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관상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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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초기 광화방 관상감에 설치되었던 측우기를 놓았던 대석.
관상감 측우대 (觀象監 測雨臺)
조선 초기 광화방 관상감에 설치되었던 측우기를 놓았던 대석.
조선시대 관상감 소속의 정1품 관직.
영관상감사 (領觀象監事)
조선시대 관상감 소속의 정1품 관직.
천문학은 조선시대 과학관서인 관상감(觀象監)의 세 가지 분과(천문학, 지리학, 명과학) 중 천문(天文)에 대한 관측과 역산(曆算)을 통한 역서(曆書) 편찬 업무를 담당한 분과이다. 조선 후기에 이르러서는 천문학 분과의 삼력관(三曆官)들과 그들의 집합체인 삼력청(三曆廳)이 천문학 분과뿐만 아니라 관상감 전체의 운영을 실질적으로 책임지고 지휘하게 되었다.
천문학(관상감) (天文學(觀象監))
천문학은 조선시대 과학관서인 관상감(觀象監)의 세 가지 분과(천문학, 지리학, 명과학) 중 천문(天文)에 대한 관측과 역산(曆算)을 통한 역서(曆書) 편찬 업무를 담당한 분과이다. 조선 후기에 이르러서는 천문학 분과의 삼력관(三曆官)들과 그들의 집합체인 삼력청(三曆廳)이 천문학 분과뿐만 아니라 관상감 전체의 운영을 실질적으로 책임지고 지휘하게 되었다.
명과학은 조선시대 과학관서인 관상감(觀象監)의 세 가지 분과(천문학, 지리학, 명과학) 중 택일(擇日), 택시(擇時) 업무를 담당한 분과이다. 명과학의 관원은 다른 관상감의 관원들과 마찬가지로 음양과(陰陽科) 과거를 통해 선발되었는데, 명과학에 배정된 선발인원은 식년시와 증광시의 초시에서는 4명, 복시(최종시험)에서는 2명, 대증광시의 초시에서는 8명, 복시에서는 4명이었다. 1791년(정조 15) 신해절목(辛亥節目)에 반영된 개혁초치로 명과학 분과에 대한 인적, 물적 지원이 강화되었다.
명과학(관상감) (命課學(觀象監))
명과학은 조선시대 과학관서인 관상감(觀象監)의 세 가지 분과(천문학, 지리학, 명과학) 중 택일(擇日), 택시(擇時) 업무를 담당한 분과이다. 명과학의 관원은 다른 관상감의 관원들과 마찬가지로 음양과(陰陽科) 과거를 통해 선발되었는데, 명과학에 배정된 선발인원은 식년시와 증광시의 초시에서는 4명, 복시(최종시험)에서는 2명, 대증광시의 초시에서는 8명, 복시에서는 4명이었다. 1791년(정조 15) 신해절목(辛亥節目)에 반영된 개혁초치로 명과학 분과에 대한 인적, 물적 지원이 강화되었다.
명과학훈도는 조선시대에 관상감에서 명과학을 담당한 정9품 관직이다. 1466년(세조 12)에 관제를 다시 정하면서 음양학에서 이름이 바뀐 명과학에 처음으로 훈도 2명을 설치하였다. 이후 중종 대에 명과학겸교수가 1명 설치되면서 명과학훈도는 1명으로 줄었다.
명과학훈도 (命課學訓導)
명과학훈도는 조선시대에 관상감에서 명과학을 담당한 정9품 관직이다. 1466년(세조 12)에 관제를 다시 정하면서 음양학에서 이름이 바뀐 명과학에 처음으로 훈도 2명을 설치하였다. 이후 중종 대에 명과학겸교수가 1명 설치되면서 명과학훈도는 1명으로 줄었다.
감생청은 1880년대 초반, 정부의 재정을 절감하기 위하여 정부기구 축소 및 감원 등의 개혁 작업을 추진하려고 관상감(觀象監) 휘하에 임시로 설치된 관서이다. 구관당상(句管堂上)인 어윤중(魚允中)이 개혁 작업을 주도하여 ‘감생청 감생별단(減省別單)’을 임금에게 알렸으며, 이후 약 4~5개월 동안 각종 개혁안을 건의하였으나, 종친과 보수 세력의 반대로 설립 6개월 만인 1883년 5월 1일 폐지되었다.
감생청 (減省廳)
감생청은 1880년대 초반, 정부의 재정을 절감하기 위하여 정부기구 축소 및 감원 등의 개혁 작업을 추진하려고 관상감(觀象監) 휘하에 임시로 설치된 관서이다. 구관당상(句管堂上)인 어윤중(魚允中)이 개혁 작업을 주도하여 ‘감생청 감생별단(減省別單)’을 임금에게 알렸으며, 이후 약 4~5개월 동안 각종 개혁안을 건의하였으나, 종친과 보수 세력의 반대로 설립 6개월 만인 1883년 5월 1일 폐지되었다.
겸교수는 조선시대에 사학(四學), 관상감, 사역원, 형조의 율학청, 호조의 산학청, 도화서, 혜민서 등에 설치한 종6품 관직이다. 교육과 업무의 전문성을 강화하기 위해 특별히 해당 분야의 전문가를 임용한 데서 비롯되었다. 사학의 겸교수와 사역원의 한학(漢學) 겸교수는 문관이 겸직하였고, 관상감 등 기술관청의 겸교수는 해당 분야의 중인 출신의 기술관리를 임용하였다.
겸교수 (兼敎授)
겸교수는 조선시대에 사학(四學), 관상감, 사역원, 형조의 율학청, 호조의 산학청, 도화서, 혜민서 등에 설치한 종6품 관직이다. 교육과 업무의 전문성을 강화하기 위해 특별히 해당 분야의 전문가를 임용한 데서 비롯되었다. 사학의 겸교수와 사역원의 한학(漢學) 겸교수는 문관이 겸직하였고, 관상감 등 기술관청의 겸교수는 해당 분야의 중인 출신의 기술관리를 임용하였다.
조선 말기 학부(學部)에 소속되어 천문·기상을 관측하는 관상(觀象)·측후(測候)·역서조제(曆書調製)등의 사무를 관장하던 관청.
관상소 (觀象所)
조선 말기 학부(學部)에 소속되어 천문·기상을 관측하는 관상(觀象)·측후(測候)·역서조제(曆書調製)등의 사무를 관장하던 관청.
조선시대 관상감 소속의 지관(地官).
범철관 (泛鐵官)
조선시대 관상감 소속의 지관(地官).
조선 후기 관상감에 소속된 하급 전문직 관원.
별선관 (別選官)
조선 후기 관상감에 소속된 하급 전문직 관원.
부정(副正)은 조선시대, 중앙관서에 설치한 종3품의 관직이다. 주로 정3품 아문에 해당하는 시(寺), 감(監), 원(院) 등의 위상을 가진 관서에 설치되었다. 1466년(세조 12)에 관제를 개편한 뒤 정3품 아문의 일반적인 관직 체계가 확립되었다. ‘정(正)-부정(副正)-첨정(僉正)-판관(判官)-주부(主簿)-직장(直長)-봉사(奉事)-참봉(參奉)’이 그것이다. 부정은 『경국대전』을 기준으로 17개의 관서에 18명이 정원으로 규정되었다.
부정 (副正)
부정(副正)은 조선시대, 중앙관서에 설치한 종3품의 관직이다. 주로 정3품 아문에 해당하는 시(寺), 감(監), 원(院) 등의 위상을 가진 관서에 설치되었다. 1466년(세조 12)에 관제를 개편한 뒤 정3품 아문의 일반적인 관직 체계가 확립되었다. ‘정(正)-부정(副正)-첨정(僉正)-판관(判官)-주부(主簿)-직장(直長)-봉사(奉事)-참봉(參奉)’이 그것이다. 부정은 『경국대전』을 기준으로 17개의 관서에 18명이 정원으로 규정되었다.
조선시대 별을 관측하는 일을 맡았던 관상감(觀象監) 소속의 관원.
삼력관 (三曆官)
조선시대 별을 관측하는 일을 맡았던 관상감(觀象監) 소속의 관원.
부봉사(副奉事)는 조선시대에 중앙에 설치한 정9품 관직의 하나이다. 주로 정3품 아문에 해당하는 시(寺), 감(監), 원(院) 등의 위상을 가진 관서에 설치되었다. 1466년(세조 12)에 관제 개편 이후 정3품 아문의 일반적인 관직 체계가 확립되었다. ‘정(正)-부정(副正)-첨정(僉正)-판관(判官)-주부(主簿)-직장(直長)-봉사(奉事)-참봉(參奉)’이 그것이다. 부봉사는 『경국대전』을 기준으로 12개의 관서에 15명이 정원으로 규정되었다.
부봉사 (副奉事)
부봉사(副奉事)는 조선시대에 중앙에 설치한 정9품 관직의 하나이다. 주로 정3품 아문에 해당하는 시(寺), 감(監), 원(院) 등의 위상을 가진 관서에 설치되었다. 1466년(세조 12)에 관제 개편 이후 정3품 아문의 일반적인 관직 체계가 확립되었다. ‘정(正)-부정(副正)-첨정(僉正)-판관(判官)-주부(主簿)-직장(直長)-봉사(奉事)-참봉(參奉)’이 그것이다. 부봉사는 『경국대전』을 기준으로 12개의 관서에 15명이 정원으로 규정되었다.
조선시대 궁궐과 중요관청의 야간당직자·경비원·순찰자들의 명단을 장부에 기록하는 제도.
성기 (省記)
조선시대 궁궐과 중요관청의 야간당직자·경비원·순찰자들의 명단을 장부에 기록하는 제도.
조선시대 사역원·관상감 등 기술관청 소속의 관원.
총민 (聰敏)
조선시대 사역원·관상감 등 기술관청 소속의 관원.
조선시대 양길(良吉)의 선택을 맡았던 관상감(觀象監)의 관직.
추길관 (諏吉官)
조선시대 양길(良吉)의 선택을 맡았던 관상감(觀象監)의 관직.
조선시대 관상감에서 천문학 생도의 교육을 담당한 종6품 관직.
천문학교수 (天文學敎授)
조선시대 관상감에서 천문학 생도의 교육을 담당한 종6품 관직.
조선시대 관상감에서 천문학 생도의 교육을 담당한 정9품 관직.
천문학훈도 (天文學訓導)
조선시대 관상감에서 천문학 생도의 교육을 담당한 정9품 관직.
첨정(僉正)은 조선시대, 중앙관서에 설치한 종4품의 관직이다. 주로 정3품아문에 해당하는 시(寺), 감(監), 원(院) 등의 위상을 가진 관서에 설치되었다. 1466년(세조 12) 관제 개편 이후 정3품아문의 일반적인 관직 체계가 확립되었다. ‘정(正)-부정(副正)-첨정(僉正)-판관(判官)-주부(主簿)-직장(直長)-봉사(奉事)-참봉(參奉)’이다. 첨정은 이때 확립되어 『경국대전』을 기준으로 22개의 관서에 27명이 정원으로 규정되었다.
첨정 (僉正)
첨정(僉正)은 조선시대, 중앙관서에 설치한 종4품의 관직이다. 주로 정3품아문에 해당하는 시(寺), 감(監), 원(院) 등의 위상을 가진 관서에 설치되었다. 1466년(세조 12) 관제 개편 이후 정3품아문의 일반적인 관직 체계가 확립되었다. ‘정(正)-부정(副正)-첨정(僉正)-판관(判官)-주부(主簿)-직장(直長)-봉사(奉事)-참봉(參奉)’이다. 첨정은 이때 확립되어 『경국대전』을 기준으로 22개의 관서에 27명이 정원으로 규정되었다.
측우기는 세종 때 발명되어 사용한 조선시대의 공식적인 우량 측정기구이다. 1440년(세종 22)을 전후하여 발명되어 1442년부터 20세기 초 일제 통감부에 의해 근대적 기상관측이 시작될 때까지 조선 왕조의 공식적인 우량 관측기구로 사용되었다. 현대의 우량계에 해당한다. 금속제 원통형 그릇에 빗물을 받아 표준화된 눈금의 자로 그 깊이를 측정했다. 같은 규격의 기구와 자를 서울의 천문관서와 지방의 관아에 설치하여 전국적으로 우량을 관측하고 보고하는 체계를 갖추어 기록을 보유했다. 첨성대, 금속활자, 한글 등과 함께 한국사의 빛나는 과학적 성취로 평가된다.
측우기 (測雨器)
측우기는 세종 때 발명되어 사용한 조선시대의 공식적인 우량 측정기구이다. 1440년(세종 22)을 전후하여 발명되어 1442년부터 20세기 초 일제 통감부에 의해 근대적 기상관측이 시작될 때까지 조선 왕조의 공식적인 우량 관측기구로 사용되었다. 현대의 우량계에 해당한다. 금속제 원통형 그릇에 빗물을 받아 표준화된 눈금의 자로 그 깊이를 측정했다. 같은 규격의 기구와 자를 서울의 천문관서와 지방의 관아에 설치하여 전국적으로 우량을 관측하고 보고하는 체계를 갖추어 기록을 보유했다. 첨성대, 금속활자, 한글 등과 함께 한국사의 빛나는 과학적 성취로 평가된다.