으켰다. 변란의 책임을 면하기 위해 최화상을 먼저 살해하고 장승량 등을 효수하게 했으며, 정천기는 하옥시켰다. 이후 더욱 방자하게 행동하다가 왕명에 의해 주살되었다.
현릉(玄陵)은 북한 개성특별시 개풍군 해선리에 있는 고려 후기 제31대 공민왕의 능이다. 1365년 2월 노국대장공주의 사후 4월 정릉에 안장하고, 1366년 공민왕은 자신의 수릉을 정릉의 서쪽에 조영토록 하여, 환관 김사행이 4도감 13색을 지휘 감독하여 1372년 쌍릉으로 완공되었다. 1374년 공민왕의 사후 현릉에 안장되었다. 현정릉은 여타의 고려왕릉에 비하여 규모도 월등하고 문무인상도 등신대 이상이며 석양, 석호가 완비되고 조각술 또한 양감이 풍부하고 표현력이 뛰어나다. 조선왕릉 조성에 이정표가 된 기념비적인 왕릉이다.
현릉 (玄陵)
현릉(玄陵)은 북한 개성특별시 개풍군 해선리에 있는 고려 후기 제31대 공민왕의 능이다. 1365년 2월 노국대장공주의 사후 4월 정릉에 안장하고, 1366년 공민왕은 자신의 수릉을 정릉의 서쪽에 조영토록 하여, 환관 김사행이 4도감 13색을 지휘 감독하여 1372년 쌍릉으로 완공되었다. 1374년 공민왕의 사후 현릉에 안장되었다. 현정릉은 여타의 고려왕릉에 비하여 규모도 월등하고 문무인상도 등신대 이상이며 석양, 석호가 완비되고 조각술 또한 양감이 풍부하고 표현력이 뛰어나다. 조선왕릉 조성에 이정표가 된 기념비적인 왕릉이다.
이춘부는 고려 후기 공민왕 때 도첨의시중을 역임한 문신이다. 충정왕 때 우대언·밀직부사 등을 지내고, 공민왕 때에는 지추밀원사·판추밀원사·도첨의찬성사 등을 거쳐, 1368년(공민왕 17) 수상직인 도첨의시중에 올랐다. 두 차례에 걸쳐 왜구의 침입을 격퇴하였으며, 홍건적 침입 때는 안동으로 피란하는 왕을 호종하고 군사를 징발하여 전투를 지휘하였다. 신돈 집권기에 그 지지 세력으로 활동하다가 신돈 실각과 함께 처형되었다.
이춘부 (李春富)
이춘부는 고려 후기 공민왕 때 도첨의시중을 역임한 문신이다. 충정왕 때 우대언·밀직부사 등을 지내고, 공민왕 때에는 지추밀원사·판추밀원사·도첨의찬성사 등을 거쳐, 1368년(공민왕 17) 수상직인 도첨의시중에 올랐다. 두 차례에 걸쳐 왜구의 침입을 격퇴하였으며, 홍건적 침입 때는 안동으로 피란하는 왕을 호종하고 군사를 징발하여 전투를 지휘하였다. 신돈 집권기에 그 지지 세력으로 활동하다가 신돈 실각과 함께 처형되었다.
고려 후기 궁궐 내의 별청(別廳)에서 정사를 처리하였던 왕 측근의 재상.
내재추 (內宰樞)
고려 후기 궁궐 내의 별청(別廳)에서 정사를 처리하였던 왕 측근의 재상.
고려후기 기해격주홍적2등공신에 책록된 공신.
장보지 (張補之)
고려후기 기해격주홍적2등공신에 책록된 공신.
염제신(廉悌臣)은 고려 후기 서북면도통사(西北面都統使), 영삼사사(領三司事), 영문하부사(領門下府事)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고려와 원을 오가며 관직 생활을 했던 관료이다. 1302년(충렬왕 30) 출생하여 원(元) 평장사(平章事)인 고모부 말길(末吉)의 집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충숙왕 대에 정동행성 관원으로서 고려에 와서 충숙왕의 신임을 받았고, 공민왕 대에는 고우성(高郵城) 공격을 위한 고려군을 이끌었으며, 공민왕 5년 개혁 당시 서북면도원수(西北面都元帥)로 원의 공격에 대비하기도 하였다. 1382년(우왕 8)에 사망하였다.
염제신 (廉悌臣)
염제신(廉悌臣)은 고려 후기 서북면도통사(西北面都統使), 영삼사사(領三司事), 영문하부사(領門下府事)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고려와 원을 오가며 관직 생활을 했던 관료이다. 1302년(충렬왕 30) 출생하여 원(元) 평장사(平章事)인 고모부 말길(末吉)의 집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충숙왕 대에 정동행성 관원으로서 고려에 와서 충숙왕의 신임을 받았고, 공민왕 대에는 고우성(高郵城) 공격을 위한 고려군을 이끌었으며, 공민왕 5년 개혁 당시 서북면도원수(西北面都元帥)로 원의 공격에 대비하기도 하였다. 1382년(우왕 8)에 사망하였다.
고려후기 제32대 우왕의 어머니인 왕족.
반야 (般若)
고려후기 제32대 우왕의 어머니인 왕족.
복주천도는 1361년 11월 홍건적의 제2차 침입 때 공민왕이 개경에서 복주(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로 도읍을 옮긴 사건이다. 원나라 말엽 원의 지배에 저항하는 홍건적이 발흥하였는데 홍건적의 일부가 원나라의 군사에 쫓겨 고려에 두 차례 침입하였다. 제2차 침입 때 홍건적이 개경을 함락하자 공민왕은 복주를 임시 수도로 삼고 반격을 준비하였다. 1362년 1월 고려군 20만 병력이 집결하여 개경을 탈환하였고 공민왕은 환도하였다. 개경 환도 이후에 흥왕사의 반란 등으로 공민왕의 개혁 정치가 위축되고 이성계 등 신흥무인이 세력을 잡는 계기가 되었다.
복주천도 (福州遷都)
복주천도는 1361년 11월 홍건적의 제2차 침입 때 공민왕이 개경에서 복주(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로 도읍을 옮긴 사건이다. 원나라 말엽 원의 지배에 저항하는 홍건적이 발흥하였는데 홍건적의 일부가 원나라의 군사에 쫓겨 고려에 두 차례 침입하였다. 제2차 침입 때 홍건적이 개경을 함락하자 공민왕은 복주를 임시 수도로 삼고 반격을 준비하였다. 1362년 1월 고려군 20만 병력이 집결하여 개경을 탈환하였고 공민왕은 환도하였다. 개경 환도 이후에 흥왕사의 반란 등으로 공민왕의 개혁 정치가 위축되고 이성계 등 신흥무인이 세력을 잡는 계기가 되었다.
북한 황해북도 개성시 송악산 죽선대(竹仙臺) 입구에 있었던 고려전기 제1대 태조가 창건한 사찰.
송악산 왕륜사 (竹仙臺 王輪寺)
북한 황해북도 개성시 송악산 죽선대(竹仙臺) 입구에 있었던 고려전기 제1대 태조가 창건한 사찰.
북한 황해북도 개성시에 있었던 고려전기 에 창건된 사찰.
개성 광명사 (開城 廣明寺)
북한 황해북도 개성시에 있었던 고려전기 에 창건된 사찰.
고려 말기의 재상 염제신(廉悌臣, 1304∼1382)의 초상화.
염제신 초상 (廉悌臣 肖像)
고려 말기의 재상 염제신(廉悌臣, 1304∼1382)의 초상화.
정릉(正陵)은 개성특별시 개풍군 해선리에 있는 고려 후기 제31대 공민왕의 비인 노국대장공주의 능이다. 1365년 2월 공주가 난산 끝에 죽자 4월 정릉에 안장하였다. 이후 7년간 환관 김사행이 지휘 감독을 하여 4도감 13색의 제도를 갖추고 영전과 무덤 공사에 힘을 쏟아 조영하여, 1372년 공민왕의 수릉인 현릉과 나란히 쌍릉으로 완성되었다. 북한의 국보유적이다.
정릉 (正陵)
정릉(正陵)은 개성특별시 개풍군 해선리에 있는 고려 후기 제31대 공민왕의 비인 노국대장공주의 능이다. 1365년 2월 공주가 난산 끝에 죽자 4월 정릉에 안장하였다. 이후 7년간 환관 김사행이 지휘 감독을 하여 4도감 13색의 제도를 갖추고 영전과 무덤 공사에 힘을 쏟아 조영하여, 1372년 공민왕의 수릉인 현릉과 나란히 쌍릉으로 완성되었다. 북한의 국보유적이다.
김흥경은 고려 후기 무관으로 활약하였던 공민왕의 총신(寵臣)이다. 수려한 용모로 인해 공민왕의 특별한 총애를 받았으며, 자제위(子弟衛)를 총괄하게 되었는데, 홍륜 등의 공민왕 살해 음모를 알고도 고하지 않았다고 하는 상소가 받아들여져 사형에 처해졌다.
김흥경 (金興慶)
김흥경은 고려 후기 무관으로 활약하였던 공민왕의 총신(寵臣)이다. 수려한 용모로 인해 공민왕의 특별한 총애를 받았으며, 자제위(子弟衛)를 총괄하게 되었는데, 홍륜 등의 공민왕 살해 음모를 알고도 고하지 않았다고 하는 상소가 받아들여져 사형에 처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